(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라는 천재가 어느날 갑자기 천재성을 번득이며 창제한 문자일까?
국내 국어학계에서는 당시 중국을 비롯한 인접 문화권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토양으로 삼기는 했지만 훈민정음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독창적 발명품이라는 논조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이런 사정은 대한민국이란 국경을 벗어나면 달라진다. 외국학계에서 바라보는 훈민정음은 쿠빌라이 칸 시대에 몽골제국의 문자통일을 위해 황제가 파스파라는 티베트 출신 학자에게 명하여 제정했다는 파스파 문자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보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김정배.한중연)이 18-19일 한중연 대강당에서 개최하는 '훈민정음과 파스파문자' 국제학술 워크숍은 이 해묵은 논쟁을 공론화하는 국내 첫 무대라는 점이 관심을 끈다.
이 자리에는 훈민정음 창제, 특히 파스파 문자와의 영향 관계를 두고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치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인다.
1966년 이후 훈민정음에 대한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되풀이해 주장하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게리 레드야드 명예교수와 몽골인으로서 파스파 문자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통하는 중국 사회과학원 주나스트 교수가 발표자로 나서는가 하면, 오스트리아 빈대학 라이너 도르멜스 교수는 아예 "훈민정음은 파스파 문자의 대체물"이라고까지 주장할 예정이다.
국내 발표자 중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훈민정음 창제 독창설과 파스파 문자의 영향설을 절충한 듯한 견해를 표출할 예정이다.
다만 국내 연구자로는 드물게 훈민정음에 파스파 문자의 짙은 영향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 교수가 훈민정음에서 지목하는 파스파 문자의 짙은 그림자는 크게 세 가지.
첫째, 두 문자 모두 한자의 정확한 발음 표시를 위해서 창제됐고 둘째, 전통적인 중국한자음 분류방식인 36개 성모(聲母)를 기초로 초성(初聲.자음)을 만들었으며, 셋째, 중성(中聲.모음)을 제정해 한자음을 표기하는 데 사용한 점이 그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 교수에 의하면 문자를 제작한 원리는 두 문자가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즉, 파스파 문자가 티베트 문자를 기초로 만든 데 비해, 훈민정음은 그 해례본에 명확히 나와 있듯이 천ㆍ지ㆍ인(天地人)에 기초해 발음 기관 모양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이다.
원로 국어학자인 유창균 전 계명대 교수 또한 훈민정음의 구상과 착안에서 파스파 문자의 영향이 있었다는 기존 생각을 철회하지 않으면서, 정 교수와는 달리 글자 형태에서도 ㄱ, ㄷ, ㅂ, ㅈ 등의 일부 글자는 파스파 문자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를 담은 발표를 한다.
레드야드 교수를 비롯한 이번 대회 외국 발표자들은 종래 주장을 다시금 반복하거나 한층 보강한 견해를 발표한다.
홍윤표 전 연세대 교수는 레드야드 교수의 발표문에 대한 토론에서 훈민정음 창제가 파스파 문자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훈민정음 창제가) 자극을 받았다고 해석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나라 문자생활사에서 발생한 필연적인 산물"로서 "세종의 의지와 창의력이 결합된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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