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곡(夏穀)인 보리가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가을에 거두어들인 식량이 다 떨어져 굶주릴 수밖에 없게 되는 4∼5월의 춘궁기(春窮期)를 표현하는 말로 보릿고개가 있다. 몇 십년 전만해도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우리가 어느 새 ‘뭔가 좀 특이한 음식 없나’하며 입맛을 즐기고 있다는 건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세계인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지은이 쟝 지글러가 국제식량기구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쓴 글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 A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1/3명꼴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계인구의 1/7에 이르는 8억5천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전 인구의 36%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세계의 곡물부족 때문이 아니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실제로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은 넘쳐나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쟝 지글러는 식량가격을 결정하는 선진국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끝 모를 뿌리를 이 책을 통해서 밝히고자 한 것이다.
그 예로 쟝 지글러는 아옌데의 비극을 예로 들고 있다. 아옌데 사건이란, 미국에서 교육받은 토호들의 2세인 ‘시카고 보이’들이 군인들과 결탁하여 민중정부를 붕괴시킨 사건이다. 1970년 당시 칠레는 높은 유아사망률과 어린이 영양실조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아옌데는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하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곤란함을 느꼈던 것이 스위스의 다국적기업인 네슬레였다. 커피와 우유를 주품목으로 하는 네슬레에게 칠레정부가 분유를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이때부터 아옌데 정부는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정부와 네슬레를 축으로 하는 다국적기업에 의해서 고립되고, 결국 CIA와 결탁한 군인들이 대통령궁을 습격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칠레의 어린이들은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된다.
굶주림,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 및 경제 시스템 자체가 혁파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국민들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수지가 맞지 않는 농산물이 폐기처분은 되어도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으로는 가지 않는다.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