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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지하로 내려가면 도시가 사라진다’ 청년이 떠난 지하

소비를 넘어 문화로, 대구 지하상권 두 번째 기회 잡아야

 

최근 메트로센터, 봉산지하상가(메트로프라자), 두류지하상가 등 대구 주요 지하상가에서는 무상사용권 종료를 둘러싸고 점포주와 상인 간의 재산권·영업권 갈등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올해부터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이 지하상가 운영을 전담하게 되었으며, 대구의 지하상가는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을 갖춘 문화 공간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 현재 대구 지하상가는 고령층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점포 구성이 많은 편이며, 이에 따라 청년들의 발걸음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제는 이러한 현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다른 지역의 성공적인 공간 활용 사례를 참고해 향후 지하상가 사업의 방향성과 전략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 지하공간은 넘치지만, 활력은 줄어든다

대구 중심부에 위치한 지하상가는 하루 유동 인구가 8만에서 10만 명에 이르며, 교통 접근성과 상권 입지는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중앙로역의 대현프리몰 상가의 점포 수는 2백31개에 달하지만 이 중 38곳(16.5%)이 공실 상태이며, 주말 저녁에도 불 꺼진 점포들이 줄지어 있다. 반월당 지하상가 역시 지난 3월 한 달간 30여 개의 점포가 빠졌다. 지하로 내려가면 도시의 활력이 사라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대구의 대표적인 지하상가로는 반월당역과 연결된 ‘메트로센터’, 중앙로역 중심의 ‘대현프리몰’, 봉산문화거리에 인접한 ‘봉산지하도상가’, 두류역에 위치한 ‘두류지하상가’ 등이 있다.

 

메트로센터와 대현프리몰은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대구 도심의 중심지에서 패션과 쇼핑 중심으로 구성돼 있으며, 봉산지하도상가는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예술적·생활밀착형 점포들이 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두류지하상가는 두류공원과 이월드 등 대형 문화시설과 인접하지만 아직 활성화 수준은 낮다.

이 외에도 범어지하도상가(범어아트스트리트), 대구역지하도상가, 대신지하도상가 등 교통의 중심축에 있는 지하공간들도 존재하지만, 현재로서는 상권 규모나 시민 이용도 측면에서 주목도가 낮은 편이다.

 

● 기획이 부재한 공간

지하상가의 활력 저하는 임대료나 인테리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앙로와 반월당 지하공간은 197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대구 도심을 대표하는 소비 공간으로 성장했지만, 현재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겼다. 20년째 봉산지하도상가에서 안경원을 운영 중인 강석기 안경사는 “왜 하필 지하냐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초창기에는 단골도 많고 장사도 잘 됐다.”며 지하상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유동 인구 감소를 아쉬워했다. 그는 “지금은 지하공간이 고령층 중심으로 분위기가 굳어져 활기를 잃고 있다. 봉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공연이나 문화 공간이 함께 들어서야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전했다.

두류지하상가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5년 10월, 대구도시철도 2호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이곳은 4백32m 길이의 지하 공간에 약 3백여 개의 점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조성됐다. 그러나 개장 초기 입점률은 25%에 그쳤고 이후에도 활성화에 실패했다.

 

이러한 정체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소비 트렌드의 급속한 변화로 인해 더 큰 타격을 입었다. 팬데믹을 계기로 시민들의 쇼핑 행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지하상가 같은 전통적 소비 공간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된 것이다.

한편, 지하상가가 지속적으로 활력을 잃어온 데는 초기 공간 기획에 청년 참여와 지역 정체성을 고려하지 못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대구만의 콘텐츠가 부재한 채 임대와 유동 인구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공간의 고유성은 희미해졌고, 이는 장기적인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대구시가 최근 추진 중인 지하상가 전자지도 구축, 임대료 환급형 운영 또한 접근성과 편의성은 개선할 수 있지만 공간의 본질적인 정체성 회복에는 한계가 있다.

 

● 청년을 위한 지하를 구성하는 다른 지역

다른 지역에서는 지하공간을 새로운 콘텐츠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도가 활발하다. 서울시 신당지하상가는 2009년부터 공실 점포를 예술인 창작 공간으로 변화시켜 공방 40여 곳이 입점한 ‘지하 문화 공간’으로 재편됐다. 청주시는 2022년 10월에 폐쇄된 대현 지하상가를 올해 11월까지 청년 창업 공간, 북카페, 공연장 등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며, 부산 전포역 지하상가는 청년 창업자에게 무상 입주 기회를 제공하는 ‘전포메트로 청춘드림센터’와 ‘청년플렉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예시들은 모두 지하공간을 단순 소비공간이 아닌 청년의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재구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의정부시는 2021년부터 ‘의지몰’이라는 지하상가 브랜드를 도입하고 2022년까지 벽면 간판·동선 사인 리모델링, 할인쿠폰 행사 등을 통해 방문객 유입을 늘려갔다. 상가를 단순한 쇼핑만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닌, 상생형 청년몰 조성 등을 통해 지하공간에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는 전략이다. 이 모든 전략의 핵심은 ‘청년층’ 타겟팅이다.

 

다만 다른 지역의 사례가 대구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이나 청주는 예술인과 청년 창업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풍부한 데 반해, 대구는 청년층 유출이 지속되고 있고 양질의 정주형 일자리 기반이 취약한 도시다. 통계청이 2024년 8월 발표한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구는 전국 특·광역시 중 청년이 가장 많이 떠나고 싶어 하는 도시(28.6%)로 꼽혔으며, 가장 큰 이유로 ‘양질의 일자리 부족’(48.5%)이 지목됐다. 실제로 2024년 말 기준 대구 청년 고용률은 36.6%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이 같은 조건을 고려하면, 대구 지하공간의 재구성은 단순한 문화 공간 조성에 그쳐선 안 되며, 청년의 삶과 일이 연결되는 ‘정주형 일자리 복합 플랫폼’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대구도 변화 중… 하지만 여전히 ‘초기 단계’

그렇다면 대구는 지하공간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려 할까? 최근 대구시는 단기적인 공실 대책이 아닌, 도심 전반의 문화·공간 재편을 겨냥한 대규모 계획인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본격화하고 있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 3백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는 상권 활성화, 공간 재구성, 관광 문화 확산, 교통 개선 등 4대 분야에서 12개 핵심 사업을 추진한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경관 개선을 넘어 동성로를 ‘젊음의 문화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동성로와 지하상가가 직접 연결된 만큼 지상공간만이 아니라 지하공간과의 유기적 연계를 통한 확장 가능성을 지닌다.

 

이와 더불어 지난 6월 4일 대현프리몰 내에 청년 활동 거점 공간인 중구 청년지원센터 ‘잇플(Itple)’도 문을 열었다. ‘잇다’와 ‘피플(people)’의 합성어인 ‘잇플’은 청년들이 모여 교류하고 창업 아이템을 전시하며 상담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복합공간이다. 특히 우리학교 산학협력단이 2027년까지 위탁 운영을 맡고 있어, 지역 청년정책 실현의 구심점이자 대구 도심 지하공간의 청년 플랫폼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중구 청년지원센터 길민준 담당자는 “현재는 중구에서 살거나 활동하는 청년만을 대상으로 지원하고 있으나, 점차 대구 내 청년들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문화 공간 조성에서 더 나아가, 정주형 청년 일자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 지하공간을 재정의할 수 있는 계기로 해석될 수 있다.

 

이제는 단기적 행사가 아닌 청년이 머무를 수 있는 기반으로서 지하공간을 구조적으로 재편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까지의 시도는 일부 공간에 국한된 채 문화 콘텐츠 위주에 머무르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청년층의 지역 이탈이 심각한 대구에서는 문화적 공간과 더불어 정주형 일자리와 연결되는 지속 가능한 기반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공실 해소를 위한 임시 수단이 아닌 ‘대구다움’을 담은 공간으로서 지하상가를 다시 설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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