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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선언' 바다사자의 안타까운 죽음


비양도에 나타났다가 숨진 채 떠밀려와

옮길 방법 없어 열흘째 방치…"연구에 활용해야"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정부가 국내에서 사라졌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바다사자가 기적처럼 제주도 해안에 나타났지만 얼마 못 가 숨졌다.

바다사자의 사체는 발견된 지 열흘이 지나도록 바닷가에 그대로 방치돼 있어 생물자원 확보 차원에서 연구에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주 만에 사체로 다시 발견 = 바다사자는 지난달 27일 오후 4시께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 연안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암반 위에 올라앉아 쉬고 있는 것을 순찰하던 전경이 처음 발견했다.

제주서부경찰서 비양도치안센터 정만석 일경은 19일 "센터장님이 바위에 무언가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바다사자가 앉아 있었다"며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20∼30분 정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쪽을 쳐다보더니 바다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갔다"고 전했다.

바다사자는 사람의 접근에 민감하고 위험을 느끼면 바닷물 안으로 숨는다.

그대로 자취를 감춘 듯했던 바다사자는 2주가량 지난 9일 비양도 바닷가에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엔 숨진 채였다.

사체는 밀물 때 뭍으로 올라왔다가 무게 탓에 파도에 쓸려가지 않고 자갈밭 위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이 몸 길이를 재보니 꼬리까지 236㎝, 뒷다리까지 포함하면 276㎝였다. 몸무게는 300㎏가량으로 추정된다.

◇"헬기라도…" 사체 열흘째 방치 = 바다사자의 사체는 뭍으로 올라온 지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네 다리를 힘없이 늘어뜨린 채 그 자리에 누워있다. 부패가 계속 진행되는데다 몸 곳곳에는 물고기나 새에게 물어뜯긴 듯한 상처가 났다.

희귀종인 바다사자의 사체가 이렇게 방치되는 것은 엄청난 무게와 외딴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옮길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다.

사체가 있는 자갈밭 주변은 차량이 접근하기 어렵다. 대형 선박에 크레인을 싣고 옮겨볼 수도 있지만 인근 해안에 암초가 많아 함부로 배를 댈 수도 없다.

해양경찰은 불법 포획이나 훼손 등을 의심할 만한 흔적이 없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체를 한림읍에 인계했다. 수산자원관리공단은 읍의 협조를 받아 울산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 사체를 보낼 계획이었지만 비용과 방법이 없어 애만 태우고 있다.

수산자원관리공단 김병엽 박사는 "비용도 문제지만 바지선을 띄우기도 힘든 곳이어서 경찰 헬기라도 빌려다가 연구에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다사자가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만큼 사체라도 연구 가치가 매우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고래연구소 박태근 박사는 "국내에서는 바다사자에 대한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상태"라며 "유전자 분석을 위한 샘플 채취는 물론 전체적인 골격 구조를 조사하거나 위 내용물을 통해 먹이습성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쪽에서 내려온 큰바다사자인 듯 = 전문가들은 이 개체가 캄차카반도와 베링해ㆍ쿠릴열도 등 북극과 가까운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큰바다사자(학명 Eumetopias jubatus) 종인 것으로 추정했다.

이한수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소장은 "몸의 크기와 전체적인 색깔, 주둥이의 모양, 가슴에 난 갈기의 형태 등으로 볼 때 큰바다사자로 보인다"고 말했다.

큰바다사자는 물개(Callorhinus ursinus)와 독도바다사자(Zalophus japonicus) 등 국내에 기록된 바다사자과 세 종 가운데 몸집이 가장 크다. 겨울에서 봄 사이에 북극지방의 유빙을 피해 먹이를 찾으러 남쪽으로 내려온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들어 사람의 눈에 띈 적이 두어 번밖에 없다. 2008년 삼척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죽어있는 것을 어민이 발견했고 2010년에는 울진 연안에서 큰바다사자로 추정되는 개체가 목격됐다.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은 큰바다사자를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바다사자 '국내 절멸' 선언 = 하지만 국내에서 바다사자는 법적인 보호를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됐다. 환경부가 지난달 멸종위기종 목록을 재정비한 야생동ㆍ식물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두 바다사자 종의 멸종위기종 지정을 해제했기 때문이다.

독도바다사자의 경우 한때 복원사업이 추진되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아 멸종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큰바다사자는 동해에서 드물게 발견되기는 하지만 표류해서 떠내려오는 것일 뿐 주기적으로 우리나라에 도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환경부의 판단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큰바다사자의 경우 멸종위기종보다는 보호대상 해양생물로 지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아직 입법예고 단계인 만큼 지정 해제 문제에 대해 내부적으로 더 검토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