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미디어평론] ‘킬미힐미’, 재벌 후예는 왜 다중인격이 됐나?

비정상 재벌 구조를 연민으로 치환한 로맨스

요즘 ‘온전한’ 정신을 붙들고 살지 못해 인격이 쪼개진 이른바 다중인격의 주인공이 지상파 드라마를 휩쓸고 있다. MBC <킬미힐미>와 SBS <하이드 지킬, 나> 얘기다. 옷을 갈아입듯 필요시 ‘인격’을 갈아입는 남자 주인공이 ‘평범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는 로맨스가 수목 10시 드라마에 똑같이 나온다. 재벌 후계자인 점도 같다.

시청률이라는 방송사의 잣대로 보면 승자는 <킬미힐미>다. 지성이 열연 중인 주인공 차도현은 인격이 무려 7개다. <하이드 지킬, 나>의 현빈이 맡은 구서진은 두 개다. 인격의 개수에서 승부가 갈린 것일까. 재벌도 온전한 정신으로 못 사는 마당에, 빈털터리인 우리가 제정신이라는 것이야말로 미친 짓처럼 보일 지경이다.

재벌가 아들이 한없이 여린 속내로 ‘아픈 척 약한 척’을 하는 게 로맨스 드라마의 공식이 된 듯하다. <파리의 연인>식 출생의 비밀은 이제 흔해져, <상속자들>은 연령대를 고교생으로 확 낮춰버렸다. ‘평범한’ 여고생조차 기댈 어깨를 내주고 같이 울어줘야만 할 것만 같은 ‘상처받은 아이’인 재벌 상속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 인격마저 쪼개졌다. <킬미힐미>는 초반에는 다중인격의 퍼레이드, 중반 이후로는 굉장히 복잡하고 아픈 출생의 비밀 추적을 펼치고 있다. 재벌가 ‘상처’의 총집합이다. 비밀이 크고 복잡할수록, 단순하고 굳건한 것은 남녀주인공의 애정이다. 인격이 산란할 때 사랑에 더 매달린다.

이런 ‘다중인격 로맨스’가 정말 다수 시청자들의 힘든 마음을 헤아려주는 기획일 리는 없다. 지치고 불쌍해 보이는 ‘차도현’의 직업은 승진그룹 엔터테인먼트 계열사 부사장, 재벌3세다. 인격 통합에 목숨 거는 것도, 실은 금수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번듯한 후계자로 가문의 인정을 받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한국 드라마는 이상하게도, 아픈 재벌 후계자들에게 기어이 ‘오너’가 되라고 한다. 재벌가 자식의 기업 승계가 당연하지 않은 사회라면, 이런 드라마는 설 곳이 없을 것이다. <킬미 힐미>의 극중 ‘재미’란 차도현이 ‘부사장’ 직에서 내쳐지고, 승진그룹 후계구도에서 밀릴까봐 시청자가 걱정해 주는 데서 온다. 그러니 재벌들의 온전하지 못한 정신세계와 언행불일치와 미숙한 사고조차 다 이해해 달라는 사전 포석인 것일까. 비정상을 넘어 정신 이상임에도, 금치산 혹은 한정치산자의 상황임에도 말이다. 이런 드라마의 파격 결말을 기대해도 좋을까? 진정한 치유를 위해 돈과 권력을 내려놓고 자유인이 되는 해피엔딩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