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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화유산] 전남 나주 금성관과 은행나무

학봉 김성일의 선정과 곰탕

 

전라남도 나주는 전주와 더불어 전라도 명칭을 낳은 큰 도시다. 고려 현종 9년(1018)부터 조선시대까지 나주는 나주목(羅州牧)이었을 만큼 전라남도의 중심지역이었다. 나주는 고대사회 고분으로도 유명한 도시지만 나주객사 금성관(錦城館)도 유명하다. 금성관은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에서 딴 이름이다. 금성은 백제시대의 ‘발라’를 통일신라시대 말 경덕왕 때 사용한 나주의 옛 이름이다. 조선 성종 때 지은 금성관은 조선시대 객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현재 보물로 지정 예정인 금성관은 이곳에 드는 순간 큰 규모에 압도당한다.

 

금성관의 또 다른 ‘보물’은 금성관 뒤편에 살고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다. 6백50살 정도의 은행나무는 조선시대 성리학을 대표하는 나무다. 성리학 공간에 은행나무를 심은 것은 공자의 행단에서 유래한다. 은행나무를 두 그루 심은 것은 이 나무가 암수딴그루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례는 서울의 성균관을 비롯해서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충남 아산의 맹씨행단, 경북 청도의 자계서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금성관 근처의 나주향교 대성전 앞에도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살고 있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서 암수를 확인하지 못했다. 은행나무와 더불어 금성관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금성관 왼쪽에 딸린 유생 숙소인 벽오헌(碧梧軒)이다. 객사 내 숙소 이름을 ‘벽오’라 붙인 것은 유생들이 큰 인물로 성장하길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벽오동은 봉황이 유일하게 앉는 나무이고, 봉황은 큰 인물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금성관 오른 편 담장 옆에 한 그루의 벽오동이 살고 있다. 그런데 연꽃이 있어야할 금성관 벽오헌 옆 연못에는 수련이 살고 있다. 연꽃은 성리학자들이 사랑한 풀이다. 성리학 공간에 연꽃을 심은 것은 중국 북송시대 주돈이의 애련설 때문이다. 

 

퇴계 이황의 수제자인 학봉 김성일은 나주목사 시절 선정을 베풀었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임씨와 나씨 간의 긴 송사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당시 백성들의 억울함을 해결하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아울러 그는 재임시절 순무어사 김여물이 나주에 파견되어 민가에서 술을 마시고 밤에 관아로 오자, 그를 꾸짖고 문을 열어주지 않을 만큼 강직했다. 김성일은 재임시절 나주 최초의 서원인 대곡서원(현 경현서원)을 세워 동방오현 중 수현인 한훤당 김굉필을 모셨다. 금성관 근처에 위치한 나주목사내아 금학헌(琴鶴軒)에는 김성일이 숙박한 방이 남아 있다. 현재 이곳에는 숙박도 가능하다.   

 

곰탕은 나주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금성관 누각인 망화루(望華樓) 앞에는 나주에서 가장 유명한 100년 전통의 곰탕집이 있다. 나는 이곳에 사람이 많아서 들리지 못하고 근처 식당에서 아주 맛나게 곰탕 한 그릇을 먹었다. 

 





[우리말 정비소] ‘택배’, 일상생활 속 깊숙이 들어온 일본말 “월수입 수백만 원의 택배일을 알선해준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가 피해를 입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월 4~5백만 원 수입의 택배일을 알선해 준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생계 때문에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보려다 도리어 수백만 원 생돈을 물어내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는 9월 16일자 KBS 보도 가운데 일부다. 피해를 입은 노인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일감이 뚝 끊겨 세 식구 생계가 막막해져 ‘택배회사’를 찾아 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택배(宅配, 타쿠하이)’라는 말은 일본말이다. 이제 일상생활에서 택배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택배’라는 말이 들어 온 것일까? 이 말이 들어온 시기를 말하기 전에 일본에서 ‘택배’라는 말이 언제 쓰이기 시작한 것인지를 살펴보자. 기록상 1976년 1월 20일 야마토운수(大和運輸)가 택배사업을 시작할 당시 ‘택배편(宅配便, 타쿠하이빈)’이라는 말을 썼다. 택배사업이 번창하기 전에 일본에서는 철도역을 이용한 소포나 또는 우체국에서 취급하는 소포제도 밖에 없었다. 우체국의 경우 집으로 물건을 배달해주기는 하지만 부칠 때에는 우체국으로 찾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