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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기획 - 비건과 환경(하): 비거니즘과 동물해방, 인간은 어떻게 동물과 공존해야 하는가

같은 고통을 공유하는 동물과 인간, 환경뿐 아니라 도덕적 차원에서도 동물권 논의 이뤄져야

 

자연동물과 가축동물 해방의 방법론에는 다양한 접근이 있었지만,

그중 노예제도처럼 장단기적인 폐지론(abolitionism)이 가장 설득력있다.

 

 

 

“우리 코에서 코뚜레가 사라지고, 우리 등에서 멍에가 사라지며, 재갈과 박차가 영원히 녹슬어 버리고, 가혹한 채찍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다.” 1945년 ‘동물농장’에서 말한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희망은 약 80년이 지난 지금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로또의 확률보다 훨씬 더 운이 좋은 몇몇만이 비건활동가들에 의해 구출되어 보금자리 생추어리(santuary)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같은’ 동물에게 굴레를 씌우고 목을 자르는 일이 분명 도덕은 아니다. 비도덕과 부도덕 사이의 논쟁을 차치하고, 삼계탕이 아기처럼 노랑 병아리였던 적이 없었을까. 동물이 물건인가. 소의 목을 자르는 일과 지우개를 자르는 일은 같은가. 느낌이 없다면 강아지와 고양이의 목을 자르는 일은 어떤가.

 

지금 한국에선 ‘동물 비물건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 통과를 촉구하는 중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 중인 동물 비물건화 법이란, 동물과 물건을 구분하여 동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자는 법이다. 그냥 간단히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 동물권의 근본은 느끼는 생명

동물의 권리를 생각하는 근본은 이들도 ‘느끼는 생명(sentients)’인 연유다. 인간이 고통을 느끼는 질병이면 이들도 같은 고통을 느낀다. 모든 동물의 고통은 같다.

 

1971년에 생겨난 종차별주의(speciesism)에 관한 사상은 부당한 차별사(史)의 한 부분이다.  1619년부터 인간은 색다른 인간에게 노예라는 굴레를 씌워 무려 245년간 납치와 학대를 하였다. 성차별은 1940년대 초에 시작된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의 여성운동 ‘We can do it’으로 전환점을 맞았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다. 현대의 비거니즘(veganism)인 종차별주의 반대(antispecism)는 성평등운동의 연장선이다.

 

먼저 비인간동물은 사자, 원숭이, 코끼리 등 인간이 가두고 오락으로 소비하는 자연동물과 닭, 돼지, 소 등 먹거리로 번식하여 무간의 협소에 가두어 키우는 가축동물, 그리고 갈매기, 개미, 모기, 쥐, 지렁이, 파리 등 도시동물로 나눈다.

 

자연동물과 가축동물 해방의 방법론에는 다양한  접근이 있었지만, 그 중 노예제도처럼 장단기적인 폐지론(abolitionism)이 설득력이 있다. 폐지의 방법은 활동가들의 보편적 사상을 세 단계로 나눔에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철학과 윤리학 등 보편적 사상의 재정립이다. 즉, 인간중심주의 휴머니즘(humanism)에 동물을 새로이 포함한다. 소수의 피해자가 존재하는 공리주의적 접근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하므로 철학적 사유를 통한 정의의 재정립이 지식의 기반이 된다. 하지만 다수의 인간은 동물을 해치는 일을 싫어하지만 동물착취물에 대한 포기는 반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특히 인간의 이익을 동등해진 지위의 동물과 나눔을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적 걸림돌이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법의 제정이다. 법은 강제력을 무기로 개별 시민들의 이해를 순식간에 덮어버린다. 플라스틱 봉투를 순식간에 금지했듯이 동물에 대한 학대도 가장 빠른 방법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법을 제정하는 국회는 정의보다 다수의 편이다. 피해자인 동물의 지위가 향상되더라도 투표권은 없다. 따라서 늘 정의의 소수가 설득하는 다수에 의해 제도가 변하게 되는 투쟁이 존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시민혁명으로 불리는 정치행동이다. 정치는 자원을 강력하게 사용하는 힘이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활동의 정치화는 혁명을 보편적, 일상적으로 도구화한다. 한국의 비건사회는 세 번째 단계가 먼저 일어났다. 법이 시민의식에 뒤처졌다는 의미다.

 

● 동물권의 시작은 환경오염보다 도덕에서 비롯돼야

비건활동가를 중심으로 전세계에서 동물해방운동이 활발하다. 소와 돼지를 먹으며 개와 고양이를 구하는 위선단체가 아니다. 이는 개를 먹으며 소를 구함과 같기 때문이다. 육식뿐만 아니라 동물성 재료나 노동착취도 엄격히 금하는 대표적 비건단체로는 AV의 진실의 큐브(Cube of Truth), 동물해방물결, 직접행동DxE 등이 있다. 이들 단체가 한국에 비건이라는 이름을 알렸고, 지금은 모두가 아는 세상을 만들었다. 대부분 풀뿌리 중심인 활동가들은 다크투어(dark tour), 비질(vigil), 락다운(lockdown) 등으로 동물들이 고통받는 실상을 조사하여 알리고 있다.

 

육식이 세상을 더럽히고 있어 가축생산과 환경을 연관 짓는 보고서도 많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오염이 만연하다.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육식과 환경오염이 무관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동물해방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육식이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이 있으니 채식을 하자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부도덕한 일이다. 동물살해가 정당하고, 오염이 있어 불의라면, 오염이 없으면 다시 정당하다는 논리가 된다. 죄 없는 동물의 목숨은 오염과 무관하다. 굳이 따지자면 최대 오염원인 인간부터 사라져야 한다.

 

● 인간과 동물은 공존하는 대상

필자가 진행하는 강의, 강연에서도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대들은 동물을 죽이며 사는가.’ 지금까지 모두가 머리를 가로로 움직였다. 지금 신문을 읽고 있는 그대는 동물을 죽이며 사는가. 만약 지금 당장 육식을 중단한다면 동물을 키우고 죽이는 축산업자들은 그래도 일을 계속할까. 결국은 육식인이 매일 어진 동물을 죽인다. 한국에서만 육식인이 ‘치킨’으로 참수하는 닭은 연간 10억 명이 넘는다. 사실 평균수명이 8년이지만 모두 30일만에 죽는 아기닭 병아리들이다. 성장촉진제로 몸집만 커져 죽을 때도 ‘꼬끼오’가 아니라 ‘삐약삐약’한다. 육식인이 태어난 날 분쇄기에 갈아버리는 남자 병아리도 수억이다. 이름 없는 생명들의 죽음이다. 인간은 비겁하게 약하고 순한 동물들만 가두고 죽여 먹는다.

 

구제역을 살펴보자. 한 번에 소, 돼지, 염소 등의 ‘가축’ 수천, 수만 명을 살해한다. 돼지는 상대적으로 작아 산채로 구덩이에 던져 덮어버린다. 이들은 밤새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땅도 하얗게 썩으며 죽어간다. 묻은 사람들도 안락사를 시행한 수의사처럼 PITS(Perpetrator Induced Traumatic Stress, 가해경험트라우마성스트레스)로 심리치료를 받는다.

 

축사 화재도 보자. 한국에서도 사흘이 멀다하고 발생하는데 매년 수백만 수천만의 갇힌 동물을 태워 죽인다. 지난 주 발생한 화재는 닭 30만 명을 한 자리에서 태워 죽였다. 그 장면을 직관하지 않고는 상상을 못할까. 그리고 타 죽는 동물은 고통이 없는가. 인간이 먹기 위해 키우는 동물들은 매일매일 무간지옥에 산다. 축축하고 악취나는 똥 위를 맨발로 밟고 사는 아기들을 보면 마음이 어떨까. 아직도 공감을 찾는가.

 

모두 노예제도가 괜찮다고 할 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링컨 대통령의 역할이 주요했다. “시민 여러분, 우리는 역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은 분명하고 평화로우며 관대하고 정당합니다(1862년 노예제 문제에 관한 대의회 교서에서).” 그래서 비건활동가들은 말한다. ‘누가 정의의 편에 서 있었는지, 누가 잔인함의 편에 서 있었는지 훗날 역사는 보여 줄 것이다. (History will show one day who stands on the side of justice, and who stands on the side of cruelty)’

 

지난 5월의 비건페스티벌에서 한 활동가가 옷에 새긴 크리(Cree)족 인디언 추장의 말로써 글을마무리한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살이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