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오지여행, 사고땐 누구 책임인가

(서울=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나만의 자유를 찾아 떠나는 오지여행, 그 유혹은 과연 치명적인가.

최근 발생한 한국인 예멘 여행객 테러사건은 중동 등 세계 외딴 국가로의 여행에 대해 여행객과 여행사, 정부 당국 모두에게 숙고해야 할 숙제를 던졌다.

이 '3자'가 서로 '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사고의 재연을 막기도 어렵거니와 명확한 해결책을 도출하기는 어렵다.

결국, 각각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결론이다.


◇오지여행이란 무엇인가
88올림픽 직후인 1989년 우리나라도 해외여행이 자율화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른바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

미국, 영국 등 한, 두 번 가본 나라보다는 나만의 경험을 간직할 수 있는 오지로 떠나는 것.

이에 따라 여행사들은 '세계의 화약고'라고 하는 레바논 등 중동 지역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심지어 남극 등 극지방을 체험하는 상품까지 내놓고 있다.

이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새 상품을 앞다퉈 개발, 고객을 끌어모으려는 여행업체들의 과당 경쟁과도 맞물려 있다.

다소 위험을 감수하면서 색다른 경험을 추구하는 여행객들의 수요와 여행업체의 벤처 마케팅이 융합해 오지 여행이 탄생한 것이다.

여행업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보다 빨리 해외여행 자율화가 된 선진국들의 사례를 봐도, 해외여행 횟수가 늘어날수록 당연히 못 가본 곳을 가려는 것이 소비자들 심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오지 여행 전문 업체 중에 그나마 틀을 제대로 갖추고 영업을 하는 곳은 10여개 정도다.


◇누가 데려가나
여행업체는 승인이 아니라 등록만 하면 된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제관광과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여행사는 1만개 정도다.

국내외 종합 여행 업무를 취급하는 일반여행업으로 등록하려면 3억5천만원의 자본금에 연간 5천만원의 보증보험료를 납부해야 하고, 해외여행을 취급하는 국외여행업체는 자본금 1억원에 3천만원의 보증보험을 들어야 한다.

국내여행업체는 자본금 5천만원에 2천만원의 보험료를 내면 등록할 수 있다.

1만개의 여행사 중 태반을 차지하는 영세업체는 호·불황을 겪으면서 명멸한다. 특히 요즈음 같은 불황에는 등록하고도 영업은 아예 손 놓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오지 여행은 국외여행사 가운데 10명 안팎의 소규모 인원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기반의 업체가 주로 한다.

특히 웹 기반의 업체들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홈페이지 등을 통해 상품을 광고, 특정 지역의 마니아 등 신청자들을 모아서 데려가고 있다.

종합여행사들이 오지 여행에 발 담글 수도 있지만, 전문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데다 사고 등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분야라 상품 기획하기를 꺼린다.


◇여행에 제약은 없나
여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국적기 취항 승인만 내 놓은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여행객을 데려갈 수는 있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가 '여행유의(42개국)-여행자제(34개국)-여행제한(18개국)-여행금지(3개국)' 등 4단계로 여행경보체계를 운영한다 해도 우리 비행기만 뜬다면 간다는 의미다.

이번에 사고가 난 예멘 같은 여행자제국가는 '신변 안전에 특별히 유의'를 해야 하고, 여행금지국가는 '될 수 있는 대로 여행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외교부의 지침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를 가면 절대 안 된다는 규정도 없고, 또 간다고 해서 완강하게 뜯어말리지도 않았다는 것이 여행업계의 하소연이다.

여행사의 한 직원은 "흔치 않게 사고라도 나면 정부에서는 '왜 그런 데를 갔느냐'고 말한다"고 푸념했다.

그는 하지만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도 않은 우리 민족이, 최근 테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유념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안전은 누가 책임지나
모두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가 무조건 여행을 제약한다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의 니즈(needs)에 맞춰 상품을 기획하고 희망하는 고객들을 데려가는 여행사를 무조건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무조건적인 제약보다는 오지 등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에게 주의해야 할 여행지 등 예방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선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바람이다.

여행사도 여행객들에게 해당 국가의 안전 사항 등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알리고, 무리한 일정은 자제하는 것이 맞다고 정부 당국은 지적하고 있다.

문화부 관계자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조만간 시행되면, 여행사가 여행객들에게 대한 안전 고지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으면 행정 처분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오지 여행을 주로 선택하는 여행객은 해당 지역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경험하기를 절대적으로 희망하거나, 자주 다녀오는 마니아들이 많다.

따라서 해당 지역의 안전 수준을 파악하고, 떠날지 여부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주체는 여행객일 수밖에 없다.

해외 여행객을 모집하고 송출하는 과정에서 보험 등 행정 업무나 사고 등에 대해 사전·사후 대처 능력이 없는 영세업체들이 난립하는 데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도 절실하다.

hopema@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