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심통 사나운 영감이었던 것 같다. 농부아낙들이 불러주는 소박한 민요를 좋아했으면 됐지 구태여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헐뜯을 것은 없지 않은가. 하긴 베르디도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이 합창에 잘 맞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톨스토이는 이 곡이 너무 복잡하여 들으면 정신이 헷갈리고, 쉴러의 시(詩)도 돼먹지 않았다고 했다. 우주의 창조자가 별들을 넘어 선 곳에 계시고, 관습의 벽을 넘어 환희의 신비로운 날개가 우리를 형제로서 다시 화합하게 한다니 아닌 게 아니라 황당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정신인 자유·평등·형제사랑이 고양되었던 그 시대를 생각하면서, 친구와 형제를 부르는 윤창(輪唱)을 들으면 역시 장엄하다. 쉴러는 원래 ‘자유에의 찬가’를 지었으나 검열 때문에 ‘환희에의 찬가’로 되고 말았다는데, 그 진위는 모르겠다. 하여튼 자유와 평등은 철학과 정치 사회의 이론에서 핵심문제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허나 정작 보다 소중한 형제사랑은 푸대접받고 있다. 자유는 이윤추구의 자유, 평등은 법 앞에서의 추상적 평등이 되면서 형제사랑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시장과 시민사회의 발전은 개인주의 공리주의 물신숭배의 함정으로 우리를 밀어 넣었다. 만인
사람이 하는 일이 대저 그러하듯, 민주주의도 웃지 못할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옛날 그리스에서 처음 시행할 때 그 스타일이 다양했다. 특히 이상한 경우가 스파르타이다. 이들의 정치집회에서는 투표를 하지 않고 가장 크게 고함치는 쪽이 결정권을 가졌다. 소수파일지라도 우렁찬 소리로 악을 쓰는 편이 이기니, 협의와 토의가 설 자리가 없었다. 이것은 물론 다른 도시국가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이것이 전제주의인지 민주주의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긴 민주주의의 종가인 아테네도 문제가 많았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마시게 한 것은 두고두고 민중의 지성과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근거가 됐다. 돈이 탐나서 평상심을 잃은 아테네 사람들이 시실리섬의 부자 나라 시라큐스에 쳐들어가 노략질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두 번에 걸쳐 감행한 대거 침략에서 괴멸적 타격을 입고 원정군은 전멸했다.이런 불상사들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아왔다. 이슬람의 사상가 알 파라비는 타락한 정치체제 가운데 민주주의가 그래도 제일 ‘덜 나쁜’ 체제라 했다. 후안무치의 퇴폐를 대량생산하는 체제이지만 자유를 극대화하고 고매한 인사도 배출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