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최근 종영한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얘기다.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종반부에는 그에 못지않은 질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드라마가 그렇지 뭐’라는 쓰디쓴 위안(?)이 종반 시청 소감이 됐다. 시청자가 무관심하면 조기종영이, 너무 관심 가지면 고무줄 연장(延長)이 기다리고 있는 게 TV 드라마들의 관행임을 입증한 셈이다. 지난 1월 14일 방송분에서 아버지 서태수(천호진 분)는 ‘상상암’ 진단을 받았다. 뒤이어 암세포가 해당 조직 바닥에 깔려 있다는 설명을 붙여 ‘바닥암’까지 등장했다. ‘바닥암’도 ‘상상암’도 의학정보와 무관한 ‘글짓기’의 세계이다. 결국 시간을 (질질)끌다 ‘진짜 암’이 선고됐고 아버지는 돌아가신다. 용두사미의 주말용 가족잔혹극이었다. ‘상상암’은 아버지를 살릴 의도조차 없었던, 시청률을 위한 노림수였나. 애초부터 정해진 줄거리이며 전개였다고 제작진은 항변할지 모른다. 연장까지 무려 52회간 가족이야기를 풀어내야 했기에, 무리수는 없을 수 없겠다. 그러나 새삼 홈페이지의 ‘소개’를 다시 읽어보게 된다. 원래 하려던 얘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서다. “흙수저를 벗어나고 싶은
그와 그녀가 있었다. 사랑이 있었다. 그 사이에 시(詩)가 흘렀다. 시와 그들의 관계는 마치 물과 같아서 부드럽고 연하게 서로 스며들어 있었다. 하늘과 바람처럼. 눈과 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표 나지 않게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 정확한 때에 머무르는 채로. 패터슨과 로라 부부처럼 어쩌면 세상만물은 다 상호보완적이다. 몽상가와 시인, 영감과 행위, 춤과 노래, 일과 휴식, 잠과 꿈. 그는 성냥 같은 아주 사소한 물건으로부터도 시를 길어올린다. 시골마을 ‘패터슨’의 버스 운전기사인 패터슨은, 오래된 애마 같은 낡은 버스를 몰며 어쩌면 인류가 태곳적부터 해왔을 중요한 일인 시 쓰기를 이어간다. 로라에게 시를 보여준 적은 없다. 패터슨의 시 노트는 필사본조차 없는 꾹꾹 눌러 쓴 유일본이다. 다만 둘은 날마다 시 이야기를 한다. 그녀가 없다면 마치 시를 쓰는 이유도 없다는 듯이. 그는 시를 ‘쓰지’만 그녀는 시 자체다. 그냥 사는 게 시적이다. 굳이 햇볕도 안 드는 지하실에 틀어박혀 종이와 씨름하지도 않는다. 로라는 커튼이든 머핀이든 아무 ‘도화지’에나 떠오르는 무늬를 그날그날 그린다. 몹시 즉흥적인 것 같지만, 일련의 질서가 있고 흐름도 있다. 그녀는 (
“다들 그렇게 마음을 바꾸니까 세상이 안 바뀌는 겁니다.” 박경수 작가의 드라마 <귓속말>의 핵심적 대사다. 얽히고설킨 먹이사슬 같은 정·재계와 법조계의 구조적 비리를 타파하려는 양심의 소리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탄핵과 장미 대선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현실을 곧장 반영한 듯한 시의성까지 겸비해 시청률도 높았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고 싶은 정의감을 반전의 연속인 ‘긴장’ 속에 미니시리즈로 보는 일은 생각보다 꽤 피로했다. 산산이 부서져 나가는 인생들을 보는 일도 사실 힘들었다. 비극과 파국으로만 치닫는 구조일수록, 개인의 실수가 주요 얼개가 되기도 했다. 거대악과의 전면전을 다루었지만, 되레 ‘개인의 탓’이 커 보이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사건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슷한 설정과 흐름의 드라마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법정물 자체에 질렸다는 반응도 나왔다. 2017년은 ‘법’이라는 영역이 현실과 드라마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때로는 칼 대신 법전을 든 영웅담 같기도 했다. 그만큼 도처가 살풍경했다. 희망은 멀리에 있었고,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고단했다. 올해 드라마들이 전반적으로 작가의 사회 비판적
흐뭇한 일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누적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했다. 흥행보다 더욱 값진 것은 쏟아지는 호평이다. ‘일본군 위안부 소재를 상업영화로 영리하게’ 잘 빚어냈다. 어떻게 이런 민감한 역사적 상처를 (은근슬쩍) 자연스레 웃음과 공감으로 녹여내면서도 핵심 이야기는 또렷이 그려냈을까. 가장 큰 성취는 일상성으로의 전환이다. 일단 유쾌하고 따뜻하다. 평범한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사로부터 사연을 풀어간, 딱 36.5도의 영화다. 주인공 나옥분(나문희 분)은 시장통에서 옷 수선집을 꾸리며, 구청에 민원만 무려 8000건을 올린 민원왕이다. 잔소리꾼으로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도 별명이 ‘도깨비 할매’다. 구청에 새로 온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분)는 이 ‘블랙리스트 1호’ 할머니의 폭풍 민원을 칼같이 자른 원칙주의자다. 그런데 민재가 영어능통자임을 안 옥분이, 악착같이 과외 선생을 부탁하면서 일은 꼬이고 관계는 얽힌다. 필사적으로 배우려는 할매와 거절하는 민재의 사연이 마치 로맨틱코미디 장르처럼 엎치락뒤치락하며, 두 남녀(?)는 티격태격하다 정든다. 민재는 나중에 옥분이 가슴 깊이 감춰둔 그 아픈 상처와 비밀을 알게 된다. 옥분이 평생 듣고
운이 좋았다. 김광석의 노래를 바로 곁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를 직접 만나는 일은 쉬웠다, 그때는. 그가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던 무대는, 소박했고 문턱도 낮았다. 그의 노래는 완벽하게 아름다웠지만, 그는 노래를 마치 ‘일꾼’처럼 부르는 자신의 ‘현실적’ 자세를 유지했다. 김광석에게 노래는, 신성한 노동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노래를 통해 장차 일구려는 꿈과 터전에 대한 사명감과 목표가 분명한 사람 같았다. 대단한 목청과 함께 건실한 생활인의 땀내를 풍기던, 귀한 사람이었다. 그 유명한 ‘천 회 공연’을 마치고 잠시 휴식기를 갖겠다던 그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돌연 숨졌다. 아니, 사망 보도가 뉴스에 나왔다. 그가 전설이 된 지금도 생각한다. 김광석의 요절을 가장 바라지 않았을 사람은 김광석 자신일 것이라고. 수사는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2017년 가을, 그 의혹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안해룡 감독과 <다이빙 벨>을 공동 연출한 이상호 기자의 두 번째 감독 작품인 영화 <김광석>이 개봉했기 때문이다. 요즘 검색어 상위를 도맡고 있는 ‘서해순(故 김광석의 아내)’이라는 이름은 국민적 관심사가
어쩌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온갖 무리수 속에 출범하던 그때부터 예상됐던 시나리오다. 조만간 혹은 먼 훗날, 결국은 보게 될 거라 여겼던 그런 영화가 나왔다. 나오고야 말았다. 어언 십여 년이 흐른 후에 말이다. 생각보다 빨리 나온 것일까? 너무 늦게 나온 것일까? 해직 언론인들로 구성된 뉴스타파 팀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제야 비로소 확인되는 것들, 눈앞에 보이면서도 조금도 막아내지 못한 수많은 일들. 그것은 회한 자체였다. 당하는 동안에도 ‘미래’가 뻔히 보였던 일들이었다. 다만 체계적으로 그 처음과 중간과 끝의 전모를 돌아보는 일은 중요했다. 영화라는 매체는 이런 ‘종합 정리’에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 <공범자들>은 말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얼굴과 이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그들이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결정의 순간’들과 함께. 모든 절차를 폭력적으로 마무리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공영방송을 사유화하고 통제한 연결망은 굳건했다. 그것이 급기야 세월호 ‘거짓 보도’에 이르러 대참사로 빚어지는 과정은 참혹했다. 이 덤덤한 영화가 기어코 관객을 울리는 장면이다. 2014년 4월 16일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제격인 영화라고 여겼다. 다들 흥행을 쉽게 점친 것도 이런 특성이 더해져서였다. 작은 화면으로 보면 아무래도 아쉬울 영화였다. 류승완 감독에 대한 (재미)기대와 함께, 스타들이 대거 포진한 멀티캐스팅이 주는 예상 흥행치가 높았다. 명실상부한 여름대작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개봉 당일 새벽의 이른바 평점 테러는 잔인했지만, 이후 ‘군함도’가 겪어야 했던 일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실제 영화를 본 관객들의 소감은 묻히고, ‘보지도 않았지만 쓰레기’라는 식의 악평이 난무했다. 700여만의 관객이 들었지만, “나는 좋았다.”고 말하려면 어쩐지 용기가 필요한 기이한 분위기였다. 영화 ‘군함도’는 친일청산과 부역자 처단에 대한 의지를 다지게 함과 동시에, 노동착취와 임금체불이라는 낱말을 관객의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임금체계를 설명하는 길고 딱딱한 매뉴얼 낭독은, 군함도에 끌려와 처박힘과 동시에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 매뉴얼은 겉으로는 일견 그럴싸하다. 문제는 그 당시는 물론 현재 2017년까지 실제로 ‘돈’을 받은 조선인이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이 수칙은 (지킬 의사 없는) 공수표였다
가슴 뜨거워지는 출발이었다. 대형 화면이 담아내는 고미술품들은 만져질 듯 실감났고, 그림 속 혹은 역사 속의 한 순간을 떠낸 느낌마저 주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시청자로 하여금 천년도 더 이전의 ‘우리’에 대해, 그렇게 면면히 이어져 온 공동체 속의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등장한 작품들부터가 놀라웠다. 360여명의 일하는 백성이 주인공인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의자왕의 진정한 면모를 짐작케 하는 바둑판,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한글 찻잔. 뜻밖의 보물들을 통해, 아득히 묻혀 있던 ‘우리’라는 실제적 감각이 재발견되고 있었다. 지난 3월 26일 정규 첫 방송된 ‘천상의 컬렉션’(KBS1)은, 시사교양프로임에도 이른바 전문가는 등장하지 않는다. 여섯 명의 연예인 호스트가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한 문화재를 하나씩 소개하고 현장평가단 백 명이 투표해 최고의 보물을 뽑는다. 보물들이 주인공인 셈이다. 제작과정에서 철저한 자문을 거친다니, 역사왜곡 염려도 없다. 그저 더 넓고 풍성해진 해석의 다양성을 즐기면 된다. 지난해 연말 두 차례의 파일럿 방송이 호평 받았던 이유다. 오랜만에 공영방송다운 기술력과 사명감까지 아우른 시도였다. 예
모두 안다. 여기에 ‘이야기’는 없다. SBS 새 수목극 ‘푸른 바다의 전설’ 말이다. 그럼에도 ‘시청률’은 나온다. 워낙 대단한 스타들이 포진해서인가. 좋아하는 배우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도 물론 시간은 잘 간다. 한 시간쯤은 금세다. 잘생긴 남녀배우들의 클로즈업만 보고 있어도, 소위 몰입의 즐거움이 생길 수도 있다. 순간 집중력을 유도하는 장면들의 모음이라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다. 스타, 설화와 민담, 영화 속 장면들, 명소들, 이런 요소들의 모음도 드라마틱할 순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져서 배우 개개인의 ‘순간 매력’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적받아 마땅하다. 어쨌든 이야기는 실종 상태다. 설사 ‘흥행’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운이 좋았을 뿐이다. 마치 드라마 작법이나 제작의 교본처럼 인정받으며 ‘생태계’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우리 시청자를 위한 것도 아닌 오직 중국에 수출할 요량이었던 게 훤히 보이는데, 그 ‘한류전략’도 정치적 이유로 막히고 만 사례가 아닌가. 최면술까지 써가며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천하의 사기꾼 허준재(이민호 분). 장난처럼 모든 것을 손가락 하나 까딱만 하면 다 가지고 주무르는 그다. 그의
이상한 곳이다. 이상하다 못해 괴기스럽고 섬뜩하다. 피가 철철 흐르는 바닥과 침상을 특히 선정적으로 보여주며, 의사들은 (거의 항상)극도의 흥분 상태다. 미친 정도가 ‘실력’ 혹은 진정성처럼 느껴진다. 카지노가 주요 기반시설인 이상한 동네의 이상한 시골병원 ‘돌담의원’이 무대인 SBS 새 월화극 ‘낭만 닥터 김사부’ 얘기다. 물론 모병원인 서울의 거대 종합병원 또한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개인적 원한과 분노, 심각한 콤플렉스, 과도한 출세욕 등으로 의대에 진학해 냉혈한이 됐거나 ‘사이코’ 혹은 모사꾼이 됐다는 식의 캐릭터들이 즐비하다. 아무도 제대로 병원 밖의 삶을 꾸리고 있지 못한 듯하다. 병원 말고는 갈 데도 없고, 병원 근무자들 외에는 만날 사람도 없다. 정서가 메마른 일중독자들처럼 보인다. 의사가 선망의 직업만 아니라면, 그들의 어딘가 엇나간 삶의 궤적이 불쌍할 정도다. 그렇게 서울의 일류대 종합병원에서도 알아주던 실력자들이 어떤 각자의 사고로 인해, 정선의 분원인 ‘다 쓰러져가는’ 돌담의원에 모이게 된다. 물론 이 한적한 병원 또한 ‘인술’이 꽃피는 ‘대안병원’ 따위가 아니다. 본원에서 좌천된 이들이 오는 엄연한 조직관리의 말단이다. 김사부(한석규
모든 것은 ‘만남’으로부터 비롯된다. 로맨스 드라마가 첫 만남의 순간에 유난히 공을 들이고 어떻게든 ‘운명적’ 주술성마저 부여하려 애쓰는 것도 지당하다. 그 만남이 일단 심상치 않아야 ‘다음’이 있다. 향후 스토리를 전개시키면서 이 관계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식으로 정당성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에 대한 제작진의 특별한 고심의 흔적들이 사실 로맨스물의 역량이다. 이른바 불륜 드라마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불륜’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기에 더 섬세하고 아름답게 첫 만남을 각인시키려 한다. 때로는 설명적이다 못해 호소력이 지나쳐 과잉인 경우가 많은 이유다. KBS 수목극 <공항 가는 길>은 주요 인물들이 모두 결혼 중인데, 배우자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그야말로 ‘정통’ 불륜 드라마다. 그런데 대체로 언론의 평이 신기할 정도로 호의적이다. 배우들에 대한 호감인 것일까. 그러다 곧 깨달았다. 이 드라마에서 ‘부부 관계’ 설정은 매우 특이하다. 부부라고는 하는데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세상에서 가장 거리감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거의 체질적일 듯한 이질감이다. 그래서 ‘불륜’으로 안 보인다. 유부남들은 조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