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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 피해 생존자 얼마 남지 않았다

법적 책임은 사라져도 정치적 책임은 영원히 남을 것

본 기사는 우리학교 여성학연구소가 발간하는 『젠더와 문화』 제11권 2호(2018)에 수록된 연구논문 ⸢페미니스트 정의론의 관점에서 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의미와 과제⸥를 발췌하여 요약한 것입니다.     

 - 엮은이 말

 

 

이 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피해해결을 위한 각종 단체의 운동에 쏟아지는 폄훼와 왜곡이 심각하고, 피해 당사자들이 급격히 고인 되고 있는 현실에 착목한다. 일본의 아베 정권이 과거 사실을 부인하고 ‘도덕적 책임’이라는 수사로 법적 책임을 회피하며 당사자들이 존재하지 않을 순간을 기다리는 시점에 기존의 법적/도덕적 책임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피해당사자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우리에게 남겨진 책임을 강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미국의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의 ‘정의론’을 토대로 알아보고자 한다.


아이리스 영은 개인의 과실이나 불운, 선택의 책임으로 협애화하는 법적 책임 모델을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정치적 책임 모델로 대체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정의의 문제는 개인의 특정한 삶(선택, 불운 등)이 아니라 그가 처해 있는 취약한 사회적 위치에 대한 것”이며, 따라서 그에게 구조적 부정의란 “개인의 행위와 제도가 상호작용한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 된다. 영의 ‘정치적 책임’ 개념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에게 상당히 빚지고 있는데, 아렌트는 일찍이 특정한 정치 공동체의 성원인 우리 모두는, 잘못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기에 법적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로울지 모르나, 공동체의 이름으로 행해진 잘못과 구조적 부정의의 책임자라고 지적, 정치적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진 잘못에 대한 집단적 책임을 수용하는 데서 나온다. 


그러므로 아이리스 영의 논법에 따르자면,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법적 책임을 회피한 채 수사적 차원으로 동원되는 도의적 사과는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닐 뿐 아니라,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아 가해자의 법적 책임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정치적 책임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에게 있어 ‘죄’는 범죄나 잘못을 저지른 자, 혹은 행위를 통해 범죄나 잘못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자에게 귀속되는 것이지만, ‘책임’은 범죄나 잘못을 저지르도록 한 정부나 제도, 혹은 실천을 능동적, 수동적으로 지원한 모든 경우에 귀속한다. 그러므로 “범죄행위(죄)는 도덕적, 법적 영역에 속하고, 동조와 저항(책임)은 정치적 영역”에 속한다.


법률적 죄와 구분된 정치적 책임을 쟁점화함으로써 얻는 효력은 첫째, 타자의 고통에 무관심하여 상관의 명령만 따르는 무사유의 죄를 저지르는 우리 안의 아이히만(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의 전범)들이 포스트식민 이후에도 곳곳에 산재하며, 이것이 위안부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강화하고 재생산해 왔다는 점을 분명히 해주기 때문이다. 둘째, 일본군 성노예제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수행집단으로 등장했던 정치적 책임의 주체들이 가해자의 수행집단과 피해자와 동맹했던 수행집단으로 양극화되어 왔다는 점을 이해하게 한다. 특히 가해자편에 섰던 수행집단들은 진실의 부인과 재현의 폭력을 통해 피해생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켜 왔다. 셋째,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법적 책임은 끝났다고 말하며, 이른바 ‘속죄기금’을 통해 ‘도덕적’ 책임을 진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영의 논의를 적용하면 법적 책임과 연결된 도덕적 책임을 이해하지 못한 전형적인 가해자 서사의 맹점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결국 법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일본의 ‘도의적 책임’은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담론적 장치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일본 정부가 바라는 바대로 몇 분 남지 않은 피해당사자들과 직접적 가해자들이 더 이상 현실공간에 존재하지 않을 때, 그리하여 법적 책임이 사라졌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묻고 어떤 정신을 계승할 것인가. 


일본 정부는 여전히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도의적 책임을 내세우면서 피해자의 개별적 불운이나 잘못된, 자발적 선택이라는 가해자 중심의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과거 식민지와 포스트식민의 부정의로 인한 가시적, 비가시적 혜택을 여전히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 혜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의무가 있다. 성찰은 공동체 성원들이 국가가 과거 공동체 내외부에 저지른 부정의에 대한 책임(responsibility) 및 요구되는 배상을 제공할 책임(liability)에 대한 인식 없이, 정당하게 혜택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포함한다. 이 때 배상은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을 철저히 시정한다는 의미에서, 초국적 정의 구현에 필수적 과정이 된다. 분명한 사실은 가해자는 아직 법적 책임을 지지도, 진정한 사죄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법적 책임을 묻는 듯하지만 모순적으로 문제의 주변만을 맴돌며 외교적 수사로 관리해 왔다. 분명한 점은 한국 정부 또한 적극적으로 시정하지 못한 구조적 부정의로 피해당사자들은 물론 시민들에게 책임이 가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를 시정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관심이나 외교적 수사 등으로 피해 당사자들의 취약한 사회적 위치를 재생산한 책임 또한 무겁다. 한국 정부는 지금이라도 장기적 로드맵을 가지고 차분히 준비된 기획 하에 법적 근거와 예산, 인력을 확보해 일본군 성노예의 잔혹함을 기록하고 연구하며 세계사에 남을 운동의 역사를 계승할 방안을 찾아야한다.


한 국가의 과거와 현재가 그렇듯, 미래 또한 특정 국가의 시민들만의 것은 아니다. 세계 평화와 정의를 지향하는 양국의 시민들은 법적·도덕적 책무는 물론, 지금도 확장되고 전승되고 있는 정치적 책임까지 통감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냉전체제가 종식되지 않고 있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에 비로소 균열과 변혁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대화’를 통한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수평적 연대와 ‘화해’ 또한 실현 가능한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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