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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정책의 일시성의 신화

경제적 관점 대신 보다 포괄적인 사회학적 관점 채택이 필요한 시점

1990년대 가속화된 이주의 지구화를 통해 한국 사회에 다양한 외국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2011년 12월 31일 현재 체류 외국인의 수는 1,395,077명이다. 그중 90일 이상 장기체류 외국인은 80.1%인 1,117,481명이고, 단기체류외국인은 19.9%인 277,596명이다. 장기체류 외국인은 크게 보아 ‘등록외국인’과 거소신고만 하는 ‘재외동포자격 외국국적동포’로 구성되어 있다. 등록외국인은 총 982,461명에 달하는데, 단순기능인력 547,324명, 전문인력 47,095명, 유학생 68,039명, 결혼이민자 144,681명, 영주자격자 64,979명, 기타 110,34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취업자격별 체류자로 통계로 바꾸어보면, 총취업체류자 595,098명 중 단순기능인력이 547,324명으로 거의 92%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단순기능인력으로 분류되는 이주노동자가 이렇게 증가하게 된 것은 한국정부의 체계적인 노동력 수입정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바로 직전까지 한국은 강력한 국경 통제 정책을 유지했다.

특히 1991년 이전까지 한국정부는 ‘외국인 단순기능직 취업금지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저숙련 노동자가 한국 노동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하계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사증면제 체결협정, 무사증 입국의 허용, 입국심사 간편화 등을 통해 출입국 완화조치가 취해진 틈을 타서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입국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당시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중국과 교류의 물꼬를 텄는데, 이를 기점으로 하여 조선족이 한국에 대거 몰려들게 되었다. 마침 당시 한국은 소위 3-D 직종 취업기피현상과 건설경기의 호황으로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어 저임금 노동자가 절실한 상태였다. 이주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입국도 쉽고 일자리도 구하기 쉬운 나라로 인식되었다. 입국비용과 고용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기회의 땅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급증하던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정부는 이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정책의 부재를 틈타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단기 비자로 들어와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게 됨으로써 출입국관리법이 정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세가 되었다. 한국정부는 간헐적으로 단속을 하긴 하였지만,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저렴하고 조직력없는 이주노동자를 암묵적으로 활용하였다. 하지만 노동력 부족을 이러한 편법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은 외국인 단순기능인력의 고용을 합법화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였다. 또한 인권과 노동권이라는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시민사회와 운동단체도 이주노동자정책 수립을 줄기차게 요구하였다. 이에 한국정부도 마냥 방치할 수 만은 없어 이주노동자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정책은 크게 보아 산업연수생제도로 시작해서 고용허가제로 변화되어왔다. 고용허가제는 반정주와 단기순환정책과 같은 좁은 경제학적 시각을 취한다는 점에서 유럽의 ‘손님노동자 시스템’ 또는 ‘일시 외국인노동자정책’과 유사하다. 1945년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전후 경제성장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일시적인 체류자로 간주하여 도입하는 정책을 펼쳤다.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 노동자가 홀로 이주해 와서 지정된 기간 동안 지정된 작업장에서 노동하다가 기한이 지나면 자발적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가정 아래 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모든 사회적 연결망으로부터 단절된 원자적인 경제적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노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해온 곳에서 자리를 잡고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 뿐만 아니라 초국적인 가족 연결망을 구축하여 살아간다. 1970년대 초 오일 쇼크로 인해 유럽의 경제가 나빠졌을 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가 귀환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나왔다. 경제가 나빠지고 일자리를 잃어도 이주노동자는 쉽게 되돌아가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을 터이지만, 우선 이주의 목적을 충분히 성취하지 않고서는 이주노동자는 되돌아가지 않는다. 문제는 거주국에서 거주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목적이 상향조정되고 그래서 성취되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선진국에 살다보면 높아진 기대치 때문에 처음 이주할 때 가졌던 소박한 목적이 상향되는 것이다. 또한 되돌아가려고 해도 본국의 경제상황이 더 안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되돌아가지 않는다. 또한 유럽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는 아무리 불법체류자라 해도 강제로 쫓아내기 어렵다. 시민사회가 이를 쉽게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유럽은 가족재결합을 통한 이주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이 살아갈 주거지, 학교, 의료, 사회적 시설 등을 마련해야만 했다. 싸구려 노동력을 들여온 줄 알았지만 결국에는 이주국에 정착하여 일종의 에스닉 집단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은 열악한 조건, 저임금, 극심한 불안정, 낮은 성취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노동하고자 원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영구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시’ 이주노동자에 갈수록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은 이미 유럽의 사례가 보여주었듯이 반정주 단기 ‘순환’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정부는 고용허가제의 적용을 받는 ‘일시적 등록’ 이주노동자 그리고 ‘영구적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둘 다를 활용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도 한국정부는 일시적 등록 이주노동자가 불법적 거주자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도의 통제를 실행하려고 할 것이다.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정부는 더 폭압적으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부정해야 하는데, 이는 지구적 규범에 모순된다.

두 번째, 한국정부는 경제적 이득 때문에 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고용을 묵인할 것이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활용함으로써 중소기업이 얻는 경제적 이득을 포기하라고 강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고용허가제는 단기간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실패할 것이 확실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구체적인 이웃으로 정착하고 에스닉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구적 정착이 일어날 것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경제적 인간은 공공정책의 목적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존재로부터 격리될 수 있다고 잘못 가정한 많은 유럽 국가들과 같이 한국이 수입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이지 인간이 아니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한국의 이주노동자는 장기체류는 물론 합법적으로 정주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중소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길게 생존하도록 써먹은 후 폐기할 수 있는 값싼 상품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용허가제는 ‘일시성의 신화,’ 즉 이주가 단기적인 경제적 고려사항에 의해 동기화되고 장기적인 정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대고 있다. 이러한 신화는 이주노동자는 가족 없이 홀로 이주해 와서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지정된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자발적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자발적 귀환 신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주노동자는 고향의 연결망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될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어떠한 연결망도 만들 수 없는 ‘비사회적이고 원자적인 경제적 개인’으로 간주된다.

만약 한국정부가 이익과 비용의 경제적 관점을 계속 고수한다면, 반드시 미국과 서유럽이 보여주는 사례와 같이 비싼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정부는 강력한 법집행을 통해 이주노동자가 에스닉 집단으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가족, 친지, 공동체 유대와 관계의 연결망을 공고히 하고 결국 에스닉 집단을 형성할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한국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내적 논리를 지닌 이주노동자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기적인 경제적 관점 대신 보다 포괄적인 사회학적 관점을 채택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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