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19.3℃
  • 맑음강릉 14.4℃
  • 맑음서울 19.4℃
  • 맑음대전 19.1℃
  • 맑음대구 16.3℃
  • 구름많음울산 13.4℃
  • 맑음광주 17.3℃
  • 구름많음부산 16.0℃
  • 맑음고창 13.6℃
  • 맑음제주 16.9℃
  • 맑음강화 18.2℃
  • 맑음보은 18.5℃
  • 맑음금산 18.3℃
  • 맑음강진군 17.4℃
  • 구름많음경주시 13.8℃
  • 맑음거제 16.6℃
기상청 제공

대학의 파국과 인문학의 몰락

대학이 나아가야 할 길, ‘인문 정신’을 갖춘 대학생 양성

본 기사는 우리학교 한국학연구소가 발간하는 『한국학논집』 제74집(2019)에 수록된 연구논문 ‘대학의 기업화와 인문학-대학의 파국과 인문학의 몰락’에서 발췌하여 요약한 것입니다.

- 엮은이 말 

 

 

지금 대학에 파국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마치 파국으로 치닫는 영화 속 설국열차의 모습과 흡사하다. 지난 20년간 급격한 세계화와 정보화의 파고 속에서 대학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 앞에서 대학은 전면적으로 기업화되어가는 현실에 브레이크를 걸 만한 장치를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기업처럼 경영되는 대학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대학의 상품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대학 밖 권력이 정해주는 서열 순위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유에스 뉴스 & 월드 리포트> 같은 2류 시사 주간지나 ‘쿼콰렐리 시몬스’(QS) 같은 전문 평가기관이, 국내에서는 <중앙일보>,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사들이 작성하는 ‘대학 평가’에서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대학은 자신의 모든 자원을 평가 기관들이 제시하는 척도에 맞추어 정렬하고 배치시키고 있다. 교수당 연구비, 논문 게재편수, 학생 취업률 등 궁극적으로 그 결과물은 모두 숫자로 표시된다. 왜냐하면 계량화된 지표를 써야만 대학 순위를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량화된 지표들은 정부와 대학, 한국연구재단 같은 전문기관과 연구자들이 모두 공유하는 공통의 존재양식이 되었다. 교육부, 한국연구재단, 대학의 공식 문서들을 보면, 각 조직의 인력 현황에서 시작해 논문 게재편수, 단행본 저술 수, 학술대회 개최 수 등의 나열로 이어지는 천편일률적인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이런 존재양식에는 다양성보다 획일성을, 자율성보다 종속성을, 순수학문보다 실용 학문을 중시하는 위계질서가 강하게 녹아 있다.

 

이 지점에서 묻자. 도대체 대학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대학은 ‘자유를 향한 의지’라고 규정되어 왔다. 물론 그 자유의 조건은 시대와 더불어 변화할 수밖에 없다. 대학은 중세 유럽에서 자유로운 지성의 네트워크로 탄생했다. 이후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에 대학은 교양교육을 통한 지적자원의 공급원으로 그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은 이미 자본주의 외부에 있는 비평가가 아니라 자본의 순환시스템을 담당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전문지식이 고도로 세분화하고 자본의 논리 아래 국가라는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현재, 대학은 기업화된 테마파크, 글로벌한 관료적 경영체로 변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 사이를 편력하던 지적 네트워크를 매개한 중세형 대학, 국민국가의 후원에 힘입어 근대화의 전초기지로 기능했던 근대형 대학에 이어 대학을 기업으로, 학생을 소비자로 간주하는 패러다임 속에서 대학은 과연 스스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을 것인가.

 

보편적 가치와 교양적 지식을 중요시했던 과거 전통사회와 달리 인간적인 사고나 정서, 감성적 상상력과 열정보다는 생산과 소비와 경쟁이라는 이념에 기반한 현대사회가 대학에 요구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법칙이 지배하는 ‘실용적 가치’와 ‘전문적 지식’이다. 이 모든 지식은 ‘시장’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근대 세속적 인본주의가 추구한 학문의 이념은 인간에게 초월적인 숭고함이나 이타적인 삶을 추구하도록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체제는 물신주의 이윤과 소비행위만 앞세우기 때문에 대학의 학문과 제도마저 기업자본주의의 생산과 판매의 모델로 이해한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문화의 생산뿐만 아니라 노동과 교육의 규제도 조건 지으며, 나아가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과 인문 교육에 대한 엄밀한 성찰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문명사를 움직여온 동력이 마치 과학기술의 발전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그 바탕에는 언제나 인간과 세계를 향한 문화적 열망과 도덕적 정열, 즉 ‘인문 정신’이 바탕하고 있었다. 따라서 대학과 대학인 모두는 변화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문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서 그 변화하는 사회가 새롭게 요구하는 인문적 자질을 갖추는 일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 물론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삶의 환경 속에서는 인문 교육에 대한 인식도 전통 사회와 달리 새로운 형태로 변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시대 변화에 걸맞게 부단히 새로운 인문학적 의제들을 생산하고, 새로운 문제들을 정의하며 새로운 이론들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교육은 그것을 지원하는 인적, 물적 자원의 양적 수준과 교육 과정의 질적인 우수성이 결합해서 개인과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인류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육성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과 노동이 투입되는 자원의 양적 수준에 의해서 부가가치가 결정되던 산업사회에서 연구개발 등 창의적인 지식과 정보생산의 질적 수준에 의해서 부가가치가 결정되는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해가는 문명사적 전환기에서 개인의 인적 자본의 질적인 수준을 결정하는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이 자유와 자율성이라는 본래적 가치를 가지고 대학 교육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그 사회의 지적인 수준과 미래를 향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학의 재구조화가 교육의 질 제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마나 한 일이다. 대학 교육에서 국가권력・사학권력・시장권력의 삼각동맹이 더욱 강고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의 주체인 대학은 진정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고등교육법 제28조에 따르면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 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응용 방법을 교수·연구하며, 국가와 인류 사회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우리는 파국으로 치닫는 대학의 교육 생태계 앞에서 대학의 존재이유는 무엇인지, 대학의 핵심 역할인 교육의 문제는 어떠한지, 그리고 대학 교육을 담당할 도구 내지는 방법으로서의 인문학은 온전한지를 계속해서 묻고 따져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