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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편지] 차를 마시면서 정구지 지짐 생각

1.
마시던 차 다 떨어져서 옆방에 가서 마시고 오던 날, 바로 그날에 자네가 부쳐온 우전(雨前)이란 차의 향기를 마신다. 차는 우리나라 지리산 야생차, 그 가운데서도 곡우(穀雨) 전에 갓 돋은 참새 혓바닥 같이 연하디 연한 잎새들을 따 모은 우전의 향기를 마실 때마다, 나는 자네에게 조금 미안하고 세상에 대해서도 다소 쑥스럽다.
내 비록 차를 좋아 하긴 하지만, 그리고 우전이 세상에서 제일로 맛있는 차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나는 아직도 우전을 마실 가정 형편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교단에 섰으므로, 형편으로 말하자면 자네가 나보다도 훨씬 더 못할 터! 그런 자네가 보낸 차를, 곡우가 되려면 아직도 많은 날이 남아 있는 시점에서, 나 혼자 이렇게 홀짝홀짝 마시게 되다니, 향기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나 또한 어찌 미안하고 쑥스럽지 않겠느냐.

2.
지난 토요일, 갑자기 휴대폰이 지리리리 울리더니, 금방 찬물에 세수를 한 것 같은 자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더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시골에 내려와서 정구지 지짐을 굽고 있어요. 내일이 할아버지 생신이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뜨거운 철판 위에 드러누워 있는 보름달 같은 지짐 넙디기 위에 갑자기 선생님의 둥근 얼굴이 겹치는 거 있죠. 마음 같아서는 이 지짐 한 넙디기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고 싶지만 길이 너무 머니 어쩌면 좋아요”

우와 그렇더냐! 자네가 굽는 보름달 속에 나의 얼굴이 떠올랐다니, 갑자기 엔도르핀이 확 솟구치고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구나. 그러나 우스개 삼아서 한마디만 蛇足(사족)을 덧붙인다면, 다음부터는 길이 너무 멀어서 가져올 수 없단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말이다, 언젠가 같이 읽은 ‘論語(논어)’ 가운데, 근사하게 요약, 압축을 하자면 이런 내용이 있지 않더냐.

생각이야 언제나 하고 있지만
집이 너무나도 멀리 있다고?생각이 간절치 않을지언정
어찌 집이 멀리 있다 하겠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