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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골이야기] 신동집 시인

대명캠에 한 시인이 있었네


추억에 대해 그대는 몇 개의 아이콘을 가지고 있는가? 영상, 음악, 소리, 빛깔, 후각, 미각..... 그대는 무엇을 클릭해 추억을 퍼오는가?


‘음악은 부드러운 음성 사라질 때 추억 속에 진동한다’


이건 셀리인지 누구인지 이름깨나 날린 한 영미시인의 시 구절일 게다. 그대 또한 음악을 통해 무엇인가를 추억해 본 적 있는가? 아니면 향기를 통해 누군가를 추억해 본 적은? 빛깔은 또 어떤가. 화사한 봄날의 난분분하는 저 살구꽃 빛깔을 통해 그대는 무엇을 회상하게 되는가?


그 시절, 계명대학에 대한 기억은 내게 노란 현기증으로 피어나던 개나리와 앉은뱅이의 꽃잔디, 아릿하고 달콤하고 쌉싸름하고 화냥년 같던 라일락 냄새로 추억된다. 단지 인생이 스무 살 언저리의 그것만으로 마감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시절의 치기 속으로 다시 뛰어들 수 있으리.


숨어있던 아이콘을 클릭하자 망각의 내‘안이비설신의’속으로 떠오르는 사람 하나 있다.


그대는 혹시 알고 있는가? 지금은 대명동 캠퍼스라고 부르는 그곳, 교문으로부터 직선으로 이어진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던 한 시인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 신동집 교수.


시인이라는 아이덴티티 외에, 생활인으로서 그가 걸머져야 했던 또 다른 에고가 어떠했건, 그 시절 그곳에 한 시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 풋풋한 기억으로 향수를 자극한다.


80년대, 프로듀서로 연명하던 시절, 무슨 일로 선생께 전화를 드렸던 적이 있는데 그때 선생은 이미 병고로 발음마저 어눌했다. 불투명하던 시인의 발음과 모처럼 떠올렸던 모교에 대한 아련한 추억. 아프거나 막막했던 대명동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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