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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골이야기] 동산병원의 유래

조그만 진료소로 시작


초기의 동산병원은 병원 이름조차 불교식 용어인 제중원으로, 또 그전에는 미국약방으로 불리고 있었다. 초대 동산병원장인 존슨 의사(Dr. Woodbrige O. Johnson)가 대구에 오기전에 선교사 부해리(Mr. Bruen)는 미리 대구에 1899년 10월 26일 도착하여 대구시 남성로 구 제일교회 자리에 있던 선교기지 내 조그만 한옥을 개조하느라 약 10일간 일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초기 병원은 병원 형태라기보다 조그만 진료소에 불과했다. 그해 7월 약품은 주문한 대로 이미 대구에 도착한 상태였다. 동산병원의 정확한 개원일은 확실하게 기록된 바 없다. ‘로즈’의 기록에 의하면 ‘진료소는 크리스마스 직전에 문을 열었다’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동산병원 개원일은 백준기 병원장 시절 임의로 10월 1일로 정하고 지금도 그날을 개원일로 잡고 기념하고 있다. ‘동산’이란 말의 어원은 지금 찾을 길이 없다. 꽃동산 처럼 조그만 언덕이라는 뜻이거나, 동쪽의 산이라는 뜻이 있을 듯 하지만 현재 남산교회가 있는 곳을 남쪽으로 본다면 서산이 되어야지 동산이라고 하기 어렵다. 


본래 동산병원의 땅은 무연고자의 묘지가 있던 공동묘지 자리였고, 일부 연못과 채소밭이 있을 뿐 사실상 버려진 땅이었다. 이 땅은 달성 서씨의 문중 땅으로 되어 있었지만 원래의 서씨 문중땅은 고려조(918-1399 AD)에는 현 달성공원터였다. 그러나 당시 정부가 개입하여 현 동산병원 부지와 맞교환하게 된 것이었다. 선교사들이 땅을 보는 안목은 높았다. 햇볕이 잘 들어오고 배수가 잘 되는 곳이며 그렇게 높지 않은 땅, 바로 그곳이 현재 동산병원의 동산이다. 선교사들은 이 동산위에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정원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동산병원은 지역 최초 서양의학을 소개한 곳이며 최초의 제왕절개수술(1909년) 나환자 구제 사업, 금연운동, 천연두 예방 접종, 건강 교육 등을 하였으며 의사, 간호사 수련기관으로서 사명을 다하였다. 한동안 동산병원 문전에만 죽지 않고 도착하면 목숨을 건진다는 말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초기 동산병원은 의료사업 선교사업뿐 아니라 서양문물을 전파하는 산실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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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