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인도 대사관이 한남동 언덕배기에 있는 ‘가정집 단독주택’건물이던 시절이었다. 여행을 앞두고 비자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나는 그 ‘집’ 대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즈음 인도를 가겠다는 사람은 무역업을 하는 사람이거나 매우 드물게 있는 단체여행객이 전부였다. 양복 입은 남자 서넛뿐인 줄에 내가 이어 앉자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 보았다. 여자는 나 혼자였다. 인터뷰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연 채광의 방에는 검소한 나무 책상이 하나 놓여있고 책상 건너편에는 간디옹을 연상케 하는 초식성 인상의 자그마한 인도 영사님이 앉아 있었다. 여행을 가려고 한다 하니 영사님은 고개를 갸웃하며 누구와 같이 비자를 받느냐 했다. 나 혼자라고 말하자 짙은 쌍거풀 속에 영사님의 거뭇거뭇한 눈이 동그래지더니 그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충격을 한 그릇 꿀꺽 잡수신 것이었다. 비행기 같이 타고 갈 사람은 있느냐 물으신다. 당연히 나 혼자라고 말하자 인도 영사님, 어쩌나, 충격 두 그릇째 맛있게 잡수시고 뒷통수 뿅망치까지 제대로 맞으신 듯 말을 더듬으며 당신 손을 쥐락펴락 부비며 결국 결정적인 한마디를 물으신다. “집에서 허락을 했나요?”설마설마했는데 집에서 허락했냐는 질문
브라질로 해외 촬영을 다녀온 지인 G에게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기분 좋을 때, 무엇인가 잘 해냈을 때, 상대방 솜씨가 마음에 들 때 G는 오케이 사인으로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것이다. 은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정직하고 원초적인 표현이다. 너 최고!, 나 지금 기분 최고!, 방금 한 그 말 최고! 그가 이 말을 하고 싶어할 때마다 내 눈 앞엔 이미 우뚝 세운 그의 엄지손가락이 한 명의 병사도 잃지 않고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의 척추처럼 꼿꼿하게 서 있다. 말하자면 G의 브라질 출장 후유증이다.브라질에서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사람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말이 끝나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G의 눈을 보고 물음표 표정을 던졌단다. 한두 명이 아니라 정말 모두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나 잘 했나요?' '내 인터뷰, 오케이컷인가요?'라는 표정을 지었단다. 그러면 G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잘 했어요.' ' 좋았어요.' 콜롯세움의 로마황제의 그것 부럽지 않게 바쁜 G의 엄지손가락이었다.그렇게 브라질에서 G는 많은 대화를 엄지손가락으로 대신 했다고 한다. -맛있어요?/맛있어요. -브라질 좋아요?/최고예요. -저기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