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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국제화를 선도하는 우리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연구와 민족문화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통해 한국학의 세계화에 기여

 

● 1970년 한국민속연구소로 출발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은 1970년 ‘한국민속연구소’로 출발하였다. ‘한국민속연구소’는 1973년 한국학연구소로 개편되어 한국문학·역사학·철학을 아우르는 한국학 연구기관으로 발전하였고, 1989년 세계화 흐름에 부응하여 ‘한국학연구원’으로 확대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학연구소가 출범하던 1970년대에는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정립하려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였다. 우리나라가 1945년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지만 건국 과정에서 남북분단, 동족상잔의 분열과 혼란을 겪게 되어 1960년 4월 혁명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식민지 잔재 청산과 민족문화 복원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학문이 막 시작된 척박한 환경에 제약되어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학문다운 한국학 연구가 시작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1973년 계명대학교에서 한국학연구소가 창립되었다. 당시 계명대 한국학연구소는 후일 문학·역사학·철학 각 분야에서 한국학을 이끄는 대표적 학자로 성장한 분들이 연구소 설립을 주도하였다. 그분들의 열정과 역량 덕분에 계명대 한국학연구소는 그 설립 초기부터 계명학파로 불릴 만큼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한국학의 국제화를 목표로 내건

계명대학교의 한국학연구원 승격은
선견지명으로 시대의 흐름을 앞서 가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 1989년 한국학연구원으로 승격, 한국학 국제화를 선도

그 전통을 계승하며 발전하던 한국학연구소는 1989년 한국학연구원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1980년대 후반 선진강대국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국제정세를 주도하자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세계화에 동참하게 되고, 계명대 한국학연구소 또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한국학연구원으로 확대 개편된 것이다.

 

한국학연구소가 한국학의 연구에 주안을 두었다면, 이를 확대 개편한 한국학연구원은 그 성과를 더욱 확대 심화시킴과 동시에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한국학을 국제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현재 계명대 한국학연구원은 그 규정에 ‘한국학연구와 민족문화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통해 한국학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활동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계명대학교는 한국학연구원을 대학의 부설연구소에서 부속기관으로 승격시킴으로써 확대된 역할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였다.

 

● 한국학연구의 확대와 국제학술지 ‘Acta Koreana’ 발행

1970년대 학계에서는 한국학연구가 크게 유행하여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한국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당시 세계화라는 국제흐름에 부응해 한국학의 국제화를 추구한 대학연구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점에서 한국학의 국제화를 목표로 내건 계명대학교의 한국학연구원 승격은 선견지명으로 시대의 흐름을 앞서 가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계명대 한국학연구원은 한국학 국제화를 위해 타대학보다 앞서 1998년 한국학 영문저널 ‘Acta Koreana’를 창간하고, 국외 한국학연구자를 대거 초청해 국내 학자들과 함께 발표 토론하는 대규모 계명한국학국제학술대회(KICKS)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였다. 한국학연구원의 이러한 활동은 오래지 않아 국내 및 국제 학계로부터 그 연구업적을 객관적으로 공인받는 결실을 맺었다.

 

한국학연구원은 한국학연구를 확대하기 위해 전통적인 문·사·철 분야에 더해 사회과학·생태학·음악·미술·건축·무용 분야로까지 연구를 넓혀 갔다. 또한 한국학연구원은 계명대 동산도서관이 소장한 고문헌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한국학연구를 심화시켜 왔다. 동산도서관의 벽오고문헌실은 그 장서가 8만권이 넘을 뿐 아니라, 서울대 규장각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보물급 문헌을 소장하고 있다. 나아가 주요 테마에 대해서는 5~10년에 걸친 중장기 연구계획을 수립하여 연구를 심화시켜 왔으며, 그 성과를 한국학연구총서로 간행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10년 연구프로젝트로 진행된 ‘낙중학’ 연구이다.

 

낙동강 중류지역의 유학 발전과정을 해명한 ‘낙중학’ 연구는 현재 10년 연구계획을 완료하였고, 그 성과는 8권의 낙중학연구총서로 간행되었다. 다방면에 걸친 왕성한 연구 활동으로 현재 한국학연구원은 국내 한국학연구소 가운데서는 연구능력 상위권에 속한 연구기관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발행하는 학술지 ‘한국학논집’ 또한 조기에 한국연구재단 등재지로 승격되었다. 국제적으로는 계명대 한국학연구원이 발행하는 한국학 영문저널 ‘Acta Koreana’가 2012년에 톰슨 로이터의 저널 인덱스인 A&HCI와 앨스비어의 인덱스인 SCOUPUS의 등재지로 동시에 선정되면서 결실을 맺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A&HCI와 SCOUPUS 등재지만 인문분야 국제학술지로 인정하고 있는데, 특히 A&HCI의 심사는 통과하기가 어렵기로 정평이 나있다. 한국학 연구중심이라 할 우리나라에서조차도 이 심사를 통과한 한국학전문저널은 계명대 한국학연구원의 ‘Acta Koreana’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Korea Jounal’, 그리고 서울대 규장각연구원의 ‘Seoul Jounal of Korean Studies’ 등 세 개뿐이다.

 

● 한류와 해외 한국학 수요 증가

지금 한류가 붐을 일으키면서 다수의 세계인들이 한국문화에 매료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상 작품상을 받을 것을 비롯해 다수의 한국 영화가 세계영화제에서 속속 입상하고 있고, K-pop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가운데 BTS가 발표한 노래가 연속으로 빌보드차트 1위에 올랐다. 한류는 현재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타고 있고, 이에 따라 한국문화의 근원과 그 창조성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다수의 외국대학이 경쟁적으로 한국학과를 개설하였고, 한국학을 공부하는 외국인 또한 급증하고 있다.

 

한국학연구원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해외 한국학 수요에 부응해 외국대학의 한국학과 또는 한국학연구소들과 학문적 교류를 확대하고 있으며, 영문저널 ‘Acta Koreana’와 국제학술대회(KICKS)를 통해 학문적 소통을 심화하고 있다. 나아가 국외의 한국학연구 및 교육기관과 공동연구프로젝트를 개발하여 한국학의 국제화를 체계화하고 제도화하는 방안도 강구하려 한다.  

 

● COVID-19 유행 이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며

2년 넘게 계속된 COVID-19 사태로 한국학연구원도 그 활동에 적지 않은 제약을 받았다. 특히 장기간의 국경봉쇄와 이동통제로 한국학 국제화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사태가 끝나간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2022년 한국학연구원은 유럽과 미국의 대표적인 한국학연구소와 중장기 공동연구 프로젝트 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학술대회 또한 이와 연계해 한국학연구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기획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5개년 연구프로젝트인 ‘한국전통사상의 사회과학적 복원’을 총괄하는 학술대회와 3년 연속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말 연구기획으로 학술대회 ‘경북 한글 자료의 가치와 한글 산업 육성 정책 방안’을 개최한다. 우리말 연구는 특히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해외의 한글교육과도 연계되어 있으며, 2019년에 개최된 한국학연구원의 국제학술대회의 문제의식을 계승하고 있다.

 

2019년의 국제학술대회는 최근에 한국학과를 개설한 동유럽 여러 대학 및 동남아시아 여러 대학의 한국학 전공교수들을 초청해 한국어 및 한국문화 교육 발전방안에 대해 공동으로 논의한 학술대회였다. 또한 ‘근대 이행기 한국학과 기독교 사상의 유입: 사상과 언어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와 낙중학의 후속연구인 ‘낙중학의 전개, 한강 정구의 직전 제자들의 활동과 사상’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준비 중에 있다. 





[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계명대신문사로부터 이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대학 방송국 활동을 하던 시절이 떠올라 잠깐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대학생에게 권하는 한 권을 고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여러분과 같은 대학생일 때 제가 제일 좋아했던 소설은 틀림없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었습니다. 책을 펼치면 어느새 나는 프랑스 벨빌 거리 어느 골목,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7층 계단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살찌고 병이 든 로자 아줌마에게는 힘이 부치는 계단입니다. 모모는 그녀가 자기를 돌봐주는 대신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습니다. 로자 아줌마는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 알았기에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를 좋아하는 하멜 할아버지는 길에서 양탄자를 팝니다.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말하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입니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로자 아줌마는 모든 위조 서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 대 째 순수 독일인이라는 증명서도 있습니다. 로자 아줌마는 한밤중에 겁에 질려 지하실로 숨어 들어가기도 합니다. 로자 아줌마의 병이 깊어갈수록 모모는 밤이 무서웠고, 아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