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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특집

지방선거, 무관심 속에서 견제와 균형을 잃어가다
참여 없는 민주주의는 의미 없고 체제 불완전성만 지속돼

 

“야망은 야망으로서 대항하여야 한다… 인간이 천사라면 정부는 필요 없을 것이다. 만약 천사가 인간을 지배하도록 되어 있었다면, 정부에 대한 어떠한 외적ㆍ내적 통제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도록 되어 있는 정부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이점이다. 우선 정부로 하여금 피지배자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 다음에는 정부가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정부에 대한 가장 중요한 통제는 국민들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인류에게 보조적 장치의 필요성을 가르쳐주고 있다.”라는 말은 미국의 건국 아버지 중 한 명이며 제4대 대통령인 제임스 메디슨이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에 근거하여 권력 분산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제도화’를 통한 민주주의 실현을 강조하면서 주장한 내용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지난 6월 1일 실시됐다. 2018년 ‘6·13 지방선거’ 이후 4년 만에 치러졌던 이번 선거는 광역단체장 17명과 기초단체장 2백26명, 광역의원 8백72명, 기초의원 2천9백88명 등 4천1백3명과 교육감 17명, 교육의원 5명 등 총 4천1백25명을 선출하게 되는 대규모 선거였다. 우리 대구에서도 대구시장 1명과 구청장·군수 8명, 대구시의원 32명, 기초의회의원 1백21명, 교육감 1명을 선출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선거제도는 동시지방선거로 실시된다. 광역자치단체장, 광역의회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기초의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기 때문에 4대 동시지방선거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이다. 특히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는 전국 11개 선거구에서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도입되어 처음 실시됐다. 또한 공직선거법상 ‘4인 선거구 분할 가능’ 조문을 삭제하고 광역의원 정수를 38인, 기초의원 정수를 48인 각각 증원하였다.

 

관심을 잃어버린 지방선거

그러나 지방선거의 분위기가 예년과 달리 너무 차분하다. 도통 선거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우편함엔 선거공보물이 그대로 꽂혀 있고 출마한 후보자들의 선거유세도 예전만 못하다. 유권자들의 무관심으로 선거 분위기가 거의 조성되지 않고 있어 후보나 지지자들만의 잔치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 이는 지난 3월 9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몇 개월 사이에 실시되면서 중앙정당 및 국민의 눈과 귀가 온통 대통령 선거에만 쏠려 있었던 점과 정쟁에 급급한 중앙정치권의 볼썽사나운 모습, 일부 단체장이나 의원들의 비리로 인한 유권자들의 지방자치에 대한 외면 등이 주된 요인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지방정치보다는 중앙정치에 대한 관심이 크다.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의 원리가 작동되어야 민주주의는 올바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중앙선거 수준인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만 관심이 지나치게 집중되면 지방선거의 의미를 퇴색시켜 중앙정치와 지방정치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바람직한 견제와 균형을 해할 수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정치를 보아온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은 한국의 정치는 중앙권력을 향해 모든 활동적 요소를 휘몰아가는 소용돌이와 유사하다고 하면서 ‘회오리 바람의 정치(Politics of Vortex)’라고 규정했다. 이는 우리사회가 다원성을 잃고 중앙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정치문화적 속성을 빗대어서 한 말이다.

지방선거 내에서도 견제와 균형이 존재해야 한다. 자치단체장은 행정부, 의회의원은 입법부의 역할을 수행하니 만큼 자치단체장과 의회의원 사이에는 견제와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한국적 지역주의 하에서는 일정 지역의 자치단체장과 의회의원들이 모두 같은 정당 출신들로 채워져서 바람직한 의미의 견제와 균형이 있기 어렵다. 모두 같은 지역정당 출신들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지역주의 정당구조 하에서는 자치단체장 선거나 광역의회의원 선거에서의 정당공천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국민들 사이에 정치 혐오감이 팽배해 있는데 이번 6·1 지방선거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시되어 투표율이 저조할 것이란 예측도 있었다.

 

지방정치와 민주주의의 답보상태

1995년 이후 전면적으로 실시되었던 지방자치 선거는 그 목적을 실현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제도적 관점’에서 판단하면 1987년 이후 지방자치를 포함한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많은 진전을 보여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참여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지방정치와 민주주의는 답보상태에 있다고 판단된다. 특히 역대 지방선거 결과들은 이러한 잠정적 결론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듯하다.

아래에서는 1995년 이후 7차례 실시되었던 지방선거와 그 결과에서 나타났던 특징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지방선거의 중앙정치화’이다. 이는 각 정당들이 지방선거 전략으로서 지방정치 및 쟁점이 아닌 중앙정치와 국가적 쟁점을 선거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데 기인한다. 이런 점에서 현직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지방선거 결과를 예측하는데 매우 유효한 지표가 된다. 이번 2022년 지방선거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치러졌다는 점에서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선전했다. 

둘째,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비해 유권자들은 지방선거에 대해서는 낮은 관심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 ‘저조한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2022년 대선(77.1%)이나 2020총선(66.2%)에 비해 낮은 50% 후반의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 또한 농촌지역보다는 도시지역의 상대적으로 낮은 투표율, 젊은 층의 투표율이 조금 올라가고 있으나 50~6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투표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낮은 참여의 원인은 지방정부 및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 현상의 증대일 것이다. 특히 중앙정부에 비해 지방정부는 입법권, 예산권 등에 있어 자치를 위한 권한을 매우 제한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지방유권자들의 지방정부에 대한 ‘정치적 효능감’을 감소시키고 결국 지방선거에서의 투표율의 저하를 가져오는 주요 원인으로 작동된다 할 것이다.

셋째, 특정 지역의 단일정당지배현상의 지속과 강화 현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선거 결과는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정 지역에서의 ‘일당지배체제’ 현상은 ‘무투표 당선자의 증가’라는 또 다른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무투표 당선이란 선거구 의원정수보다 후보자 수가 적은 ‘미달’인 사례를 말한다. 무투표 당선으로 인해 후보자에 대한 검증기회가 사라지면 유권자의 투표권이 박탈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영남에서는 국민의힘, 호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수십 년째 ‘일당 지배’를 하고 있다 보니 경쟁 후보가 나타나지 않은 곳들이 많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는 7천6백16명의 출마자 중 4천1백25명을 선출하며 이 가운데 4백94명이 무투표로 당선되었다. 대구에서는 29명의 시의원 중 20명이 무투표로 당선되었다. 이는 전체 선출 인원의 12%에 달하는 비율이다. 이는 그만큼 기득권 거대 양당 체제가 공고히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방자치는 분권을 통해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주민자치를 실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셈이다.

 

문제는 제도에서 참여로 옮겨가

이와 같은 지방선거의 여러 특징이 2022년 선거에서도 재현되는 것은 한국정치의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공고화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부정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견제와 균형’의 원리와 경쟁이 없는 정치체제는 정치엘리트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통제 능력 상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제도’에서 ‘참여’의 문제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의 수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다수에 의한 지배이기 때문이다. 다수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민주적 제도 자체는 비민주적 정치체제 형성의 절차적 정당성만 부여할 뿐이다. 즉, 참여 없는 민주주의는 의미가 없으며 그 체제의 불안정성 또한 지속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의 의미와 지방자치의 취지를 되새겨보면 지방선거의 중요성은 절대 가볍지 않다. 지방선거의 본질은 지역주민의 삶과 살림을 책임질 일꾼을 뽑는 데 있다. 주거·교통·환경은 물론 교육 등 주민들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정책과 집행을 다루게 될 일꾼들이다. 지방선거가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아 ‘깜깜이’로 치러질수록 부도덕하고 무능한 후보자들이 활개를 칠 것이다. 지역의 미래를 위해 지방선거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하기 위한 일차적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이 수반하는 책임은 유권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숙한 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서는 주민들 ‘다수’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조건인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