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10편, 산문 75편, 한시 15수 도합 100편의 연암 시문을 정선한 이 책의 정독(精讀)만으로도 조선 최고의 문인 박지원(1737~1805)을 느끼는 데 어느 정도 충족이 될 것이라 여겼지만 <열하일기> 내 작품이 극히 일부만 들어간 점이 못내 아쉬웠다. 또 <열하일기>는 여러 기관이 앞다투어 선정하고 있는 ‘동서양고전100선’에 모두 편입될만큼 그야말로 ‘국민고전’임에도 불구하고 몇 해 전까지는 1968년 이가원선생이 2책으로 번역한 민족문화추진회본 외에 온전한 번역본이 없었다. 오래전 필요에 의해 이 번역본을 읽으면서 전공자조차도 참 읽기 어려운 책이라는 느낌과 함께 번역서는 역시 10~20년 주기로 늘 새롭게 다시 나오는 게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올초에 나온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는 앞서의 여러 아쉬움을 일거에 불식시키고 요즘의 교양인들을 강력히 흡인(吸引)할 만한 시각적 화려함과 문체적 세련미를 갖춘 책이다.
‘고전 교양서’의 성찬(盛饌)이 마련되었으니 이제 제대로 식사를 즐겨야하지 않을까. <열하일기>를 통해 그 여행길의 동행자가 되어 박지원의 울분, 해학, 풍자, 질타, 각성, 주체 등을 공감(共感)해 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유득공은 <열하일기서>에서 “입언설교(立言設敎)의 훌륭한 책으로 <주역(周易)>과 <춘추(春秋)>가 있는 데 그것이 흐르고 변하여 ‘우언(寓言)’과 ‘외전(外傳)’이 되었다. 저서가(著書家)에게는 이 두 길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뒤 <열하일기>를 <장자(莊子)>와 대비하면서 ‘외전’이고 ‘우언’이면서, 거짓없는 참(眞)만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의 도가 담겨 입언설교의 본지에 어그러지지 않는 훌륭한 책이라고 극찬하였다.
또 김경선은 <연원직지서(燕轅直指序)>에서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 홍대용의 <(담헌)
연기>,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특징을 각각 대비하면서 <연행일기>는 ‘편년체(編年體)’, <연기>는 ‘기사체(記事體)’, <열하일기>는 ‘입전체(立傳體)’로 명명하였다. 김창업과 홍대용의 연행록(燕行錄)을 함께 읽으며 <열하일기>의 수용과 개성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더 나아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최부의 <표해록>, 신유한의 <해유록> 등 우리 선조들의 유명 해외 견문록을 통해 인도, 중국, 일본을 느껴봄은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