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의 사회부 기자를 소재로 한 MBC 드라마 ‘스포트라이트’를 보면, 가상과 현실이라는 모호한 경계가 눈에 띈다. 손예진과 조윤희라는 대표적인 미녀 스타가 기자로 분하여 브라운관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를 잡고 아나운싱을 하는 모습은 이미 배우시절 훈련된 발성으로 여타의 방송기자들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조윤희의 경우, 꽤나 많은 연습을 한 듯, 방송기자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최근 들어 각 방송사들은 점점 더 기자들의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여기자의 경우는 더 그러하다. 아니 꼭 방송사들이 입사 기준으로 외모를 평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팬카페의 활성화 때문에, 이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져 보일 수도 있다. 방송사 기자 팬카페는 거의 대부분은 미모를 갖춘 젊은 여기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일찌감치 2000년에 ‘스타비평’이라는 책에서 방송사의 젊은 여성 앵커를 다루며 여배우 를 빗댄 적이 있다. 방송사에서 젊고 예쁜 여성만을 방송앵커로 기용하겠다면 차라리 발성이 좋은 김지호나 고소영을 캐스팅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한국의 방송뉴스가 기사 들어오는 대로 읽어주는 수준이라면, 대본을 정확
2004년 11월부터, 필자는 여러 진보 언론단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개정 신문법에서 독자적으로 기사를 30% 이상 생산해야 한다는 조항을 집어넣어 포털의 언론책임을 면책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진보언론인들은 필자의 주장에 공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토론을 기피하며, 포털 면책용 신문법 개정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이는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디어다음의 경우 그 당시 상근 취재 기자 20여 명을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문법 등록대상이었다. 그러나 시행령 논의과정에서 독자적 기사생산 100분의 30 이상 조항이 첨가되어, 미디어다음마저 빠지게 되었다.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는 문화체육관광부 뉴미디어팀에 공식적으로 “미디어다음과 오마이뉴스의 전체 기사수와 자체 생산 기사수를 계산하여, 신문법 등록 여부를 가려달라.”는 요청을 해놓았다. 핵심은 블로거뉴스단과 시민기자단의 기사를 자체 생산으로 볼 것이냐에 달려있다. 만약 그렇다면 미디어다음이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해야 하고, 아닐 경우, 오마이뉴스의 등록을 취소시켜야 한다는 게 인터넷미디어협회의 입장이다. 모든 것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독자적 기사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인한 10대들의 촛불시위가 화제가 되고 있다. 한겨레, 경향 등 이른바 진보언론들은 386세대에 이어 또 다른 민주화 세대가 나타났다며 호들갑이다. 그러나 그들의 선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 주부터 10대들의 집회참여율이 뚝 떨어졌다. 집회에 참여하는 10대들을 경찰이 수사한다는 인터넷괴담이 그 이유로 분석된다. 10대들의 촛불은 처음부터 인터넷의 여론 증폭, 그리고 좌파 386세대가 집회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있었다. 만약 진정으로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미국산 쇠고기 뿐 아니라, 검역체계 자체가 불안한 한국소, 무얼 먹여 키운 지도 모르는 중국산 해산물 등도 다루었어야 했다. 이런 먹거리 전반의 문제를 제외하고 오직 미국소 비판에만 집중했다는 점에서 이번 촛불시위는 10대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아닌, 낡은 386세대의 기획에 10대들이 빨려들어갔다는 분석이 더 정확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진보매체들이 10대를 띄우면서 별다른 근거없이 20대를 더욱 더 무능력한 세대로 낙인찍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2.0세대라 띄우며 예찬한 10대들의 인터넷과 핸드폰 소통 능력은 20대 혹은 30대까지 모두 해당되는 일이다. 이는
언제부터인가 한류붐이 이어지면서 지속가능한 한류라는 말이 화두가 되었다. 쉽게 말하면 천년 만년 한류를 더 확산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노무현 정권에서는 거대 연예기획사들과 자주 간담회를 열면서, ‘해외진출 시 국가가 보증을 서달라’느니, ‘해외공연 자금을 지원해달라’느니 하는 민원성 청탁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디워’와 같이 미래 영화산업의 기반이 되는 컴퓨터 그래픽 등의 원천 기술의 경우가 아니라면, 정부의 지원이 지속가능한 한류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겨울연가’의 성공 이후 한국의 드라마 제작사는 ‘슬픈 연가’등 아류작을 만들며 너도 나도 일본 진출을 시도했다. 그리고 대부분 실패했다. 자연스럽지 않은 정략적 문화수출은 해당 국민들의 눈에도 간파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음반 시장은 해외진출은커녕 저작권 침해 등으로 국내 시장 자체가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한류의 가능성을 보여준 1988년생 가수 윤하의 활약은 문화계 전체가 검토해볼 만하다. 윤하는 15살때 우연히 자신의 동영상이 일본 음반 기획자의 눈에 띄게 되면서 일본에 건너가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윤하는 그렇게 2004년 일본에서 싱글앨범 ‘유비키리’로 데뷔했다. 2
지난 대선은 물론 이번 총선에서도 역시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층의 낮은 투표율은 논란이 되고 있다. 물론 이는 젊은 세대의 승리라 불려졌던 2002년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늘 20대의 투표율은 낮았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낮아진다. 정치권은 선거때마다 대학을 찾으며, 젊은 세대를 위한 공약을 내세운다. 그래도 그들의 투표율은 높아지지 않는다. 진보좌파 측에서는 이를 두고 젊은세대가 점차 보수화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정치 무관심이야말로 대표적인 보수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문제가 아니다.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정치권이 선거때마다 내놓는 젊은층에 대한 공약은 항상 두 가지이다. 첫째, 일자리를 늘리겠다. 둘째, 등록금을 인하하겠다. 이는 벌써 문민정부의 출범이었던 김영삼 정권부터 늘 반복되는 공약이었다. 벌써 16년이 지났다. 젊은층이 바보가 아닌 이상, 진보든 보수든 이 공약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이미 간파하고 있다. 그 누가 행정부와 청와대를 집권하든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대학등록금은 항상 올라간다는 것쯤은 체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에는 언론의 잘못된 이슈 제기도 한 몫한다. 언론은 늘 대학생의 편에서 취업과 등
2004년 문화계와 경제계에는 유밀레 신드롬으로 뜨거운 논의가 벌어졌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2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유밀레 공화국’이라는 패션회사를 차려, 미국으로부터 무려 4천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유밀레는 도발적인 섹스 칼럼 등을 통해 신세대 기업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4천억 원의 투자유치도 진실이 아니었고, 패션회사 역시 유밀레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윗세대가 좌지우지하며 이른바 유밀레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유밀레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언론이었다. 언론은 유밀레측이 보내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끼며, 유밀레 신드롬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특히 ‘우리는 회의도 노래방에서 한다’는 발언이나, 일과가 끝나면 바로 댄스학원에서 춤을 공부하는 등, 비상식적인 사업방식도 여과없이 보도했다. 4-5명짜리 벤처기업에서도 회의는 늘 진지하게 하며, 퇴근 이후의 여가시간은 없다. 기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진지함과 성실성을 갖춰야 함은 정주영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유밀레와는 조금 차원이 다르지만, 천재소녀로 각광받으며 20대에 SK임원으로 스카웃된 윤송이 상
2008년 세대의 현실을 보면 독특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계, 학계, 경제계, 언론계, 문화계 등을 통틀어 386세대 밑의 새로운 세대 그룹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90년대 초반 그토록 개성과 창의력이 넘쳐난다는 신세대들이 정작 한창 활동을 할 30대에 이르렀는데도,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제 40이 넘은 386세대가 30대였을 때, 이미 그 세대는 각계각층에서 리더의 지위에 올라서 있었다. 대표적인 386주자인 임종석 의원은 2000년 35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를 이끌어 나가게 되었고, 68년생인 ‘다음’의 이재웅 대표는 99년, 32세의 나이에 자신의 회사를 코스닥 등록에 성공시켰다. 문학계에서는 공지영을 비롯한 386세대가 일찌감치 90년대 문단의 흐름을 주도했고, 영화계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 등이 30대 초반부터 기대를 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대부분 사회의 주류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통상적으로 90학번 이후 세대를 칭하는 신세대의 현실을 보자. 현재 정계에서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2선에 도전하는 김희정 의원 한 명만이 뛰고 있다.
20대의 95%가 월 평균 88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거라는 88만 원 세대론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20대는 선거때만 되면 미래를 이끌어 나갈 주역으로 각광을 받지만, 실제로 이들을 위한 정책은 전무했고, 세대경쟁에서조차 밀려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88만 원 세대론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1994년 당시의 신세대론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신세대론이란 92년도에 대학을 입학한 20대는 80년대 학번과 달리, 개성과 창의를 중시여기는 전혀 새로운 존재라며 그들은 추켜세웠던 내용이다. 이 신세대론은 IMF경제란이 터지던 1997년 중반까지, 절대 불변의 진리로 인정받았다. 신세대와 88만 원 세대는 크게 보면 같은 세대이다. 그런데 14년 전에는 창의와 개성으로 한국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듯이 조명을 받던 젊은 세대들이 이제는 월 1백만 원의 수입도 안 되는 가장 불우한 세대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과연 이 두 가지 세대론 중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한국의 젊은 세대들의 좌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무언가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사회적 조건상 실패하여 88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