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추창민 감독의 영화 ‘광해’가 누적 관객 수 천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 사상 일곱 번째로 천만영화 반열에 올랐다. ‘광해’가 개봉하기 직전에는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밀어내고 한국영화 최다 관객 수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 이후 3년 동안 잠잠하던 한국영화시장에 두 편이나 되는 천만영화가 나온 셈이다. 한 해에 한 편 나오기도 힘든 천만영화가 2012년 하반기에만 두 편이나 나왔으니 말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영화가 이만큼이나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실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둑들’의 경우 티켓파워가 현저히 떨어졌음에도 최다관객 수 기록 경신이라는 타이틀에 눈이 멀어 과도한 상영관 수를 배정받았다. 정상적이었다면 관객 수와 비례해서 상영 횟수를 줄이는 게 당연한 경우였다. ‘광해’의 경우는 ‘도둑들’처럼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도둑들과 마찬가지로 천 개가 넘는 상영관을 확보했었다. 물론 두 영화 모두 흥행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매력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두 영화가 영화
패럴림픽(Paralympics)에 대해 들어봤는가? 패럴림픽은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올림픽 개최국에서 열리는 장애인올림픽을 말한다. 하계 혹은 동계올림픽 종료 후 2주일 내에 10일간 개최된다. Paralympic 이라는 단어는 ‘옆의, 나란히’를 뜻하는 그리스어 전치사 ‘para’와 ‘Olympics’의 합성어라고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는 밝히고 있다. 즉 육체가 건강한 사람들의 올림픽에 대응할만한 장애인들의 올림픽이라는 말이다. ‘패럴림픽’은 또한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Paraplegia와 올림픽(Olympics)의 합성어라는 설도 있으며 64년 제2회 도쿄 장애인올림픽 이후 공식용어가 되었다. 패럴림픽은 영국 루드비히 구트만 박사가 2차 세계대전에서 척수장애를 당한 전역군인들의 재활 수단의 하나로 운동 요법을 도입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어, 1948년 하반신마비자 26명을 모아 경기를 가진 것이 시초이다. 한국은 68년 제3회 텔아비브대회부터 선수단을 파견하였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올림픽 기간이면 밤을 새워서라도 선수들의 경기를 시청한다. 그에 부응하듯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5위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패럴림픽의 경우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