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는 2009년의 키워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도 사회 분위기도 삭막하고 어수선한데 드라마는 더 살풍경하다. 엇비슷한 불륜과 복수, 출생의 비밀이 드라마마다 넘친다. 흔히 ‘막장 드라마’일수록 설정만 파괴적이다. 쉽게 잊고 쉽게 용서하며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진행되곤 한다. 그런데 지난 주 종영한 KBS <미워도 다시 한 번>(극본 조희, 연출 김종창)은 ‘명품 막장’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인기를 끌었다. 30년에 걸친 원한과 복수의 스토리는 상식을 거부하는 극단의 세계지만 탄탄한 만듦새나 연기력의 조화는 통속극의 절창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은 겉으로는 여걸들이 이끌어가는 극 같지만, 실제 모든 이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것은 30년 전에 자식세대의 앞날을 정해버린 故 한병수 회장이다. 주인공 한명인(최명길 분) 회장의 아버지요 명진그룹의 창업자다. 한명인은 아버지라는 유령에 휘둘려 살아간다는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과도 같은 캐릭터다. 30년 전의 교통사고와 사라진 첫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아버지가 짠 틀대로 산다. 그 짜여진 각본에 적응 못해 30년을 신경안정제로
이 세상에서 사람이 배반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면 밥과 어머니일 것이다. 탯줄과 밥줄, 그 숭고함을 모르는 자는 무지(無知) 속에 악행을 저지른다. 그런 점에서 고우영 화백의 <일지매>는 탁월하다. 탐관오리를 털어 가난한 이에게 대가 없이 나눠주는 그는 영원히 의로운 영웅의 전형이다. ‘일지매’ 본인이 사라져도 그의 뜻만은 매화 향기와 함께 남기 때문이다. MBC 수목드라마 <돌아온 일지매>(극본:김광식,도영명/ 연출:황인뢰,김수영)는 우직하게 고우영 원작을 영상에 옮겼다. 원작의 유명세도, 만화를 영상으로 옮기는 일도 쉽지 않은 장애물이었다. 시청률은 첫 방송 후 줄곧 하락세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황인뢰의 <돌아온 일지매>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그의 필생의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본인이 거듭 밝혔듯이 황인뢰는 액션활극이 처음이다. 멜로의 거장으로 작품마다 주목 받았던 왕년의 명연출자 대신, 그는 용감하게 ‘신참’의 길을 택했다. 한국 드라마로서는 드물게 ‘초지일관’ 제작의도를 밀고 나갔다. 사전제작 70%의 성실함은 24회 전편을 안정감 있게 끌어갔다. 하지만 <돌아온 일지매>는 시청자의 눈과 귀를 제
그녀는 노예였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했다. 술시중, 잠자리시중에 이어 해외원정 골프 접대까지 참석해야 했다. 이것이 신인배우 장자연의 사생활이었다. 노예처럼 싫은 소리 한 번 할 수 없었다. 어떤 사정이든 거부를 하면 곧 ‘보복’으로 돌아왔다. 인기 드라마 KBS <꽃보다 남자>에서 악녀 3인방이었던 장자연의 중도하차 뒤에는 이런 비밀이 숨어있었다. 대중들의 눈에는 한낱 신인배우에 불과한 그녀가 이렇게 복잡다단하게 생활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자살한 후에야 드러난 사실이다. 그녀가 죽기 직전에 남긴 일명 ‘장자연 리스트’에는 많은 남자들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된 내용이 꽤 구체적이다. 믿기도, 믿지 않기도 어려운 ‘법정 소송 문건’ 형식의 장자연 자필문서는 우리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무엇보다 그 문서에 적힌 남자들의 직업과 직함이 우리를 경악케 한다. 그 문서에는 이 사회를 들어다 놨다 할 수 있을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말 한 마디로 일개 여배우 하나쯤 매장시켜 버리는 건 일도 아닌 사람들이 장자연을 공유(共有)했다. 그리고 그 밀실 노릇을 했던 곳이 연예기획사 사무실이었다. 겉으로는 사무실이지
이제 대학 졸업식은 세상에서 제일 민망한 풍경이 돼버렸다. 썰렁한 식장과 총장의 비장한 ‘위로사’는 그야말로 살풍경한 현실을 대변한다. 더군다나 ‘위기의 계곡’을 지나는 제자들에게 “영원할 것 같은 고통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 된다”는 미사여구 따위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한다. 대학 졸업장을 백수 증명서쯤으로 받아두어야 하는 청년들은 졸업식 날 피울음을 토한다. 사교육비 10여년에 비싼 학자금까지 대느라 고생한 부모에게 그나마 할 수 있는 효도란, 학사모를 씌워드리는 ‘미풍양속’이 아니라 식장에 못 오시게 막는 일이 됐다. 청년들의 ‘첫발’을 받아주지 않는 실업대란은 아예 사회로의 진입로를 봉쇄한 형국이다. 밥줄이 끊기면 곧 사회적 관계망도 끊긴다. 자칫 사회적으로 고립된 외톨이만 넘실댈 수 있다. 실업이 나이와 직종을 가리지 않고 국민 모두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지만,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이 비정상적인 구조는 대한민국의 미래마저 갉아먹고 있다. 기나긴 학창시절을 끝낸 젊은이들에게 어서 빨리 갈 곳을 정해 주어야 한다. 첫출근의 설렘과 첫월급의 보람을 느껴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 비정한 사회는 구성원 모두를 절망에 빠뜨린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에
한 번 가버린 사람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사형제도가 폐지돼야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불가역성(不可逆性)에 있다. 인간의 오판가능성이 제로가 되지 않는 한, 사형집행은 언제든 억울한 죽음을 유발할 수 있다. 군사독재시절을 거치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법의 이름으로 참살 당할 수 있는지를 목도했다. 1975년의 ‘인혁당사건’은 그 끔찍한 사법살인의 전형이다. 사형이 선고된 지 18시간 만에 여덟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05년 말에 이르러서야 독재정권의 농간이고 조작이었다는 공식조사발표가 이루어졌지만, 그 명예회복의 결과란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당사자들이 이미 죽고 없는데 누가 무엇으로 그 원통함을 갚아 줄 수 있단 말인가? 36년 만에 살인혐의를 벗고 무죄 판결을 받은 정원섭 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수십 년 동안 강간살인범이라는 낙인 때문에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15년의 억울한 옥살이는 그의 인생을 앗아갔고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살아서 누명을 벗고 해원(解寃)했다. 어쨌든 살아남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론이 다시 들끓고 있다. 강호순이라는 한 명의 ‘살인마’를
방송인 허수경 씨가 말 그대로 사전적 의미의 ‘싱글맘’이 된 지 올 12월 31일이면 꼬박 1년이 된다. 세상의 편견과 싸우며 감히 아버지 없이도 아이를 얻고자 했던 그녀는 이제 대한민국 싱글맘의 상징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그녀가 아이와 함께 ‘여자 혼자’ 살면서 겪게 될 미래를 걱정했다. ‘미혼모’와 ‘비혼모’에 대한 사전적 풀이가 검색어 순위를 달궜고, 격려의 말과 함께 악담도 줄을 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고 했다. ‘엄마’가 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아이는 두 몫의 정성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으로도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자기 뱃속으로 아이를 낳고자 하는 열망을 끝내 못 버린 어쩌면 미련할 정도의 간절함이었다. 그렇게 허수경의 딸 ‘별이’는 이 땅에 왔다. 공식적으로 사전적 의미의 첫 ‘싱글맘’의 아이였다. 외할아버지와 엄마의 성을 ‘당당히’ 물려받는 아이였다. KBS 2TV의 휴먼 다큐 <인간극장>은 만삭일 때부터 허수경을 촬영해 육아까지 두 달 동안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2008년 2월 방송된 그들의 ‘가정’은 예상과 달리 너무도 충만해 보였다. 아
지난 해 대통령 선거의 최고 히트곡은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었다. 대세론이 일찌감치 자리를 굳히면서, 한 정당을 제외한 나머지 선거판에서는 ‘거위의 꿈’을 마치 자신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곡처럼 틀어댔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에는 선거결과를 정리하면서, 방송에서 이 노래를 수도 없이 흘려보냈다. 갈라졌던 표심을 수습하고 위로하는 데에는 최적의 노래라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이전부터 국민적 인기를 누렸던 가수 인순이는 이 노래를 통해 명실상부한 국민가수가 됐다. 물론 가수 인순이의 ‘거위의 꿈’은 참으로 감동적인 노래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적절한 위안과 함께 잊혀진 ‘꿈’까지 되새기게 해준다. 그러나, 나이 오십 줄의 산전수전 다 겪은 ‘국민가수’ 인순이가 날지 못하는 거위에 빗댄 ‘꿈’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말 그대로 절망이다. 혼혈로 이 땅에서 힘겹게 분투해온 인순이의 개인사를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청춘에 이 노래를 듣고 감동했던 중장년층이 흰머리 늘어가는 지금, 다시, 새로이, ‘꿈’을 꿔야 하는 이 기막힌 현실은 비통할 뿐이다. 중년의 가장과 학부형들에게 손에 쥔 것 없어도 ‘꿈’만으로 살아보라는 것은 부조리한 비극의 강요다. 이십대 푸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박’을 터뜨렸다. 국정감사장에서 수많은 카메라를 향해 짧고 강렬한 ‘호통’을 친 것이 그대로 생중계되었다. “사진 찍지 마. 성질이 뻗쳐서....”라는 말 사이에 두 글자의 욕설이 포함돼 있었다, 아니다를 놓고 두 갈래의 논박이 이슈가 됐다. 수많은 기사와 칼럼이 유 장관과 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연결 지어 파렴치하다고 성토했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문화부 장관은 엄연히 YTN, KBS 사태에 대해 책임이 있는 언론 주무부처의 수장이다. 방송과 언론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고자 하는 현 정부의 일관된 정책은 문화부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그에 대한 설득이든 해명이든 입장표명을 하기 위해 장관은 국정감사장에 나온 것이다. 유인촌은 장관이 대답해야 할 정공법 대신 정말 화끈한 번외편을 보여주었다. 신기한 것은 의원들의 질문에는 또박또박 화도 안 내고 잘 답변해 놓고는, 사진기자들을 향해 엉뚱한 분통을 터뜨렸다는 점이다. 베이징올림픽 ‘연예인응원단’ 예산의 졸속 집행과 예산낭비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민주당 최문순 의원의 말에도 “사과합니다”라고 순순히 대답했다. 최 의원이 “언론을 탄압한 사람은 예외 없이 감옥에 갔다”며 엄
MBC 수목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극본 홍진아, 홍자람/ 연출 이재규)는 세련미를 갖추었다.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 사극들 틈새에서 눈에 띈다. 기본도 안 돼 있는 ‘듣보잡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수준 높은 공연을 성공시킨 강마에(김명민 분)는 이미 캐릭터를 넘어 화제의 인물이 됐다. 그의 극중 행동이나 어록이 UCC로 인기다. 강마에는 멋지다. 그의 까칠함은 극의 확실한 중심을 잡으며, 다른 등장인물들을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조율하는 역할마저 떠안고 있다. 그 눈부신 능력을 보라! 그는 언제나 거침없이 말한다, “나만 따라와. 그럼 돼”. 그는 나이 마흔에 벌써, 이미, 오래 전에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심지어 나이 어린 제자와의 삼각관계에서도 이겼다. 사랑마저 그의 차지가 되었다. 젊은 건우(장근석 분)는 출발선부터 ‘늙은’ 건우에게 밀렸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강마에 캐릭터는 사기다. 나이 마흔도 되기 전에 전부 이룬 그가, 스물다섯씩이나 먹도록 정규 음악교육을 받아 본 적도 없는 ‘제자’를 키우고 있다. 과연 리틀 건우도 십여 년 후 새로운 ‘마에스트로 강’이 될 수 있을까? 십 년은 길다. ‘천재’이며 ‘절대음감’을 타고난 건우가
이름만 대면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 연예인이 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일 새벽 배우 최진실 씨가 세상을 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자수성가’의 주역 중 하나였던 그녀가 어린 두 자녀까지 두고 모진 결심을 했다. 삽시간에 두 명이나 ‘초대형 스캔들’을 세상에 던져주고 떠났다. 언론의 취재 열기는 가히 하늘을 찌르고, 실시간으로 한정 없이 올라오는 관련 기사들로 인터넷 뉴스는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한 달 전 탤런트 안재환이 뒤늦게 주검으로 발견됐을 때, 언론사는 그 처참한 현장, 그가 앉았던 자리까지 낱낱이 카메라에 담아 실시간으로 기사화했다. 그의 죽음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조회수를 끝없이 올리는 희대의 ‘떡밥’이 되었다. 그의 최후는 험했다. 영상의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사진을 본 사람들마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느낄 만한 수위였다. 언론사로서는 특종 중의 특종이었겠으나, 독자로서는 기사를 클릭한 자기 손가락을 원망하고 싶도록 보기 민망했다.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비극성이 그 속에 있었다. 죽음조차 ‘장사’가 되는 비애까지 포함해서였다. 이후 안재환의 이름 석 자는 한 달 내내 검색어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수많은 기사
SBS 수목극 <워킹맘>(극본 김현희, 연출 오종록)은 방영 초기 시청자의 공감을 얻었다. “만들 땐 둘이고, 키울 땐 혼자”인 대한민국 육아의 처절한 불평등의 묘사는 리얼했다. 시어머니는 한없이 당당하고, 딸네 집에 함께 사는 홀로된 친정아버지는 ‘거실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며 놀이터 벤치를 지키는 대한민국 결혼의 여전한 양면성도 놓치지 않았다. 일하러 가는 엄마의 번거롭고 피곤한 일상과 서글픈 모정은 시대의 초상이었다. 구조적인 개선 없이는 조만간 모든 가정이 사단 날 육아전쟁 시대임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워킹맘>은 궤도를 이탈했다. 본말전도가 점입가경이더니 마지막회는 열패감까지 주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이었다. 스토리도 엉망이지만, 주인공 가영(염정아 분)은 왜 중요한 고비마다 임신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첫 애가 ‘월드컵베이비’였다는 설정은 애교로 봐준다 치자. 백 번 양보해도 그녀는 ‘똑똑한’ 여자일 수 없다. 매사에 주도면밀하다는 가영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건 지난 반세기의 페미니즘에 대한 모독이다. 여전히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이전의 ‘피임’을 모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