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사임당이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 ‘여성계’에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5만원권 화폐 인물로 선정되자 문화미래 이프는 시대착오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신사임당은 “가부장적 사회가 만들어낸 현모양처형 여성상의 전형”이라는 주장도 들려온다. 한 마디로 “자기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 자기의 재능을 발전시켜 사회에 공헌한 바람직한 여성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인물로 이프가 꼽는 이는 유관순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그토록 지지하는 유관순과 그토록 반대하는 신사임당에 대한 논리 자체가 몹시 허술하다는 것이다. 물론 유관순은 위대하다. 하지만 그는 어린 나이에 옥사했다. 그렇게 십대에 산화한 열사들 중 남성을 찾으라면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는 게 역사의 진실이다. 숱한 전쟁터에서 숨져간 무명의 학도병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유관순은 남성 일색의 국가유공자 명단에서 색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부각된 것일지도 모른다. 유관순을 현대 여성상의 전형으로 꼽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순교’에 가까운 그의 애국심 또한 안타깝지만 전근대적이다.
게다가 남성 가부장제 사회에서 만들어진 위인이라는 지적에서 유관순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먼저 만세운동에 뛰어든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을 따른 그야말로 ‘삼종지도’의 첫 번째 관문에서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런 풀이대로 신사임당을 말하자면, 아버지 신씨의 뜻을 따라 학문과 예술에 힘쓰다가 아들을 훌륭히 키워낸 여성이다. 그 자신이 재능 있는 화가요 문인이었다. 심지어 놀랍게도 남편의 뜻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당대의 여인들과 달리 친정 부모를 모셨다. 조선 최고의 지성 율곡을 남편 이원수의 아들이 아닌 신사임당의 아들로 역사에 각인시켰다.
이프의 주장대로 ‘사회에 이바지 한 바’가 뚜렷한 장영실과의 경합 끝에 신사임당이 결정됐음에도 양성평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현 단계 여성운동의 딜레마를 대변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환영’하던 시대는 지났다. 바람직한 변화다. 그러나 아직 비전을 제시할 여성 모델은 찾아내지 못했다. 여성계 스스로가 ‘현대 여성상’ 창조에 실패했다는 자인이다. 여성부 신설 이후에도 모델을 찾아내고 재평가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여성부는 심지어 문패조차 ‘여성가족부’로 변경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곧 가족이다. 여성운동의 역사와 배치되는 이율배반의 등식을 받아들이면서 출산장려라는 국가시책에 앞장서는 정부부서가 된 지 오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여성의 힘으로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라고 장려하는 조직이 대한민국 여성부다. 장관이 직접 시상하는 ‘양성평등상’ 대상에 수년 간 가부장제를 뼛속까지 옹호하는 TV 일일드라마 <노란 손수건>, <굳세어라 금순아> 등을 선정했던 것이 여성가족부의 연례 행사였다.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오백년 전 홀로 깨우치고 평생 자의식과 자존심을 꼿꼿이 지켰던 선각자 신사임당을 논하기에는 후손들의 내공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부끄러움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