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명동 캠퍼스 본관 앞에는 광장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빌라도광장. 아니, 빌라도라니?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고발에 따라 예수님을 심문한 로마 총독이지 않나. 사도신경에 의하면 예수님은 저 빌라도에게 고난까지 받았다. 그런 이방인의 이름이 왜 기독대학의 본관 앞을 차지하고 있는가? 내막은 이렇다. 그것은 로마문화를 대변하는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던진 질문 하나에 있다. “진리가 뭐냐 Quid est veritas?” 심문하라고 잡아온 죄인에게 진리를 묻다니! 아리스토텔레스를 들먹일 것도 없이, 인간에게는 앎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이 있다. 이 ‘인간’의 제 일 반열에 대학인이 있어야겠다는 것,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나라’를 꿈꾸는 뜻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빌라도 광장의 우측에(본관을 마주한 상태에서) 동서문화관이 있고 좌측에 노천강당이 있다. 그 구도가 본관과 함께 삼각형을 이룬다. 밑변의 양 꼭지점을 이루는 문화관과 노천강당은 의미상으로도 무관하지 않다. 전자는 동서고금의 문화를 탐구하는 연구관이고 후자는 문화를 형상화하고 실천하는 무대다. 문화는 사유와 이론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삶의 적나라한 현재성이어야 한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동서문화관은 1977년 일본 세계박람회 기념사업회의 기부금으로 건립되었다. 계명대 건축물 중에 일본과 관계된 유일한 건물이다. 동서문화관은 준공 이후부터 바로 각종 국제학술대회, 문화행사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계명대학이 추구하는 ‘학문의 탁월성 추구와 윤리성 앙양’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거행된(1979) 국제학술회의에서 나왔다. 동시통역 시설을 갖춘 회의장은 물론 전시장, 연구실, 객실 등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건물은 현관으로 들어가는 대리석 계단이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린 길과 브리지로 연결되는 건축학적 특징이 있다. 현관은 이오니아식 홈이 파인 7개의 거대한 기둥이 받치고 있고, 붉은 벽돌로 장식된 벽은 자연과 고전적 건축미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현재 동서문화관 건물은 패션대학과 각종 연구실로 사용되고 있다.
대명동 노천강당은 오래 전부터 학내외적으로 문화행사의 무대로 자리잡고 있는 명소이다. 비탈진 언덕을 이용하여 지은 대구 최초의 야외강당으로 고대 로마의 원형극장을 닮았다. 자연석과 화강암 파편과 흰 시멘트로 굳힌 테라조 좌석이 하나씩 독립되어 있어 지반이 흔들리거나 무너져도 전체가 파손되는 일은 없다. 약 1,800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다. 이 노천강당은 1963년에 완공했는데, 공사는 거의 교수와 직원,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졌다. 부인들도 현장에서 밥을 짓고 중참을 싸가지고 와 도왔다. 공사에 쓸 물이 없어 몇 킬로미터 떨어진 성당못에서 마차로 길어왔고 전기는 근처의 화장터에서 당겨와 썼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목하 역설적 아포리즘의 계절. 꽃피는 계명 캠퍼스의 지반에 산고의 땀방울이 섞여있음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