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김남권 임형섭 기자 =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미망인 이희호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20일 오후 임시 빈소가 차려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비공개 입관식에 참석했던 김 전 대통령 측근 최경환 비서관은 "여사께서 울음을 그치지 않으셨다"고 전했다.
전날 탈진 증세로 동교동 자택에서 휴식을 취한 이 여사는 오후 1시10분께 비서관의 부축을 받으며 장례식장에 되돌아왔다.
입관식 직전 빈소는 한영애 전 의원 등 일부 조문객의 통곡 소리로 눈물바다를 이뤘다.
오후 1시30분부터 서교동성당 윤일선 주임신부의 주재 아래 천주교식 미사로 진행된 입관식은 유족과 측근 등 50여명이 모두 흐느끼는 `눈물의 입관식'이었다.
성가 `주의 영원한 빛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누워 있는 향나무 관 왼편에 앉아 끝없이 오열했다.
파킨슨씨병에 걸린 탓에 휠체어에 앉은 큰아들 홍일씨를 비롯해 홍업, 홍걸씨, 며느리, 손자녀, 역시 휠체어에 앉은 동생 대현씨 등 유족도 촛불과 함께 손수건을 든 채 눈물만 훔쳐냈다.
주변의 끊이지 않는 흐느낌에도 김 전 대통령은 관 속에 편안하게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입도 살짝 다문 고인의 표정은 질긴 고난의 삶을 영원히 뒤로 한 채 평온했고, 머리는 가지런히 뒤로 빗겨져 말끔했다.
다른 참관인들은 내부가 보이는 유리벽 바깥에 서서 역시 촛불을 들고 입관식을 지켜봤다.
유족들이 차례로 김 전 대통령의 시신에 성수를 뿌리고, 윤 신부가 분향 의식까지 마무리하면서 입관식은 마무리됐다.
이 여사는 이때 자신이 전날부터 사저에서 자서전인 `동행'의 앞표지 뒷면에 친필로 작성한 `이별 편지'를 공개했다.
목이 메어 비서관에게 대신 읽게 한 편지에서 이 여사는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을 용서하며 아껴 준 것 참 고맙습니다...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라고 썼다.
이 여사는 이 책과 고인이 즐겨 읽던 성경책, 자신이 쓰던 손수건, 직접 뜨개질한 배 덮개 등 4가지를 함께 관 속에 고이 넣었다.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 비서진 4명이 편안하게 누워있는 고인에게 마지막 보고를 하는 자리도 이어졌다.
박 전 실장은 "늘 하시던 말씀과 최근 하신 말씀을 잘 명심해 기억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을 모셨듯이 여사님을 모시겠으니 걱정하시 마십시오. 국민 통합의 길이 열렸고 북한에서도 조문단을 파견했습니다. 앞으로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남북관계가 잘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오열했다.
동교동계 4인방인 권노갑, 한화갑, 한광옥, 김옥두 전 의원도 나란히 서서 "여사님 잘 모시겠다"고 다짐했다.
입관식이 끝났지만 김 전 대통령이 누운 관은 국장(國葬) 공식 빈소로 정해진 국회 쪽 준비가 덜 돼 안치실에서 2시간 가량 대기했으며 오후 4시 넘어서야 캐딜락에 실려 병원을 떠날 수 있었다.
관은 안치실에서 캐딜락이 주차된 장소까지 20여m 복도를 측근과 민주당 전.현직 의원 15명에 의해 운구됐다.
오후 2시30분부터 모이기 시작한 시민 150여명이 장례식장 근처에 모여 경찰 통제선 바깥에서 김 전 대통령이 가는 길을 지켜봤다.
운구차가 장례식장을 출발하자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에서 올라왔다는 일부 시민은 목놓아 통곡했고, 한 시민은 고인이 생전에 즐겨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소리 높여 부르기도 했다.
신촌로터리에는 시민들이 인도에 늘어서서 눈물을 흘리거나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운구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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