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알란 파커 감독의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은 충격적인 주제와 놀라운 비주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한국에서는 영화 속 ‘교육은 필요없다!’는 구호 때문에 수입금지되었고, 9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일반 관객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대구에서는 극장을 잡지 못해 대백프라자 공연장에서 상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이 영화는 ‘미시시피 버닝’ 등 주제의식에 ‘엔젤하트’와 같은 충격적인 영상을 주로 쓰는 알란 파커 감독의 재능이 돋보이는 역작이었다. 영국 록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불세출의 명반 ‘더 월’의 음악을 배경으로 반전과 반체제적인 스토리를 얹은 다큐멘터리식 음악영화였다. 특히 ‘라이브 에이드’를 기획해 노벨상 후보에까지 오른 밥 겔도프의 그로테스크한 연기와 쇼킹한 영상, 그리고 눈부신 애니메이션으로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이 영화는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핑크라는 소년이 주인공이다. 핑크는 엄마와 단둘이 외롭게 살아간다. 늘 전쟁 공포에 시달리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막는 교육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어른이 되어도 핑크(밥 겔도프)는 소외와 불안으로 자학적인 행동을 한다. 이 이야기는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 로저 워터스의
예술가 중에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만큼 드라마틱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늘 사랑에 실패했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평생 몸 바쳐 그린 그림들은 세인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정신병과 불운에 시달리다 37세에 생을 마감하고 나서야 그의 진가는 드러났다. “현대미술은 반 고흐에게 큰 빚을 졌다”는 말로 그를 칭송하고 ‘위대한 화가’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그래서 그의 삶은 영화의 훌륭한 소재였다. 뒤늦게 네덜란드 영화 ‘반 고흐 : 위대한 유산’(2013년)을 보았는데 그동안 반 고흐를 둘러싼 몇 가지 의문점을 중심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영화였다.반 고흐가 살아 있을 때 팔린 유일한 작품은 ‘붉은 포도밭’(1888)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를 거쳐 아를로 이주해 그린 이 작품은 동생이자 후원자인 테오에게 감사의 선물로 준 작품이다. 붉은 빛의 강렬한 색채로 포도밭을 그린 이 그림은 벨기에의 인상주의 여성화가 안나 보쉬가 당시 400프랑(약 140만원)에 구매했다. 이 작품은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의 푸슈킨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도 다루고 있다. 반 고흐가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그리다가 주체 못 할 불안과 공황으로 인해 총으
서부영화는 미국식 영웅주의를 바탕에 깔고 인기를 누린 할리우드의 대표 장르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먼지 펄펄 날리는 개척지에 나타나 시거를 물고 총을 쏘아대는 이탈리아산 마카로니 웨스턴까지 나올 정도였다. 서부영화는 빠르고, 강하고, 비정한 캐릭터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서부는 누가 총을 빨리 뽑느냐에 목숨이 걸린, 폭력과 야생의 법칙만 통하는 곳이었다. 서부에서 슬로우는 곧 죽음이다.최근 개봉된 ‘슬로우 웨스트’(2015, 영국 외)는 이처럼 대척점에 있는 이미지가 결합된 서부영화다. 탐욕과 무자비한 오물덩어리인 인간만 쏙아내면 한없이 아름다운 광활한 서부. 거기에 토끼풀처럼 연약한 한 소년이 말을 몰고 천천히 나타난다. 16살 제이(코디 스밋 맥피). 밤하늘의 별을 헤고, 시를 좋아하는 소년이다. 여자친구 로즈를 만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와 미국 중서부인 콜로라도까지 먼 길을 가는 중이다.흰 피부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이 소년에게 따라붙은 것이 현상금 사냥꾼 사일러스(마이클 패스벤더)다. 그는 무사히 여자친구에게 데려다주겠다며 돈을 요구하지만, 사실은 로즈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걸려 있는 현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제이를 이용하려고 한다.연약한 소년과
정성스럽고 참된 것이 성실이다. 성실하게 살면 행복하고, 그 보답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이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성실히 살아도 행복의 빛은커녕 더욱 더 불행해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독립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지난 8월 예술영화전용관 중심으로 개봉돼 4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변주한 ‘성실한 나라’는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물론 성실이 부정되고, 가식과 탐욕이 진실을 이기는 ‘아주 이상한 나라’다.이 나라의 소녀 수남(이정현)은 열심히 살면 다 된다는 사실을 믿는 성실한 앨리스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지 잘했다. 자격증만 14개나 된다. 주판을 배웠고, 타자기도 수준급이다. 그러나 컴퓨터가 등장하는 바람에 그녀의 성실은 물거품이 된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다행히 취직도 하고, 사랑하는 남자(이해영)까지 만났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힘을 바쳐 성실히 일하는 그녀. 그러나 남편이 귀가 멀어 그동안 모은 돈을 수술비로 날린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했다. 어느 날 남편은 손가락까지 잘리고 결국은 자살을 시도해 식물인간이 된다. 남편이 깨어
‘윈터 슬립’(2014, 터키, 196분), 동면이다. 터키 누리 빌제 세일란(1959~ ) 감독의 작품으로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제인 캠피온을 비롯한 심사위원들로부터 ‘완벽한 리듬의 수작’, ‘3시간 16분의 전적인 행복’이라는 평을 들었다. 터키 카파도키아가 배경이다. 카파도키아는 ‘스타워즈’에서 어린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고향별로 나왔던 고산 화산지대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매섭게 부는 그 푸석한 돌과 눈의 땅. 카파도키아의 동굴을 개조해 호텔을 운영하는 주인공 아이딘(할룩 빌기너)은 전직 배우 출신으로 신문 칼럼니스트에 신앙심이 깊은 인물이다. 부와 명예, 거기에 지적 자신감, 젊은 미모의 아내까지 그의 삶은 참으로 만족스러운 것이었다.어느 날 어린아이의 돌팔매질로 그의 삶은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집세 독촉에 불만을 품은 가난한 세입자의 어린 아들이 던진 돌이었다. 이를 계기로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누이 네즐라(드맥 액백)와 아내 니할(멜리사 소젠)과 인식차가 노정되면서 정말 견고하다고 믿었던 자신이 돌로도 깎을 수 있는 응회암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양심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고, 도덕성은 감각을 잊은 채 ‘겨울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