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단풍은 유난히 고왔다. 특히 영암관 서편 언덕배기에 서 있는 당단풍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품이 넉넉한 그 나무가 시월 중순부터 발갛게 물들어가는 모습에 바쁜 발걸음을 붙잡힌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교정에서 이런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보름달이 뜬 초저녁 무렵,…
현대사를 테러와 경찰 활동을 중심으로 관찰하면 크게 9.11 사건 이전과 그 이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를 넘어서기까지 국가의 내적 질서와 인권의 팽팽한 긴장 관계 사이의 무게 중심이 지속적으로 인권의 방향으로 이동했고, 그 즈음 9.11 테러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그 중심축의…
이제 정말 가을이다. 교정을 걷고 있으면 바람 없는 순간에도 여름 내내 무성했던 잎들이 살포시 나선형의 곡선을 그리며 발밑에 떨어진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아니면 독서의 계절? 고독의 계절? 하지만 나에겐 가을은 재즈, 그중에서도 단연코 베이스의 계절이다. 여름엔 시원스런 빗줄기처럼 거칠 것 없…
한문학자로 전문적 연구와 대중적 소통 양 방면에 성가(聲價)를 올리고 있는 안대회 교수의 신간이 나왔다. 한국한문학은 학회가 창립되고 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지 40년이 다 되어간다. 연구 초기부터 조선후기 자료에 대한 발굴 및 연구 편중이 강하였음에도 여전히 발굴을 기다리…
요즘은 걷는 길이 유행인가보다. 제주도의 올레길에서 지리산의 둘레길, 강화도의 나들길 등등 새로 생겨나는 이름들이 적지 않다. 바로 얼마 전까지 마라톤으로 건강을 챙기려는 열풍이 일어나더니만 이제는 차분히 걷는 것에 열중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걷는 길에 대한 매력을 일깨운 것은 ‘연금술사’로 유…
세계 사람들은 유태인을 바라보며 놀라워하고 있다. 전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 중 22%를 차지하고 있으며, 하바드 대학생 중 30%가 유태인 학생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인물인 알베르트 아인쉬타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음악가 멘델스존 등이 유태인이다. 무엇이…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잔인한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일어난 인종청소나 르완다 내전과 같은 일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잔인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그 사회의 지식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
고대 바빌론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정의의 전형으로 하고 있었다. 당한만큼 보복하는 것이 정의였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정의의 관념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의는 사회적 개념으로써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善)은…
만약 세상의 모든 문명과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일순간,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는 날이 온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곁에는 아직도 인류와 세계에 대한 순순한 희망을 꿈꾸며, 전적으로 나의 보호를 요구하고 있는 순진한 아이가 있다면... 나는 그런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이…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나친 감정의 개입 없이 스스로는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우리의 믿음이 착각이었다는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아이오와 대학의 신경학 교수인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습관’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그 사람의 정신과 행동 양식이 그대로 묻어난다. 다시 말하면 습관은 어떤 형태로든 그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특징지우는 매우 중요한 판단의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나쁜 습관은 나쁜 결과를 낳고 좋은 습관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
20여년전 내가 처음 대학에 입학하던 때하고 비교하면 여러 가지 시대적 변화가 있지만, 지금 저 청년들도 그 당시 내가 느낀것 처럼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그 자유를 주체할 수 없어 방황하던 내 모습의 전처를 밟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러한 젊은 청춘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유시민씨가 얼…
공연예술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러갔다.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유인촌 씨가 남자 주인공 대령 역할이었고, 여자 주인공인 마리아 선생님은 가수 윤복희 씨가 맡았었다. 고작 TV를 통해 드라마나 만화 영화 보는 것이 전부인 나에게, 배우…
학창시절, 도서관에서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Maya Lin’이라는 제목에 'A Strong Clear Vision'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작품은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와 이를 설계한 마야 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용은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까지 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