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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어둠 속의 대화

익숙하지만 낯선 곳으로의 초대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 2층 전시실
7월 13일(금) - 12월 30일(일)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8시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이 별난 전시는 이런 질문과 함께 시작된다. “자신의 손조차 볼 수 없는 완전한 어둠을 경험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마련된 일상의 공간들 속에서 관람자들은 실제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탐구자가 된다. 시각이 완전히 배제된 세계에서 청각, 미각, 후각, 촉각과 같은 다른 감각들이 재발견되고 늘 접해오던 일상은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된 ‘Dialogue in the Dark(어둠 속의 대화)’는 21개 나라, 130여 개의 전시장에서 개최되어 5백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맞이했다고 한다. ‘충격적인 새로운 체험’, ‘끝없는 여운이 남는 감동’, ‘삶에 대한 재인식’ 등 관람객들의 호평과 호기심에 이끌려 찾았는데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가 아닌 꽤 신선한 감흥을 맞볼 수 있었던 전시였다.

평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그저 과시하기 위해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는 이들을 온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독일 기자 Andreas Heinecke에 의해 시작된 이 전시는 여느 장애 체험과는 사뭇 다르다. 시각장애인들의 삶과 그 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지만 단지 그들의 어려움을 알리고 그들을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입장의 전환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허물어주고 있다. 그와 함께 쉼 없이 이미지를 쏟아내는 시각 중심의 세계에서 어두움은 다른 사람 그리고 자신과의 의사소통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매개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시각에 의지하여 살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감을 고르게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인지하는 것의 80%가 본 것에서 유추된다고 한다. 그러니 암흑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전시는 어둠을 무서움과 공포의 공간이 아니라, 무뎌진 다른 감각들이 다시 깨어나고 우리 주변을 더 깊고 넓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창조의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전시회장을 나서면서 ‘무감어수(無鑒於水)’라는 옛 글귀가 떠올랐다.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는 뜻으로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 보이는 것에만 천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우리가 보여지는 것에 이처럼 집착하는 것은 보는 것에 너무 의지하며 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본다.

직접 찾아가기 어려우면 어둠 속에서 듣고 싶은 소리, 맡고 싶은 향기, 맛보고 싶은 것, 만지고 싶은 것들이 준비된 자신만의 어둠 공감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잠시 눈을 감고 더 멀리 더 깊게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