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미군의 공격으로 바그다드가 함락됐을 때 나는 쾌재를 불렀다. 선제공격의 문제점을 몰라서가 아니다. 독가스로 수천의 쿠르드인을 학살한 도살자가 심판 받을 차례가 온 것이 기뻤기 때문이다. 축배를 들며 역사학자 J교수와 닥쳐올 일을 토의했다. 이라크는 그 국토가 43만 5천 평방 킬로, 인구가 2천 4백만 명이나 되는 큰 나라다. 미국이 만일 50만의 지상군을 이 나라에 주둔시켜 20년을 버틸 수 있다면, 미국식 자유민주국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미국이 동원할 수 있는, 해병대를 포함한 지상군이 모두 60만 정도였으니 이것은 불가능한 얘기다. 하는 수 없이 차선의 길을 택하는 것이 옳다. 사담 후세인과 그 측근, 그리고 도살과 집단학살에 직접 책임이 있는 극소수의 지도자만을 그 죄를 물어 벌하고, 관료조직과 군대, 특히 경찰조직을 모두 포섭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바트(Baath)당의 골간을 유지해야 한다. 그 파시스트 성향에도 불구하고 이 당은 종교의 정치참여를 철저히 배격하는 세력이므로, 신정(神政)체제의 경향이 강한 이 지역에서 소중한 정치자산이다. 미국이 이것을 살려야 한다.미국의 도움으로 질서유지와 민생안정에 전력을 하면서, 산
스탕달은 나폴레옹 휘하의 장교로서 수많은 전투에 참여했다. 이탈리아 원정 때 그는 이 나라를 깊이 존경하고 사랑하게 됐다. 후에 다시 찾아간 이탈리아에서 그는 백약이 무효한 중병에 걸려 기진맥진하여 파리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병은 곧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탈리아에서 너무나 많은 예술의 걸작품들을 감상하다가 이에 압도되어 병이 났었다고 판단한 호사가들이 이를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이름하였다. 심미적 체험만으로 병에 걸린다는 것은 믿기 어렵고, 아마도 종교적 분위기, 발터 벤야민이 ‘아우라’(Aura, 靈氣)라고 한 신비적 체험이 화근이었을 것이다. 스탕달은 종교적이 아니었기에 성령이 내리는 희열과는 동떨어진 일종의 억압된 정신의 위기를 겪었을 것이다.스탕달보다도 종교로부터 더욱 멀리 서 있는 프루스트는 샤틀레 성당의 미사가 바이로이트에서 열리는 바그너 음악제에 비할 수 없이 더 심오한 감동을 준다고 했다. 원래 종교의식(儀式)에 그 뿌리를 두는 예술이 종교가 영험을 잃고 난 뒤, 예술을 위한 예술로 순수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프루스트는 내다본 것이다.카발라까지 들먹일 것 없이, 신비로운 예술적 체험은 오늘도 살아서 우리에게 온다. 필자가 파리의 상트 샤펠
지난달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가서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을 찾았다. 그 규모가 작으나 소장품의 질에서 세계최고의 하나로 꼽히는 명소이다. 그러나 히타이트 문명의 유물에서 볼만한 조형미술의 걸작품이 없어 서운했다. 설형문자가 새겨져 있는 돌과 벽돌들이 가장 중요한 보물인데, 히타이트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 뜻도 없다.한 문명이 모든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경우,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 문명은 참으로 희귀한 경우에 속한다. 히타이트 문명은 그 정신문화의 깊이와 폭에서 오늘의 우리가 도저히 흉내 내지 못하는 위업을 이룩했다.약 3천8백년 전에 공동체들을 짓기 시작한 이들은 기원전 15세기경에 북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아나톨리아 전역, 시리아와 레바논에 이르는 큰 제국을 세웠다. 이 유목민은 처음으로 말을 길들여 타고 다녔고 수레를 끌게 했다. 이들은 놀랍게도 처음부터 메소포타미아의 절대군주의 개념이나 이집트의 식민주의와 전혀 다른 정치문화를 개발했다. 히타이트의 왕은 파라오 같은 신이 아님은 물론이고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처럼 신의 대변자도 아니다. 그는 귀족 가운데서 추대 받아 이들의 지지로 다스리는 하나의 지도자(primus inter pares)일 뿐이므
지난해 10월 9일 북한은 핵무기 실험을 강행하여 핵보유국이 됐다. 이것이 일으킨 위기는 6자회담의 진전으로 수습의 가닥이 보인다. 그렇다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기를 기대하는 나라는 없다. 그 확산을 동결하자는 것이 한·미·일을 비롯한 관련 국가들의 목표다. 비관론이 현실론이 되고 있다.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뿐 아니라, 갖가지 탈법행위와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북한은 미국에서 정치쟁점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극적인 일괄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일본에는 북한을 극악무도한 범죄 집단으로 사갈(蛇蝎)시 하는 정서가 널리 퍼져 있다. 무고한 여인을 납치하여 지하실에서 살해하는 등 폭거를 수없이 저질러 왔으니 일본이 북한을 나라로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북한이 일본과 정상적인 국교를 맺고 경제 원조를 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그들의 말투로 “말랑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일은 북핵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다. 전통적 동맹국이요 혈맹인 북한을 중국이 맹렬하게 비난하게 된 사정은 무엇인가? 북한이 동북아시아에 핵개발 도미노를 일으킬 수 있고, 한반도의 군사위기가 중국을 끌어들일 수 있으므로, 인민해방군의 수뇌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