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는 한 국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역사적 사료이자 최고의 예술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로 화폐 속에 담기는 도안 역시 신중하게 선정되어야 할 것이다. 화폐는 그 시대의 단순한 유통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훗날의 역사적 사료로서의 구실을 어떠한 고미술품보다도 뛰어나게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화폐 속에 시대적 상황이 그만큼 많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화폐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너무도 단순했다. 세종대왕, 이이, 이황, 이순신 이것이 우리세대에서 보던 화폐속의 인물이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대통령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노인상(일본의 자료에는 김윤식이라 했었으나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는 수노인상으로 정리되고 있음)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시절에는 일본은행장의 초상이 들어간 것과 일본의 대흑천상이 들어간 것도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은 암울했던 우리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렇다면 우리가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모든 지폐에 세종대왕, 이이, 이황 이 세분의 영정만을 고집한데는 어떠한 이유가 있었을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만원권은 7종이나 된다.(오천원권 5종,
현대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로 산다는 것은 타인과의 만남, 즉 접촉이 없음을 뜻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 가운데서 사람과 사물 등과 어떤 접촉을 하며 살아가는가? 점차 접촉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면서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메신저를 통해 용건을 전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메신저라는 위대한 발명품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은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메일조차도 더 이상 이용하지 않는다. 메신저로 모든 일상적인 소통을 대신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휴대폰과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려 한다. 기술발달은 그러한 소통가능성을 이뤄주었다. 하지만 기술발달에 따른 편리성과 속도성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왠지 모를 허전함까지도 메울 수는 없다. 접촉은 바로 그 빈자리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수십 명의 메신저 친구들과 매일 ‘통(通)’하지만, 결국 깊은 소통은 없는 것이다. 결국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혁명적인 변화도 있지만 사람들의 감성까지 바꾸는
바야흐로 풍요로운 소비의 시대다. 육체를 배불리고 난 뒤 마음에도 양식을 나눠주기 위해 문화 소비 활동에 나선 우리들 가장 가까운 곳에, 극장이 있다.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극장 문화는 단순히 영화 티켓 한 장을 구입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상영관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과 고급 식당가, 심심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눈길을 잡아끄는 각종 쇼핑몰과 오락 시설이 당신을 반긴다. 영화표 7천원(서울의 주말 황금 시간대에는 물론 8천원을 지불해야 한다), 상영시간까지 기다리는 동안 들어가는 식사 값 혹은 커피 값 5천원(물론 이 가격 이상 드는 경우가 더 많다), 즐거운 영화 관람을 위한 준비물, 팝콘과 콜라 5천원(극장마다 다르겠지만)을 더해 총 1만7천원이 흔히 “영화나 보자”로 출발했던 약속의 대가로 지불된다. 1천만 관객 시대, 영화를 보는 것이 단순히 문화 생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소비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 표 값이 오른다”는 말은 그래서 민감한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5월 21일, 인터넷 뉴스에는 ‘영화관람료, 최고 9천원까지 인상’이라는 소식이
들어가며1995년 3월 케이블방송이 개국되면서 우리나라는 본격적으로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 접어들었다. 케이블방송은 초기 가입자모집에 크게 어려움을 겪었으나 현재 가입가구 수만도 1천4백만 가구를 넘어서고 있다. 시청점유율 또한 2000년 29%에서 2006년 42%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중앙일보 2006. 10. 28.) 또한 대기업의 진출로 기존의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와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도 MPP(복수채널사업자)와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또는 MSP로 그 소유구조도 변화되었다.이렇듯 케이블방송 산업이 외형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의 질은 10년 전이나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케이블방송의 문제점을 편성과 프로그램 내용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개선방안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전문성 없는 전문채널지난 2006년 11월 28일에 ‘케이블TV의 저질논란, 그 해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 본부와 문화연대가 토론회를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때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케이블방송 편성을 분석해 보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과도한 중복편성이다. 실제로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모니터분과에서 2006년
● 우리나라는 축제 공화국?! 축제의 나라다. 2004년 감사원 조사 결과 지역축제 수는 9백 47개이었으나, 최근 새로 개최된 축제와 조사에 누락된 축제를 합하면 1천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을 시작으로 지역축제가 본격화되기 시작된 지 10여년이 된다. 지난 해 문화연대는 지역축제 10년의 성찰과 대안을 모색하자는 의미로 ‘지역축제 네트워크 포럼’(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을 총 4차례에 걸쳐 진행한 바 있다. 포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축제 관계자 및 지역문화인 백인에게 묻다’는 제목으로 지역축제에 대한 평가, 지역축제의 영향도, 지역축제의 문제점, 지역축제의 가치와 목표 등을 조사했다. 지역축제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에 전반적으로 ‘약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그럼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축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없다’고 많은 수가 응답했다. 그리고 1990년 후반부터 펼쳐오고 있는 중앙정부의 ‘문화관광축제’ 위주의 지원 정책이 지역축제의 활성화와 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냐는 질문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지역축제의 영향도 면에서는 해당 지역에 미치는 긍정적인 요인으로는 ‘지역의
사회 전반적으로 UCC(사용자제작콘텐츠) 열풍이 불면서 동영상이력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영상이력서는 기획력과 창의성, 열정 등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어 자기PR에 매우 효과적이다. 기업인사담당자들도 UCC이력서를 선호하는 추세다. 최근 자사가 250개 사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 절반 이상이 동일한 조건일 경우 문서 이력서보다 UCC이력서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지원자의 생생한 모습과 개성을 엿볼 수 있는데다 컴퓨터 실력을 검증해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다면, 성공 취업을 위해 구직자들은 동영상이력서를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UCC이력서에 대한 효용성과 방법론을 논하기 전에, 먼저 기업 인재상과 채용패턴의 변화를 살펴보자. IMF 이후 기업의 인재상은 대폭 달라졌다. 과거에는 하드웨어적인 인재를 선호했지만, 최근에는 소프트웨어적인 인재를 원하고 있다. 하드웨어적인 인재란 학벌이나 학점, 토익점수 등 소위 스펙이 좋은 점수형 지원자를 말한다. 경기가 호황이었을 때는 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한 뒤 교육할 만한 충분한 시간적 여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성실함을 채용 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고, 이로 인해 스펙
무대에서 웃고, 울며, 관객과 교감하던 화려한 배우의 이면에는 배고픔이 깃들어 있다. 흔히 “예술가는 배가 고프다. 예술가가 되려면 배고픈 시련을 겪어야 한다. 고로, 예술가는 배가 고파야 한다.” 라고 말들을 한다.20대 초반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 지금은 유명 방송 작가로 살고 있는 친구의 말이다. “연극을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공연장 근처도 가기 싫어. 왜냐하면, 그 곳에 가면, 나도 다시 연극을 하고 싶어져. 그래서 가고 싶지 않아. 이렇게 한 발자국 뒤에서 혼자만의 사랑으로 만족하고 싶어.” 현재의 그는 배고픈 연극을 멀리서 짝사랑하면서 방송작가로서 부와 명성을 얻고, 연극 얘기로 밤새 막걸리나 소주를 마셨던 옛날을 회상하며, 지금은 양주나 맥주를 마시는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이름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많은 배우들이 연극배우로 시작하여 연극이 지닌 배고픈 현실을 벗어나 TV나 영화로 더 많은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연극을 등지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연극무대를 지키려고 하는 배우도 있다. 예전 아무리 배가 고파도 TV나 영화 출연을 멀리하던 시대와 비교한다면 지금의 모습들은 많이 달라졌
응원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드넓은 경기장에서 그저 손뼉치고 함성지르는 것에 불과한 행위지만 그것의 발생 과정과 변천 및 서로 다른 응원 행위의 교체는 한 시대의 집합적 내면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증거자료다. 1998년에 프랑스 월드컵 바로 전 해에, 지역 예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부 프로 축구단의 서포터스들이 중심이 되어 ‘붉은 악마’라는 작은 모임이 생겨났고 그들이 서서히 축구 국가대표팀의 응원을 주도하면서 지금까지 10년의 세월 동안 ‘12번 째 선수’ 붉은 악마 현상이 확대 발전되어 온 것이다. 그 절정은 지난 2002년의 한일 월드컵 때이다. 당시 ‘붉은 악마’ 신드롬은 월드컵 직전의 5월 평가전 때부터 시작되었다. 부산 아시아드경기장에서 스코틀랜드와 평가전을 치를 때, 부산까지 내려가지 못한 회원들이 세종문화회관 뒤 분수광장에서 거리 응원전을 펼쳤고 그때 벌써 2만여 명이 모였다. 평가전의 승승장구로 급기야 10만여 명을 헤아렸고 본선 첫 경기 폴란드전은 40여만 명, 그리고 8강 스페인전에서 최대 700여만 명이 거리를 채웠다. 이 낯선 현상에 대해 대다수 방송과 언론이 사용한 단어는 ‘애국심’이었다. 그 밖의 언어는 조금도 생각해내지 않았다
다운로드. 이미 너무 식상하지만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화두임에 분명하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깊숙이 침투한 다운로드 문화를 조명해보고, 이를 새로운 시장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고민해 본다.● 다운로드가 변화시킨 생활‘모래시계’가 방송되는 시간에 거리가 텅텅 비어 ‘퇴근시계’로 불렸던 시절, 그거 다 옛날 이야기다. 요즘 누가 수목 드라마 보려고 저녁 10시까지 기다리나. 원하는 시간에 HD화질의 녹화파일을 받아보면 그만이다. ‘히어로즈’처럼 국내 방영된 적이 없는 드라마가 화두로 떠오르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이 같은 다운로드 문화의 대중적 파급력은 관련기기와 인터넷 환경변화 등 기술적, 물리적 차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PMP가 나오고 2세대 PMP가 나오더니 DMB와 네비게이션 기능이 결합되고 급기야 동영상 카메라와 무선기능까지 포함된 통합기기들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동영상 파일들은 PMP나 아이팟 같은 휴대용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 혹은 휴대전화나 USB메모리 같은 생활전자 기기에 담겨지면서 그 재생영역을 무제한 확장시켰다. 대로변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휴대용 기기로 영화를 보는 풍경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심지어 이건
◎‘디지로그’ 출판 시대21세기에 들어서면서 문화콘텐츠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출판의 경우 여타 콘텐츠와 달리 아날로그 매체(종이책)로부터 디지털 매체(전자책)로의 시장 지형 변화(shift)가 어느 분야보다도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문자 텍스트 기반의 가독성 문제 때문이다. 많은 기술 결정론자들이 예단한 것처럼 종이책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주요국들의 전자책 시장 규모는 아직까지 전체 출판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하지만 디지털환경은 이미 종이책 생산·유통·소비의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 요인이며, 전자책은 종이책과의 상호 보완관계 속에서 독자적인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출판 콘텐츠의 다중 활용이 가능한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수요자(독자)의 측면에서 보면 디지로그 독서환경이 시작되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한 전자책의 시장구도 정립, ▲종이책 단행본 시장의 25%를 차지할 만큼 유력한 유통경로로 자리잡은 인터넷서점의 발달, ▲디지털 출판 콘텐츠의 소량 인쇄출판을 가능케 하는 주문형 출판(POD : Publishing on Demand), ▲인터넷상의 도서 본문검색 서비스
혼종과 트랜스로 문을 열었던 2006년이 지나가고 있다. 다른 해에 비하면 올해는 상대적으로 문화적인 큰 사건은 드물었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흐름이 문화계 전반을 끌어왔음을 알 수 있다. 연초에는 영화 ‘왕의 남자’의 폭발적인 관람으로 인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모두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왕의 남자’의 성공이 반가운 것은 무엇보다도 스타마케팅이나 엄청난 제작비의 물량으로 인한 흥행이 아니라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관람객이 점차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은 ‘왕의 남자’의 흥행과는 달리 한미 FTA의 선결요건이었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특히 ‘한미 FTA’가 방송 및 통신 분야를 비롯한 문화 영역에서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계의 관심을 끌었다.상반기의 가장 큰 이슈는 ‘2006 독일 월드컵’이었다. 이 열기는 오히려 문화예술계의 어깨를 잔뜩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영화 개봉, 뮤지컬, 책의 출간 등 일정의 상당수가 월드컵 이후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에 대한 기억 때문에 방송사와 대기업 통신업체들은 응원 열기를 고조시키려고 애썼지만, 자발성에 기초
처음 디지털 카메라(이하 디카)를 접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디카는 최고의 성능으로 무장한 꿈의 기기 같다. 필자가 98년 처음 디카를 접할 때만 해도 30만 화소의 디카가 1백만원을 호가 했고 내장 메모리의 용량은 4MB였다. 그리고 한 장의 이미지를 저장하는데 10초 이상이 걸렸으며 셔터랙도 1초 이상이었다. 지금은 디카의 성능보다 어떤 디자인이 더 이쁜가를 따질 정도로 성능이 향상되어 촬영자가 사진의 구성에만 신경을 쓸 수 있는 행복한 시절이 되었다. 사진은 사실의 기록과 자신의 추억과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최초의 니엡스가 1827년에 촬영한 ‘르 그라의 집 창에서 내다본 조망’이라는 작품으로 약 8시간에 걸쳐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사진기 (다게레오타입)역사적 의미를 갖는 최초의 카메라는 1839년 은판을 사용한 다케레오타입 카메라이다. 최초의 사진은 색상도 없고 노이즈가 가득하고 몇 시간의 노출로 만들어진 사진이었다. 최초의 사진기 역시 혼자서는 촬영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크고 시간도 많이 걸려 불편했었다. 초기의 대형 필름도 영화에서 사용하는 35mm 필름을 라이카에서 사진에도 적용하면서 카메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