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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편지]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마

언젠가 산길을 걷다가/ 바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 그 자체로서 그를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길섶에 우뚝 선 나뭇잎이 살랑대거나/ 목이 긴 원추리가 흔들거리는 것을 통해 비로소 바람을/ 보았던 것이지요. 땀으로 젖은 내 살갗에 바람이/ 닿았을 때 이윽고 그가 바람이 되었듯이/ 사람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나 이외의 또 다른/ 사람이 있어야만 그제야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겠지요. - 이지누의 「바람을 보았지요」


정아! 어제 나는 이 아름다운 시를 모두 스무 번도 넘게 읽었다. 날마다 나에게 사연 깊은 편지를 보내오는 어느 분이 어제 아침 보낸 편지에 이 시가 실려 있어 서너 번에다, 다시 네댓 번 되풀이해 읽으며, 그래, 맞아, 그렇고 말고, 하며 고개를 끄덕, 끄덕이곤 했다. 편지를 덮고 나자, 아아 정말로 반가워라! 바로 그 사이에 너의 편지가 배달되어 있어 화들짝, 봉투를 뜯어보았더니, 세상에 어찌 이럴 수가, 너의 편지가 바로 이 시로 시작되더구나.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네댓 번에 네댓 번을 다시 네댓 번 더 읽으면서 정말로 기분이 좋았단다.


정아! 작년 12월 졸업을 앞두고 자네가 보낸 편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비로소 나는 ‘대견스럽다’는 말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대학 4년 동안 참으로 훌륭하게 자라 있는 너의 모습은 정말 대견스러웠다. 그 편지를 들고 ‘봐라 우리 과의 정아라는 학생이 이렇게 거룩하게 잘 자랐다, 너거 과에는 이런 학생 있나,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그래’ 하면서, 교정을 마구 뛰어다니며 외치고 싶도록 기뻤으나, 다른 한편으로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그 무슨 밀물처럼 밀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자네의 성숙에 내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데서 오는 부끄러움 같은 것 말이다.


오늘 너의 편지를 받고 나는 꼭 같은 감정을 다시 느꼈다. ‘교사가 내 꿈이자 미래’였기 때문에 교사가 되려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하여 교사가 되겠다는 너의 말은 왜 이리 눈물겹게 감동적이며, 왜 이리 눈물나게 슬픈 것이냐. 정아! 부디 학생들을 위하여 자네의 꿈을 이루어라. 그리하여 마침내 교생실습 때 연구수업 하던 자네의 모습을 뒤에서 오래도록 지켜보았듯이, 자네가 정식으로 교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錦上添花(금상첨화)’를 가르치는 모습을, 바람의 숨구멍도 환하게 보이는 날 큰 나무 뒤에 숨어 지켜보게 될 날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