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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행 버스에서

차가운 겨울밤 앙카라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버스를 타니 옆자리의 청년이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해사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화제가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에 이르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럽, 그 중에도 프랑스가 왜 이리 치사하게 구는지 모르겠단다.

1915년에서 17년까지 오토만제국이 지리멸렬할 때, 소수민족 아르메니아인을 사지(死地)로 몰아 떼죽음에 이르게 했다. 90년 전 일을 새삼 문제삼아, 이를 부인하는 것을 범죄로서 벌하는 입법을 유럽나라들이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가 이것을 주도하고 있는데, 35만의 재불 아르메니아인의 환심을 사고 터키가 유럽에 참여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속셈이 보인다는 것이다.

터키가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새 출발을 하면 되지 않는가 물으니 안된다고 한다. 그런 거두절미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는가. 비극의 발단은 러시아가 터키의 아르메니아인에게 분리 독립을 사주, 순진한 이들이 수천의 터키인을 학살한데서 비롯됐다. 이에 겁먹은 터키가 아르메니아인을 황야로 내몰아 30여 만 명을 죽게 했다. 이는 자위권 행사임으로 민족말살이 아님에도 유럽인들이 희생자 수를 100만으로, 요즘은 150만으로 불리면서 터키를 도덕적으로 매장시키려 광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체방어가 도를 지나치면 대량학살이 되는 법. 중절(中節)을 잃으면 정당방위 자체가 범죄가 된다고 타이르니, 발끈한다. 당신이 뭐길래 남의 나라 일을 두고 악의에 찬 중상을 하느냐며 힐난한다.

젊은이의 정열과 애국심이 가상해서 좋은 말로 위로했다. 터키는 터키인만의 나라가 아니다. 터키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터키에 깊은 관심을 갖고 비판하는 것이 옳다. 내 말에 악의는 없다고 하니 그는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무엇보다 그를 화나게 한 것은 유럽인의 배은망덕이다. 수백만 터키 노동자와 그 가족이 독일과 화란에서 힘들고 험한 일을 도맡아 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노고를 고마워하기는커녕, 유형무형의 차별과 냉대로 괄시하고 있다. 이 밑바닥에는 물론 기독교가 깔려있다.

오토만제국은 워낙 스케일이 커서 종교에 대한 관용이 남달랐다. 동방교회가 제국 전역에서 융성했음은 물론이고, 유태인을 보호하여 기독교세계의 반유태주의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19세기말까지도 난민의 행렬, 망명의 발길은 항상 서(西)에서 동(東)으로 향했었다. 이제 사정이 바뀌어 저들이 잘살게 되어 경제이민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니 그 못된 근성이 드러나고 있
는 것이라며 청년은 분개했다.

성깔 있는 친구를 더욱 약올리려고 물었다. 유럽이 그다지 야비하게 나오거늘, 터키는 왜 EU에 가입하려고 안달인가? 그는 더욱 억울해하며 터키인구의 반이 10대 미만의 어린이들임을 상기시켰다. 이들이 일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터키에서 시대착오적 모슬렘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오늘의 공화국을 세운 국부 아타튀르크가 그토록 힘써 이룩한 정교(政敎)분리가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터키는 냄비 속 미지근한 물에 든 개구리와 같은 처지다. 사상적으로 몽매하면서 휼계에는 뛰어난 모슬렘 세력이 서서히 불을 지피고 있는데, 개구리가 잠을 깼을 때는 이미 반쯤 삶아진 뒤라 냄비 밖으로 뛰쳐나올 수 없을 것이라 비관했다. 회교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유럽의 기민당과 같은 온건노선을 택하리라 바라는 것은 바보짓이라 한다. 도대체 ‘온건모슬렘’은 말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미워하면서도 유럽과의 제휴에서 돌파구를 기대하는 그가 안쓰러웠다. 그는 내 의견을 물어왔다.

나는 터키의 EU가입에 반대다. 터키가 경제를 크게 빠른 시일에 이룩하려면 한국식 개발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간기업 주도로 경제를 운용하되 국가가 전략산업을 강력하게 지원하는 방식인데, EU에 가입하고 나면 이것이 안 될 것이다. EU의 주변에서 허드렛일 하며 빵 부스러기 얻어먹으면서 어떻게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겠는가? 이 말에 청년은 밝게 웃으며 흔쾌히 공감했다.

깊어가는 겨울밤 눈 쌓인 창밖을 내다보는 마음이 따스해져왔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