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유리 피라미드 얘기를 꺼냈더니 비판의 화살이 날아왔다. 외우(畏友) 안세권 교수가 필자가 급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탐미적 도피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물었다. 나름대로 현실을 말했으나 너무 우원(迂遠)했던가 보다.나는 대구의 교외 무태에서 태어나 두 주도 되기 전에 중국 장춘으로 데려가져서 크다가 해방 일년 전에 귀국했다. 어린 나의 눈에 고국의 모든 것이 너무 작아 실망했다. 내 속을 본 어머니는 나를 고려대학의 전신 보성전문학교로 데리고 갔다. 인가가 거의 없는 곳에 넓은 소나무 숲을 뚫고 하늘로 치솟은 화강암 석탑 도서관을 보았을 때 받은 감동을 요즈음 젊은이에게 전할 길이 없다.일제가 지은 경성제국대학, 미국인 선교사들이 지은 연희전문, 이화전문보다도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보성전문이 훨씬 더 우람하고 패기에 넘쳐 있다는 사실이 큰 자긍심을 심어줬다. 인촌 김성수 선생은 나의 영웅이 됐다. 학교, 신전, 사찰 같은 건물은 정신의 표상이고 의지의 발현이며 미래 프로젝트의 선언이기도 하다.40년 전 계명대학 캠퍼스를 처음 봤을 때 인상 깊었다. 미국의 작은 인문대학의 교육철학이 잘 나타나 있는 것에 애착이 갔다. 그 후 계명대는 엄청나게 커져 국제규
“모든 정치의 토대에 문화의 정치가 있다.” 정치가의 말치고 너무 화사하다. 그러나 프랑스의 전 대통령 프랑소아 미테랑이 1988년 루브르 미술관 확장공사 현장에서 이 말을 했을 때,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시비하는 자 없었다.이 나라 통치자들은 기념비적 건조물을 세우는 집념이 각별하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궁전으로부터 퐁피두 문화예술전당, 지스카르 데스탱의 오르세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눈부시게 화려한 걸작품 목록이 길기도 하다. 여기서 하필 유리 피라미드를 말하는 것은 그 보석과 같은 아름다움 때문이지만, 그 파란만장한 생성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미테랑이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 M. 페이에게 루브르 확장공사 설계를 위임했을 때, 오천 오백만 프랑스인의 압도적 다수가 거국적으로 맹렬히 반대하여 나라가 마치 큰 벌집 쑤셔 놓은 듯했다.르 꼬르뷔지에를 위시하여 기라성 같은 현대건축의 거장들을 배출한 프랑스가 왜 외국인에게 이 중대한 일을 맡겨야 하는가. 미국인 건축가를 초빙한다 해도 자존심 상하거늘 중국계는 또 뭐냐고 분개하는 인종차별마저 등장했다. 미테랑이 무슨 전제군주냐, 국제현상설계도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나라 제일의 문화재를 망칠 짓을 감히 할 수
차가운 겨울밤 앙카라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버스를 타니 옆자리의 청년이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해사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화제가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에 이르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럽, 그 중에도 프랑스가 왜 이리 치사하게 구는지 모르겠단다. 1915년에서 17년까지 오토만제국이 지리멸렬할 때, 소수민족 아르메니아인을 사지(死地)로 몰아 떼죽음에 이르게 했다. 90년 전 일을 새삼 문제삼아, 이를 부인하는 것을 범죄로서 벌하는 입법을 유럽나라들이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가 이것을 주도하고 있는데, 35만의 재불 아르메니아인의 환심을 사고 터키가 유럽에 참여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속셈이 보인다는 것이다. 터키가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새 출발을 하면 되지 않는가 물으니 안된다고 한다. 그런 거두절미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는가. 비극의 발단은 러시아가 터키의 아르메니아인에게 분리 독립을 사주, 순진한 이들이 수천의 터키인을 학살한데서 비롯됐다. 이에 겁먹은 터키가 아르메니아인을 황야로 내몰아 30여 만 명을 죽게 했다. 이는 자위권 행사임으로 민족말살이 아님에도 유럽인들이 희생자 수를 100만으로, 요즘은 150만으로 불리면서
수년 전 동네 교민들 사이에 연속극 ‘대장금’이 크게 이름을 떨쳤다. 시간에 쫓기는 터라 보지 못 했는데, 퇴직하고 나니 이번에는 중국인 동료들이 왜 안 보느냐고 성화다. 그 중에도 의생(醫生) 왕 여사는 오로지 따이장징 보는 재미로 산다며 이미 다섯 번을 봤노라 자랑했다.드디어 동료교수가 호화판 DVD를 구해와 안사람이 보기 시작하니, 금방 살림에 변화가 왔다. 자기가 수라간 정 상궁이라 착각한 안사람이 임금님 수라에 정신이 팔려 밥 해줄 생각을 않는 것이다. 라면과 감자로 연명하니 속이 허하고 배에서 굴굴 소리가 난다. 50회가 넘는 에피소드가 다 끝나야 밥 한 끼 얻어먹을까 보다. 이것은 조금 불편한 대로 견딜 만한데, 시도 때도 없이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멜로드라마를 강요하며 필자에게 역사 얘기를 시키니 난감하다. 조광조, 사화, 사림파의 승리와 당쟁, 탕평책과 그 결과로 나타난 세도정치, 실학, 평민의 각성과 농민반란 등등 소시 때 배운 대로 둘러대니 복잡해서 듣기 싫단다.한마디로 훈구파는 모두 당파싸움과 가렴주구 밖에 모르는 역적들이고 사림파는 혁신과 진보의 주체라 한다. 그러나 실은 사림파가 부패 훈구파를 권좌에서 몰아내고 나자, 진보세력 자체가
밖에 나가 사는 사람이 해외여행을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유랑민이 새삼 유랑한다는 얘기가 우습지 않은가? 그러나 여권을 챙겨들고 바다를 건너는 것은 역시 누구에게나 큰 산보이다.먼 나라 마을의 길목에서 만나는 동포의 모습에서 고향살림의 맥박을 짚는다. 70년대 하이델베르그에서 만난 가냘픈 간호사. 함부르그 조선소에서 중노동에 지친 용접공. 80년대 샹젤리제를 활개 치며 고가 명품을 사재던 마님과 낭자들. 일반 시민의 해외여행도 점점 그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단체로 소풍 나온 소박한 차림의 아낙네들을 보면 반갑고도 대견하다. 이제 나라가 커져 고향사람의 마음도 넉넉해지고 있음을 이들의 모습에서 본다.나이 탓인지 노인들의 효도관광도 관심을 끈다. 방콕에서 비취빛 옥돌로 만든 불상 앞에서 외조모를 꼭 닮은 노인이 합장하고 연신 절을 하고 있어, 어릴 때 일이 떠올랐다. 외조모는 극락왕생을 하려면 자주 나다니면서 구경을 많이 해야 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계셨다. 불가의 말씀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가는 고행을 수도의 한 가지 방법으로 하라는 뜻이었다. 이것이 왜곡되고 와전되어 이 절 저 절 찾아다니며 유람하라는 얘기로 둔갑한 듯하다. 저승에 가면 염
30여 년 전 한 정신과 의사가 뜻밖의 얘기를 들려줬다. 인구 5백 명에 한 사람 꼴로 정신이상자가 있다는 것이다. 인구 3백만의 세인트루이스에 6천명의 문제인간이 있다니! 마침 합석했던 뉴욕에서 온 친구가 “그건 말도 안 된다. 맨하탄에는 최소한 두 명에 한 명은 미친놈이다.”고 해서 좌중이 웃었다. 캐임브리지 대학에서 그녀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5백명 당 정신이상자가 한 사람 있다는 이 비율은 세계도처 모든 공동체에 골고루 퍼져있는 평균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분석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는 인간 모두가 미쳐서 살인과 같은 극악한 짓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신이상자 5백 명에 한 사람 정도가 반사회적 행동을 할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무릇 정상과 비정상은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고,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연속선상에 나타나는 유동적 구분일 뿐이다. 광기(狂氣)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더라도 그것이 어느 단계에서 정상을 벗어나는지 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정신이상은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각개인의 행태를 서로 다른 문화가 각기의 기준을 만들어 정하는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지능지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