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3.8℃
  • 구름많음강릉 1.3℃
  • 구름많음서울 -2.6℃
  • 구름많음대전 -1.8℃
  • 구름많음대구 0.2℃
  • 구름조금울산 1.1℃
  • 맑음광주 0.9℃
  • 구름많음부산 2.3℃
  • 맑음고창 -2.1℃
  • 구름많음제주 5.4℃
  • 구름많음강화 -4.5℃
  • 구름많음보은 -3.2℃
  • 구름조금금산 -2.6℃
  • 구름많음강진군 1.1℃
  • 구름조금경주시 -2.1℃
  • 구름많음거제 1.8℃
기상청 제공

대선 재미있게 보기

우리는 왜 '그'를 지지하는가?

이번 대선은 처음부터 재미가 없었다. 처음부터 일방적 게임이었는데 무슨 재미가 있었겠는가? 그래도 지난 대선처럼 좌우 대결의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는데, 별안간 같은 우편인 자의 등장으로 좌편은 아예 처참한 3위로 밀려나고 1, 2위는 끼리끼리의 대결, 우파 대 우파의 대결이 되어 더욱 더 재미없게 되었다. 처음부터 우편인 자는 모르지만 좌편인 자는 물론, 좌나 우만을 보지 않고 좌우를 살피는 자에게도 재미가 없게 되었다. 동색인 우파이자 성도 같은 두 사람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무슨 상관인가? 그게 그건데 누가 되든 다를 게 뭐 있나? 그럼에도 ‘대선 재미있게 보기’라고? 어떻게? 내 재주로는 불가능하다.

최근 여론조사의 응답률이 20% 미만이라고 하여 국민 대부분이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녹음된 전화로 하는 대선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라는 걸 한두 번 당해보고는 다시 응하지 않게 된 나도 그런 염증부류에 속하는지 모르지만, 그런 전화를 바로 끊어버리는 것은 그것 자체가 싫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조사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은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지 모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의도적이고 도식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론조사 응답률과는 달리 세상은 온통 대선 타령인 듯하여 과연 우리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는지 의문이다.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 있다는 국회가 모든 국정을 포기하고 상대방 후보에 대한 갖가지 비방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을 모범으로 삼는 탓인지는 몰라도 시장에서도, 농촌에서도, 대학에서도, 교회에서도, 골목에서도 모두 대선후보 인물타령이다. 택시를 타도, 등산을 가도, 모임엘 가도 모두 그렇다. 정책이나 이념 따위에 대한 논의는 아예 없다. 국회의원들도 하지 않는 그런 논의를 일반 국민에게 기대하기는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치라는 것이 대선후보 인물타령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금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어느 한 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란 지금까지의 우리 정치사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다. 소위 양당정치를 하는 나라라면 보수와 진보, 또는 우파와 좌파의 양당이 비슷한 세력을 보여주어, 대선이나 총선에서 그 양당 중 어느 하나가 약간의 차이로 우세하여 교대로 정권을 잡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마치 벌써 판가름이 난 듯이 소위 보수 우파 후보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우리 풍토가 아무리 극심한 쏠림 현상을 보인다고 해도 이번의 압도적인 지지율은 비정상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지지의 이유는 상당수의 국민들이 소위 보수적 경제대통령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어느 후보는 재벌 총수를 지냈기에 그렇게 사업을 한 것처럼 나라 경제를 부흥시키리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에게 아무리 심각한 도덕적 문제가 있어도 그런 것은 재벌 회장을 지낸 사업가에게는 불가피한 것에 불과하고, 그것조차 사업수완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서 무조건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오래 전에도 그 재벌 회장 중의 회장이었던 자가 대선에 나섰으나 이 정도의 지지를 받기는 커녕 저조한 표를 얻어 결국 실패한 적이 있다.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 같다.

무엇 때문에 이런 사람이 압도적 지지를 받게 되었을까? 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현 정권=좌파 정권이 무능, 특히 경제적으로 무능했다고 보는 국민이 갖는 현 정권=좌파정권에 대한 극심한, 아니 절대적이라고 할 정도의 반발심 때문이리라. 현 정권은 틈만 나면 경제적으로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국민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재벌 총수 출신이라고 해서 획기적인 경제발전을 이룬다는 보장이 있을까? 소위 경제대통령을 바라는 것이 어떤 후보의 경제정책이나 경제적 능력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그 후보의 경력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 중독 또는 현 대통령이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막연한 이미지에 대한 단순한 반발 탓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러한 이미지 형성과 관련하여 흔히 논의되는 것이 소위 좌파와 우파의 대립구도라는 것이 있다. 현 정권을 좌파라고 하는 반면 지금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한 후보를 우파라고 봄에는 문제가 있지만, 그런 좌우파 구도가 굳어진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흔히들 우리의 정치사는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라고 한다. 광복 이후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정권에 이르는 개발중심, 권위주의 ‘우파’ 정권의 흐름에 대응한 김영삼 - 김대중 정권의 민주화 과정, 그리고 김대중 - 노무현을 ‘좌파’ 정권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본래적인 의미나 정치경제학적인 차원의 좌우 대립과는 달리,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것의 내용은 사실 애매하다. 즉 사회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를 뜻하는 좌파란 우리 정치사에 아직 등장한 적이 없다. 그것에 가장 가까운 정당이라고 하면 민주노동당 정도인데 이에 대한 지지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낮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현 정권이나 그것을 잇는 듯이 보이는 후보를 ‘좌파’라고 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얼마 전까지 대선의 대립구도를 좌파와 우파 정당의 대립이라고 보기는 어려웠고, 차라리 우파 중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라고 봄이 옳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파 정당에서 탈당한 제 3자가 등장하여 졸지에 2위의 지지를 받아 명실 공히 우파끼리의 대결이 되었는데, 이는 우파 중의 극우와 보수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정치혐오, 반정치, 탈정치라는 현상이 생긴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지금 우리의 경우는 도리어 경제발전 중심의 권력만능중독이라고 봄이 옳지 않을지 모르겠다. 심지어 현 정권을 지지했던 민주화세력 중에서도 상당수가 과거를 등지고 우파 후보자를 지지한다는 현상은 우리의 정치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해 여전히 인물 중심의 정치이고, 특히 강력한 리더십과 경제성장 신화에 대한 향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야말로 현 정권이 역사상 가장 무능한 정권이었기에 이를 사필귀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개발중심, 권위주의 우파 정권의 흐름으로 회귀하는 것을 우리는 과연 용납해야 할 것인가? 도리어 더욱 더 실질적인 민주화를 향한 역사적 당위의 흐름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전제에서 우리는 대선에 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전제에 선다면 대선은 조금이나마 재미있을 수 있다.

우리는 보수와 진보가 엄존하는 현실에서 그 어느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 아직도 수없이 많이 남아 있는 실질적 민주화를 향한 과제를 어느 쪽이 잘 실현할 수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양극분단화의 극복에 있지 않을까? 특히 실업과 비정규직을 비롯한 비참한 노동현실은 이제 남북분단보다 더욱 더 심각한 일상 생존의 위기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는 지금 국민의 대다수 여론처럼 보이고 있는 시장만능주의와 경쟁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경제성장 신화나 이를 위한 강력한 권력 리더십 중독이 아니라 그것에 맞서는 인간주의,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근거한 자유와 평등, 민주와 평화의 추구에 의해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구체적인 정책대결이라고 할 만한 것을 우리는 아직까지 보지 못하고 있지만 가령 경부대운하, 금산분리, 경쟁적 교육개혁 공약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대선은 조금은 재미있을 수 있다.

관련기사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