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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학년도 하계 국외봉사활동 소감문-내가 가진 재능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봉사

설한울(유아교육·3)

너무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진 한 여름 밤의 꿈같은 국외봉사를 마치고 제가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감동’이었습니다. 합격에서부터 교육, 봉사, 문화탐방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 조금 벗어난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꾼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 단원들과 함께했던 한 순간 한순간을 떠올리면 감동적이고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질 것 같습니다. 봉사기간 중 찍은 사진을 보니 영화 속 장면처럼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 영화 속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베스트 장면이 있습니다.


S#1. 2차 교육, 건강한 몸과 마음

학교주변 정화, 등산, 체육대회 이 모든 것이 하루의 일정에 속해있던 일이였습니다. 2차 교육은 평소에 운동부족으로 체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 계기였고 봉사라는 것이 마음만으로 절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등산을 했을 때 뒤에서 2번째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봉사를 마음만 앞서 시작한 것은 아닌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지 하는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접어두고 ‘체력을 기르자!’ 라는 목표를 잡고 집 주변 운동장을 저녁마다 돌았습니다. 그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는지 봉사기간 동안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S#2. 교육봉사, 영원히 잊지 못할 우리 아이들

봉사기간 중에 가장 뿌듯하고 잊지 못한 추억을 남겨준 시간이 교육봉사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었고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 아이들을 봤을 때 호기심에 젖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반갑게 맞이해주어서 고맙기도 하였습니다. 교육봉사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무엇인가를 제공하기보다는, 하루에 한 시간,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에는 모든 것을 잊고 같이 뛰놀면서 함께 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선물을 나눠줄 때도, 게임 순서를 정할 때도 불평하나 하지 않고 정이 많은 천사 같은 아이들을 보며 느낀 것들도 많았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모습, 다른 친구를 배려하는 모습, 다른 사람의 말에 집중을 하여 듣는 모습 등 제가 배울 점이 아주 많은 아이들을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S#3. 낭만에 젖어 돌아오는 비행기 안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외봉사를 지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 안에 있는 이기심을 없애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봉사기간 동안 사람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그러한 저의 목표가 완벽하게 달성되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기회를 계기로 조금씩 스스로의 이기적인 면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비록 국외봉사는 끝났지만 저의 목표는 아직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저의 도전은 계속 될 것입니다.

국외봉사를 하면서 무엇보다 선생님, 단원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가장 좋았고 평생에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내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눔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고 배려하는 것의 중요성도 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쯤에 다시 키르기스스탄으로 가서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때 그 장소에 가보고 싶습니다. 젊은 시절에 꾸었던 달콤한 꿈같은 이 기억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지치거나 힘들 때 이 기억을 떠올리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이현명(광고홍보학·4)


빛바랜 카메라, 다시 주어진 기회
휴학이라는 시간 동안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했다. 일과 여행 그리고 수많은 사업 구상들, 잡념 등 생각도 많고 할 것도 많았던 시간에 내 취미이자 특기였던 카메라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갔다. 학교에 다시 돌아와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국외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이번 기회를 통해 내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욕심을 가졌다.

운=노력+기회
전부터 해오던 영상작업들을 보니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혼자서 책도 찾아보고 아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면서 모르는 것을 하나둘 알아가는 재미를 붙였다. 국외봉사에 합격한 것도 재미를 추구하면서 꼭 가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만남의 시작
1차 교육이 시작되고 2차, 3차 교육이 진행되면서 단원들과의 친목도 다지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오다 만난 사람들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해 더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었고 키르기스스탄에 가서 할, 많은 일들을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고,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열정
각자 맡은 업무가 정해지고 그 일들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기 위해 모든 단원들은 오로지 국외봉사를 위해 전념하는 준비기간을 보냈다. 교육봉사, 문화공연 뿐만 아니라 단원들의 식사를 책임질 취사까지 어느 것 하나 빼 놓을 것 없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쏟아내었다. 각자가 가진 뜨거운 열정들을 내가 카메라에 잘 담아 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때마다 나는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단원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모습을 보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우리는 키르기스스탄에 가서도 빛을 발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봉사의 의미
내가 잘나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누어주는 것이 진정한 봉사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준비한 대로 되지 않았던 문제들을 해결해가며 아이들과 정이 들었고 서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토닥여주며 끈끈해졌다. 봉사하러 와서 봉사를 받고 가는 기분이 든 것은 키르기스스탄 현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에게 내부봉사를 함으로써 우리의 봉사가 더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지에서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가슴이 따뜻해졌다.

새로운 시작
끝나고 나니 내 개인의 욕심을 위해 국외봉사를 신청한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선물을 받고 간 기분이 들었다. 준비하는 시간, 현지에서의 생활이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지만 힘들었던 만큼 더 기억에 남을 것이고 마음속에 깊이 새겨질 것이라고 믿는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기회를 준 학교에 감사하고 단원들에게도 수고했다고 격려해주고 싶다. 끝으로 국외봉사를 통해 느꼈던 감정들, 사람들과의 관계들을 잊지 말고 현실에 적용하여 도약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장영무(언론영상학·3)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우리들의 대장정이 7월 12일 막을 내렸다. 합격의 간절함과 설렘, 첫 만남의 어색함, 마지막의 아쉬움, 그리고 지금 감상문을 쓰며 느끼는 그리움. 이 모든 감정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네팔에서의 2주는 내 기억에 영원히 남을 2Km짜리 필름으로 남을 것이다. 국외봉사 합격 후 가진 단원들과의 첫 회식 자리에서 특이한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먼저 국외봉사를 갔다 온 기수가 우리들을 잘 갔다 오라며 격려차 방문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나, 아예 자리 잡고 앉아 우리들의 눈을 의식하는 듯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쳐가며 유대를 형성하는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조금 불편했다.

나는 평소에 집을 매우 좋아하며,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이다. 헌데, 국외봉사 문화공연 연습에 적지 않은 시간을 빼앗기고 시험 준비 또한 촉박하게 하다 보니 ‘국외봉사 때문에 이번 학기 망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문화공연 연습은 연습대로 처지게 되고 괜히 국외봉사에 반감만 생겼다. 그렇게 나는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네팔을 가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네팔에 도착하여 영상촬영이라는 임무를 가지고 며칠간 봉사를 하면서 단원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새침때기 같던 여자 단원들이 남자 단원들의 먼지 묻은 옷을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털어주고, 무관심하던 남자 단원들은 여자 단원들이 힘들어 하는 작업을 도와주는, 그들은 서로를 위한 내부봉사를 조금씩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나도 카메라만 들고 뛰어다니기 미안하여 여유가 생기면 노력봉사에 참가하기 위해 신경 썼다.

같이 힘든 일을 끝내고 개울에서 샤워를 하며, 여자 단원들을 위해 물을 길러오면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웃고 있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처음 도착하자마자 ‘언제 이 열악한 환경에서의 일주일이 끝날까?’라는 생각을 하던 내가 하루하루 지나는 것이 너무나 아쉽고 벌써부터 헤어짐이 두렵기 시작했다. 그때가 되서야 선배 기수들의 유대가 왜 그렇게 끈끈한지, 왜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라고 소리 내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문화공연이 끝나고 서럽게 울던 여자 단원들의 모습에 마음 한 구석이 짠해왔다. 남자 단원들의 얼굴에서도 웃음을 보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그려지고 있었다. 나 또한 촬영이라는 핑계로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다른 이들보다 부족하여 아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한 단원들의 뜻을 바탕으로 한국 도착 직후 엠티를 갔다.

결국 우리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이제는 언제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오뚝이가 되어 있음을 알기에 나는 이 헤어짐을 헤어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선배 기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후배 기수들 앞에서 우리 모두 당당하게 우리만의 구호를 외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