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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신문 창간 64주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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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신문>이 오는 5월 26일 창간 64주년을 맞는다. 지난 1957년 창간된 계명대신문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학내의 건강한 여론 조성과 정보 전달을 위해 노력해왔으며 우리학교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앞장서 왔다. 계명대신문은 창간 64주년을 기념하여 본지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 계명대신문, 닻을 올리다
계명대신문은 1957년 5월 26일 <계대학보>로 창간되었다. 계대학보의 초대 발행인은 계명기독대학의 설립이사와 초대 학장을 역임한 감부열 목사였고, 그 시절 신문의 주류에 따라 국한문혼용체 세로쓰기 체제를 채택하여 한 학기마다 한 호씩 학보를 발행했다. 그러던 1965년부터 격주 발행을 시작한 계대학보는 1969년에 이르러 ‘순한글 가로쓰기’를 도입함으로써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가로짜기 편집을 실시했다. 1988년 <한겨레>가 종합일간지 중 최초로 전면 가로쓰기를 도입한 것을 생각하면 꽤나 앞서간 선택이었다.
 
1957년은 우리학교가 개교한 지 3년이 지나던 시점이었다. 이에 계대학보는 초창기에는 기숙사 착공, 운영위원회 총회, 본교 도서관 안내 등 교내의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또한 학술적 성향을 강하게 나타냈는데, 학생들 또한 매호 학술논문과 시, 수필 등의 문학작품 등을 활발하게 투고했다. 이에 호응하고자 1969년에는 학생들의 문학예술에 대한 열정을 북돋우기 위해 ‘계대학보 문화상’을 제정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계명문학상의 전신이다.
 
● 저항적 대안언론으로 우뚝 서다
1975년부터는 격주발행을 주간발행으로 전환하고 독자들에게 시의성을 갖춘 정보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던 계명대신문은 80년대에 접어들며 점차 사회참여적으로 변해갔다. 당시 주류 언론은 독재정권의 언론통제로 인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고, 민중들의 민주항쟁에 대한 왜곡, 축소 보도를 일삼았다. 하지만 학생과 시민들 사이에 고조된 변혁을 향한 열망은 대학사회 내부에서 점차 확산되었고, 이에 대학언론은 주류 언론이 소화하지 못했던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더불어 기성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참신한 기획을 자주 선보였다. 이때 계명대신문 또한 진보적 선명성을 드러내며 비판적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중반이 대학언론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과거의 계명대신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계명대신문은 ‘대학의 자유와 가치’, ‘6월 항쟁의 평가와 향후 과제’, ‘노동운동은 인간다운 삶, 그 쟁취를 위한 투쟁’ 등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90년대 초까지 저항적 대안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이어갔다. 캠퍼스 담장을 벗어나 사회로 시선을 확대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 대학언론, 위기를 맞다
90년대 후반 들어 대학 저널리즘은 일대의 변화를 맞는다.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정착한 이후 학생운동과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식어갔다. 이러한 학생사회의 변화는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고착화되어, 대학인들의 관심사를 점차 대중문화와 취업 등 현실과 밀접한 성격으로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대학언론의 비판적 성격도 약화되었는데, 그 반작용으로 학내 부속기관으로서 대학의 필요를 반영하라는 요구가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터넷 등 대중매체의 발달은 대학언론의 위기를 가속화했다. 사회 전반의 언론의 자유는 증진된 반면, 대학언론은 끝모를 추락을 거듭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독자층 이탈이 본격화되었고 수습기자 지원자 수도 급격히 감소했다. 계명대신문도 이러한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본지는 지난 2017년까지 학기당 8회를 발행했지만, 거듭된 인력난과 과중한 업무로 인해 지난 2018년부터 학기당 6회로 발행횟수를 줄였다. 그마저도 올해부터는 학기당 4회 발행으로 변경됐다. 4년 사이 발행횟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대학언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 학생사회에 대한 구성원들의 관심 저하가 대학언론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 2019년 한국언론학회와 삼성언론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대학언론 위기진단 대토론회’에 참가한 전문가들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정낙원(서울대·언론영상학부) 교수는 “학교 내부 구성원이 학보를 언론으로 인상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면서 “대부분의 학보가 교비 지원을 받기 때문에 이를 두고 구성원들이 대학언론을 홍보지나 소식지 정도로 인식한다”라고 말했다.
 
● 계명대신문이 나아갈 길은

대학언론의 위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듯 이를 해소할 대안과 전망도 가지각색이다. 지난 1987년 창간 30주년을 맞은 계명대신문은 ‘대학언론의 방향과 기자적 자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기사는 “신문의 방향성은 기자의 의지에 의해서 좌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방향성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며, 기자가 사회적 현실의 구체적 학습과 인식을 통해 그 당위성을 판단·수용하는 한편으로 이를 기초로 사회제반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계명대신문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2017년에 독자마당에 투고된 박완슬(경찰행정학·13학번) 씨의 글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박완슬 씨는 ‘재미없는 신문’이라는 뼈아픈 제목의 글을 보내왔다. 여러 교내 프로그램을 섭렵한 그였지만 계명대신문의 존재를 안 것은 2016년이었다고 한다. 그는 “계명대학교의 관보 역할로 전락한 계명대신문을 보며 금세 흥미를 잃었다”며 “꽤 오래 전부터 계명대신문은 언론 고유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신문사의 존재감과 파급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완연한 스마트 시대로 돌입한 현 시점에서 SNS를 활용하는 일이 불가피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6년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사태가 전국 대학가로 확산될 때, 계명대신문은 불의에 저항한 학생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았다. 또한 학내의 건전한 여론 조성을 위해 대학본부와 학생자치기구,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로 팬데믹 이후 계명대신문의 역할이 빛을 발했다. 갑작스러운 원격수업 전환이 결정되자, 대학본부가 학생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본지는 ‘연기를 거듭하는 학사일정…학생과의 소통 필요성 커졌다(2020.04.09.)’ 기사를 통해 대학당국의 정책에 대한 학생들의 여론을 서슴없이 전달했다. 또한 ‘등록금 감면’ 요구를 공론화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학습권 침해를 호소하는 학생들의 여론을 지면에 담아 해당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코로나19 특별장학금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대변하기도 했다.
 
창간 64주년을 맞아 계명대신문의 역사와 현재, 미래에 대하여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창간 70주년, 80주년, 나아가 100주년이 될 때까지 본지는 ‘대학에서 만난 유익한 즐거움’으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다.




[사설] 돌아온 선거, ‘수혜비 학생자치’를 끝내자 2022학년도 학생자치기구 총선거가 내일(11월 30일) 실시된다. 원칙대로라면 총학생회를 비롯한 16개 단위에서 차기 자치기구의 장을 두고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져야 한다. 그러나 지난 11월 15일 후보자 등록이 마감된 결과 인문국제대, 사범대, 음악공연예술대, 미술대는 입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됐고 후보자가 등록된 단위에서조차 경선을 치르는 곳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 사회에서 벌이는 가장 큰 축제라고 한다. 그러나 ‘축제’를 맞이한 학생들의 여론은 냉담하기만 하다. 선거가 사실상 당선이 확정된 이들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절차적 요식행위로 전락한 지 오래이고, 무엇보다 학생자치의 효용성을 학생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때는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 차 한 대 뽑을 수 있다’는 풍문도 널리 퍼져있었다. 물론 현재에는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되지만, 모든 소문에는 그 집단에 대한 당대의 평가가 응축되어 있기 마련이다. 세월이 흘러 이러한 양상은 학생들이 수혜비 납부를 거부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등록금 납부 기간마다 우리학교 에브리타임 커뮤니티에는 “수혜비(학생회비)를 꼭 납부해야 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