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시인, 그것도 대학이라는 최고 교육 기관에서 그를 호명하고 응원하는 일은 지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와 미래가 그런 것처럼, 제도로서의 교육과 자유로운 문학은 때로 한몸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격렬하게 대립할 수 있는 극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극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며, 젊음은 각자의 개성이 훼손되지 않고 삶의 내부에 머무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데 대한 인식일 것이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시문학상을 새롭게 제정한 계명대학교의 경이로움은 여기서 발현되는데, 그것이야말로 계량화와 서열화를 일삼는 세계에 무력하게 종속된 미래를, 끝내 인간의 자리로 돌려세워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기실 계명대학교가 줄곧 포기하지 않는 가치는, 단순히 예술을 교육의 한 영역에 포함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교육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므로 <제1회 계명신동집시문학상>에 임하는 심사위원들의 기쁨은 단순히 젊은 시를 읽는 것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심사자들은 9백 편에 이르는 시들 중 마지막으로 걸러진 「P의 거짓」, 「고래섬」, 「희고 노란」, 「이사 가는 날」, 「산세베리아의 관용과 사랑으로」 그리고 「명상 과일」을 놓고 오래 고심하였다. 최근 우리 시가 어느 때보다도 개성적인 작업들로 넘쳐나는 것처럼 이들의 작업 또한 뚜렷하게 자신만의 장단점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마치 깨져버린 세계의 신비를 지켜내는 것처럼, 이들이 선보이는 별자리를 하나의 망원경으로 다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를 비추는 거울 혹은 자신만의 창문일지도 모른다. 시 하나하나가 각자의 얼굴이 우주의 표정이라는 사실을 기꺼이 증명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제1회 계명신동집시문학상의 심사는 그것을 확인하는 고되지만 유쾌한 과정이었다.
함께 보내온 다른 시편과 마찬가지로 「P의 거짓」은 소박한 일상에서 얻은 느낌을 평이하게 써 내리면서도 거기 도사린 불안을 재치 있게 표현하는 작품이었다. 그의 발랄한 시어는 분명 성장과 도약을 위해 준비된 튼튼한 근육을 내장하고 있어 더욱 장래가 기대되었다. 「고래섬」이 가지고 있는 투명한 발화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보기 드문 심도를 가진 귀한 사례에 해당되었다. 말한 것 같으나 비워놓고 비워놓은 것 같으면서도 말하고 있는 순간을 담아내는 것은 창작자의 정념이 이미 시의 것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희고 노란」은 하나의 상을 잡아내고 그것을 통해 언어의 구조물을 쌓아 올리면서도 순간순간의 반짝임을 놓치지 않았다. 경험과 언어가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헤어져야 하는지를 직감한다는 것은 재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사 가는 날」의 장점은 단연 진솔함으로 닦아낸 삶의 풍경을 따뜻하게 응시하는 화자의 태도였다. 그것은 시의 출발이면서 궁극적으로 시가 감싸야 할 인간의 조건임에 틀림없다. 「산세베리아의 관용과 사랑으로」는 화자의 자리가 명확하고 그만큼 발화의 선도가 뛰어났다. 순간적인 포착으로 풍경을 지시하는 과정이 그랬고 거기 정념을 투사하는 방법이 그랬다. 확보된 세계를 가진 것은 시인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명상 과일」은 무심하게 지나가는 순간이 절대성을 지닌 시간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어떤 사건에 도달하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거느리는 ‘예감’에 바쳐져 있는 것이다. 시인은 혹은 시는, 특별한 사람이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자 앞에 나타난 무언가일 수 있다. 그래서 시의 위의는 모험으로 가득 찬 미지나 저 너머의 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정지시킴으로써 사물이 온전히 그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나, 그 순간 위에서만 제 생명을 얻는 목숨에 대한 증거로 남는다. 그리고 그 증거를 통해 우리 삶은 ‘영원’과 같은 잡히지 않는 관념을 ‘실재’로 받아낸다. 비록 경험의 질감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심사자들은 순간의 깊이를 음악과 정물이 가진 존재론적 긴장감으로 무리 없이 풀어낸 「명상 과일」에 상대적으로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데 동의했다.
시가 감각의 풍경을 그리는 장르라고 할 때에도 경험이 언어의 질감 속에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감각의 현장이 ‘몸’이며, ‘몸’의 감각은 외부와의 마찰과 충격, 교환의 과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는 언어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진실의 영역이기도 해서 단순히 ‘잘 쓴다’는 말만으로 평가를 완료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삶’이니 ‘감동’이니 ‘충격’이니 ‘새로움’이니 하는 요소를 아무리 대입해도 설명되지 않은 ‘무언가’ 말이다. 어쩌면 시는 그 ‘무언가’를 영원한 미지로 밀어내며 남기는 질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시가 아무리 뛰어난 표현과 인식을 드러내더라도 뜨겁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그 시가 던진 질문은 곧 식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 ‘무언가’를 시인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길어 올리고, 그 삶의 무늬가 언어로 드러날 때 소위 ‘시적 개성’이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상자의 시가 정물화된 언어 너머에서 뜨거운 운동성을 확보하기를 바라는 이유도 그러하거니와 응모한 모든 이들이 자신의 시가 우리 미래의 개척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부탁한다. 머잖아 우리가 이들의 시를 읽고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많은 지류가 합류된 바다가 없다면 고래는 살 수 없으며, 다양한 종이 서식하는 숲이 없다면 맹수는 튀어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시를 예비하는 수많은 청년들은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불안과 불편 속에서도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원천을 샘솟게 함으로써, 저 하류에 이르러 거대한 어장을 만들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계명신동집시문학상> 제정이 그러한 것처럼, 계명대학교가 그 자연을 끝없이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며 본 상과 더불어 모든 응모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래서 이 상은 미래의 모든 시인들의 것이자 우리 미래의 전망대이다. 감사와 축하를, 더불어 보낸다.
● 제1회 계명신동집시문학상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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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前 대구시인협회 회장 / 시인) |
조용미 (시인) |
서영희(서영처) (Tabula Rasa College / 시인), |
신용목 (문예창작학 · 교수 /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