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살아 숨 쉬어야만 대대손손 이을 수 있다. 여강 이씨들이 모여 사는 경북 포항시 기북면 오덕리 덕동문화마을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대표적인 공동체다. 내가 덕동문화마을을 간혹 찾는 이유는 자연생태와 사회생태와 인문생태를 아주 잘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전국 마을 중에서 덕동문화마을처럼 생태를 온전히 갖춘 곳은 많지 않다. 덕동문화마을의 자연생태는 마을을 둘러싼 자금산(紫金山)과 침곡산, 마을 앞의 덕연계곡과 숲이다. 덕동문화마을의 자연생태는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수백 년 동안 살게 한 원동력이었다. 덕동문화마을이 명승 제81호인 까닭도 잘 갖춘 생태 덕분이다. 덕동문화마을에는 덕연계곡인 용계천을 따라 조성된 송계숲, 정계숲, 섬솔숲 등 덕동숲이 있다. 대부분 소나무로 이루어진 덕동숲은 마을의 홍수 및 질병을 막아주는 비보숲이다. 그 중에서도 마을 어귀 송계숲의 ‘송계(松契)’는 마을 사람들이 소나무를 잘 가꾸기 위해 만든 계를 의미한다. 덕연계곡의 중심에 자리 잡은 용계정은 아주 품격 높은 정자이자 인문생태의 산실이다. 1546년 세운 용계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문부(鄭文孚, 1565-1624)의 별장이었다. 용계정 근처의 연못인
계명대출판부 신간신약성경의 심리학스캇 플레처, 2018‘성경적 심리학’이라는 분야는 한국 기독교계와 신학계에서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은 생소한 분야지만, 성경적으로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심리적 상태를 파악함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분야이다. 플레처의 저서 ‘신약성경의 심리학’은 성경적 심리학의 고전이므로 성경적 심리학 연구의 초석이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신약성경에 있는 심리학적 용어를 분석하는 것으로 영혼(Soul), 영(Spirit), 마음(Heart), 육체(Flesh) 등의 개념을 해설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2부는 이렇게 정리된 개념을 통해서 신약성경의 심리학적 체험을 해설하고, 3부에서는 인격 개념을 비교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서 이 책은 신약성경의 심리학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문의: 출판부 580-6233동산도서관 신착 도서술취한 원숭이로버트 더들리, 2019과유불급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단어 중 하나는 음주다. 적당한 음주는 우리에게 사회적 유대감이나 창조적 영감을 선사해 삶을 윤택하게 해주지만 과도한 음주는 교통사고, 폭력, 각종 질병 등 다양한 사회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무역보험 50주년 기념 제9회 대학(원)생 인쇄광고 공모전응모분야: 디자인, 광고/마케팅, 예체능접수기간: 2019.4.15.~2019.5.24.제6회 안전한 학교 공모전응모분야: 디자인, 광고/마케팅, 예체능, 캐릭터/만화접수기간: 2019.4.8.~2019.5.31.2019 토양환경 작품공모전응모분야: 디자인, 사진, 예체능접수기간: 2019.4.12.~2019.6.11.2019 장애인 인식개선 대학생 영상 공모전응모분야: UCC/영상접수기간: 2019.4.1.~2019.6.14.제7회 건강생활실천 UCC 공모응모분야: UCC/영상접수기간: 2019.4.19.~2019.6.17.
드라마 <열혈사제>(SBS)는 유쾌하다. 일상에 단비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금토 드라마라는 편성까지 살려냈다. 웃음의 요체는 의외성이다. 성스러운 차림새의 가톨릭 사제가 주축인데 그의 과도한 언행은 ‘발광’에 가깝다.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는 알코올 의존증 초기, 금연 금단 현상으로 인한 짜증 남발, 독설에 분노조절장애까지 갖췄다. 더 놀라운 건 그의 전직이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 요원이라는 사실이다. 충격적인 일에 휘말려 방황하다 영혼의 구원자 이영준 신부를 만나 사제가 되지만, 노신부는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해일의 분노는 불붙는다. 이 사건으로 다혈질 가톨릭 사제와 구담경찰서 형사들이 공조 수사에 들어가는 이야기다. 성격 개차반의 ‘전문직’들이 등장해 온갖 요란을 떠는데, 한국영화 흥행작들을 순간순간 뻔뻔하게 오마주 혹은 패러디 한다. 헌데 어찌나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추는지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 한다. 익히 예상되는 지점이 있음에도, 이 드라마는 관습적 표현 대신 어처구니없게도 끝까지 가는 재미를 택해 신선함을 주었다. 온갖 장르의 극대치를 동원하지만, 지향점은 우리사회 환부를 도려내고자 하는 연대의식이다. 물론 김 신부의 멋들어진
● 오페라 <나부코>일시: 2019.5.20~5.22./ 장소: 계명아트센터/ 문의:053-580-6611본교 창립 120주년을 기념하여 오페라 나부코를 개막한다. 기원전 6세기에 있었던 히브리인들의 ‘바빌론 유수’ 사건을 배경으로 한 공연은 웅장한 교회음악을 바탕으로 그 당시 종교의 권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우리학교 교직원과 학생에 한해 무료 상영의 기회를 제공하니, 이 기회에 관람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연극 <친정엄마랑>일시: 2019.4.25~6.16./ 장소: 문화예술전용극장CT/ 문의:053-252-5733연극 ‘친정엄마랑’은 딸을 위해 뭐든 해주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그러지 못한 엄마의 미안한 심정과 철부지 시절 엄마가 부끄러웠던 딸, 두 인물의 심정이 상반된다. 특히 코미디라는 요소를 더해 엄마의 소중함을 재미있게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하는 대학생들에게 더 의미 있는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해 집을 떠나 혼자 살게 되면서 본가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던 나를 반겨주던 어머니는 물론이고, 늘 깨끗하게 비어 있던 싱크대, 식사 시간 즈음이면 집안을 가득 메웠던 밥 짓는 냄새.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청소도 마찬가지다. 이 좁은 집은 왜 며칠만 지나면 금세 엉망진창이 되는 건지.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머리카락과 의자 위에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옷가지, 가구들 위에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는 또 어떻고. 아수라장이 된 집안을 보고 있자면 치워야겠다는 의욕이 생기기는 쉽지 않다. 살림에 서툰 초보 자취생들이라면 아마 도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활용품점에서 산 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 물티슈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바닥에 굴러다니는 큰 쓰레기들만 대충 치운 채 “청소 끝!” 이라고 외치는 자취생들도 여럿 봤다. 청소는 ‘장비빨’이다. 장비만 제대로 갖추어져도 청소하는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다. 바닥 청소만 하더라도 그렇다. 아무리 빗자루질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먼지들까지 완벽히 치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입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질병으로 큰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해 작은 희망조차 품을 수 없었던 시간, 제게는 그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위로와 희망이 간절하게 필요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흔히 그렇듯 그 위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주어졌습니다. 퇴원 후, 무리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책상 앞에 앉을 수 없었던 어느 주말 저녁, 우연히 TV에서 젊은 가수가 불러 준 노래는 큰 위로가 되고, 감동을 주었지요. 노래를 들으며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저 젊은 친구는 한 곡의 노래만으로 사람들에게 이토록 큰 감동을 선물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이만큼의 감동을 준 적이 있었을까?’ 그 뒤 제 삶에는 두 가지 작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음악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삶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를 바라게 된 것이지요. 무엇보다 번잡한 일상에서도 늘 음악을 가까이했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다시 새로운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씨앗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기도 하지요. 특히 KBS 라디
요즘 시민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고 지원에 의한 것들도 있고, 지자체나 기업체에서 마련하는 것들도 있으며, 그러한 프로그램을 원하는 수요층도 유소년에서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다. TV나 라디오를 통해서도 종종 저명 강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팟캐스트나 유튜브 같은 매체들은 언제든지 듣고 싶은 강의를 불러내어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인문학이 대세다.”라는 말까지 들린다. 인문학의 대표 학문인 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러한 말은 당연히 듣기 좋을 것이고, 공장식으로 직능인들을 찍어내던 지난날의 방식을 반성하고 창의성과 도덕성을 갖춘 지성인을 원하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고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상정일 테다. 하지만, 저 말을 듣는 인문학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오히려 걱정, 절망, 좌절 따위라는 것이 불편하지만 더 객관적인 사실이다. 이 기묘한 역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첫 번째로는 인문학 시장 성장의 모양새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이기적이고 즉물적인 욕구 덩어리로 영락하지 않고자 인문학을 통해 스스로를 경계하고 조탁하려는 시민 대중의 수요는 물론 칭찬
군대에 갔다 3년 만에 복학한 나는 아무래도 오랜만에 학교에 오다 보니 여러 곳에서 변화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전자식으로 바뀐 출석방식, 동산의료원의 완공된 모습, 4학년이 된 여자 동기들까지 많은 곳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당연하게도 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것들이기에 나에게는 낯설고, 새롭게만 다가왔다. 변화를 두고 낯설고 새롭게 느낀다는 것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새로움은 결국 변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단발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반복해야 할 숙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도태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변화마저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새로움을 추구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루함과 식상함 대신 새로움과 참신함을 계속해서 원한다. 허나 동시에 변화에 대해서는 두려워한다. 한 번 발생한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움은 변화를 통해서
스물, 꽃이 필 나이라고들 한다. 모두가 그리워하고 선망하며 축하해주는 나이. 그 스물의 초입에 나는 우두커니 세워져 있다. 정신없고 기대와는 달랐던 현실에 실망하기도, 사소한 것에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사회 초년생을 향한 끊임없는 가르침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그 가르침을 받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는 생각한다. 어른이란 무엇이며 사회란 무엇인가. 가르침을 주기 위해선 얼마나 성장해야 하는가. 직접 겪지 않고도 가르침만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도전. 신입생이 되어 받은 가르침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이다. 도전을 통해 세상에 부딪혀 다치더라도 상처가 아물며 세상을 배울 것. 이것이 내가 내린 성장에 대한 정의이다. 그리고 가르침에 대하여 또 생각한다. 가르침이란 자신의 수많은 도전을 통해 얻은 경험을 고스란히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도전을 통해 조금 덜 다치도록 보호대를 하나 건네주는 것. 그쯤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보호대를 건네받아 찰 것인가에 대한 여부는 자신에게 달렸다. 멋없더라도 내 무릎을, 내 팔꿈치를 보호할 것인가, 말 것인가. 수많은 가르침이 있더라도 나는 그렇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란 것 또한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