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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뉴스 마인드’는 일상 성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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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신선한 놀라움! 신문기자로 20여 년 일하면서 이 뉴스 격언은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칫 단순하게 되풀이되기 쉬운 일상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뉴스가 하기 때문이다. 온갖 대중매체(매스미디어)를 통해 뉴스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신선한 놀라움은 뉴스가 현실과 대결하는 에너지이다. 

 

나는 뉴스를 <일상의 삶을 새롭게 만드는 태도와 노력>으로 정의한다. 국어사전은 일상(日常)을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고 풀이한다. 일상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뉴스마인드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풀이는 일상의 소중함을 맥빠지게 만든다. 일(日)은 태양의 움직임이다. 상(常)은 한결같이 떳떳함이다. 

 

일상은 태양의 햇빛과 잠시도 떨어질 수 없다. 태양이 날마다 지구에 떳떳함을 준다면 우리는 일상의 새로움으로 태양을 마주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태양과 맺는 이 같은 관계를 ‘일상의 새로움을 위한 뉴스마인드’라고 규정한다. 태양의 움직임이 한결같이 떳떳하다면 나의 삶도 한결같이 떳떳해야 비로소 진정한 일상이 된다고 할 것이다. 

 

일상의 단순 반복은 뉴스의 적(敵)이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태양을 마주하면서 현실과 대결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넘어서는(비욘드, beyond) 태도와 노력이 일상다움이다. 무엇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그냥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일상을 새롭게 이룩한다는 의미다. 봄이라는 계절을 나타내는 춘(春)은 땅 속에 있던 초목의 싹이 햇빛과 만나 자신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태양(日)이 들어 있다. 

 

계명(啓明)은 밝은 새로움을 개척한다는 뜻이니, 삶의 새로움으로써 뉴스를 창조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늘에는 계명대와 뜻이 같은 별인 계명성(샛별)이 빛난다. 나는 별(星)을 특별(特別)로 이해한다. 특별함은 일상을 성장시키는 새로움에서 돋아난다. 특별해야 별처럼 빛난다. 자기 자신의 일상을 특별하게 느끼며 가꿀 수 있어야 빛나는 계명성이 될 수 있다. 

 

올해 봄에 <뉴스마인드 연습 노트>를 쓰는 좋은 습관을 시작해보자. 자신을 새롭게 보는 특별한 계기가 되리라. 취업을 위한 실력은 물론 평생 자신을 지키는 디딤돌 역할도 할 수 있다. 삶과 역사는 뉴스와 함께 성장한다는 신선한 통찰이 궁금하면 미첼 스티븐스 교수의 《뉴스의 역사》와 《비욘드 뉴스》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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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수결주의·합리주의 정치모델과 국가행복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민주주의의 정체 또는 퇴행이라고 볼 수 있는 위기 가능성의 징후가 많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도, 정체성이 없는 정당정치 등은 한국 정치의 낮은 제도화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 토대를 위한 사회적 기반의 붕괴와 민주주의 절차의 핵심인 정당체제의 역할이 실종된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국민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한국정치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를 제시하기 위해 다수결주의와 합의주의 정치모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다수결주의는 말 그대로 다수의 뜻이 지배하는 정치원리를 의미한다. 이 원리는 다수를 점한 세력에게 정치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며, 일사분란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수결주의는 다수를 점하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에 야당은 다음 선거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침묵해야 한다. 다수결주의는 이러한 면에서 매우 배타적이고 경쟁적이고 적대적이다. 다수결주의가 작동되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합의주의는 다수가 지배하는 정치원리라는 면에서는 다수결주의와 다를 바 없으나, 다수에 의한 지배를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