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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60주년 특집 - 동산의료원 이전, 새로운 도약

메디시티 대구의 랜드마크, 지하5층, 지상 20층, 1033병상 규모의 국내 최대시설


서양의술의 전파는 기독교 전파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대구·경북 최초의 의료기관이자 대구의 복음화에 기여한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이 그러한 역사를 대변한다. 1899년 대구에 ‘미국약방’이란 이름으로 진료소를 내고 의료선교를 펼치던 존슨(Woodbridge O. Johnson) 선교사는 약전골목 남문안교회(구 제일교회) 구내에 있던 초가 한 채에 ‘제중원(濟衆院)’이란 간판을 걸고 치료활동을 펼쳤다. 이 제중원이 바로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전신이다.

제중원이 문을 연 당시는 서구열강과 일본의 식민지정책이 나라의 주권을 위협하던 혼돈의 시기였다. 또한 나병환자가 속출했으며, 결핵, 말라리아, 기생충이 성행하는 의료의 황무지기도 했다. 존슨 초대원장은 1906년 제중원을 현재의 동산동으로 옮기고 나병환자 구제사업과 풍토병 치료, 천연두 예방접종, 사회보건 계몽을 통하여 우리 민족이 겪는 고난과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

대구 최초의 제왕절개로 아기와 어머니의 생명을 구했으며, 제중원 청년 7명을 의학도로 선발하여 현대 서양의학을 최초로 보급하는 등 대구 최초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위대한 성과들이 ‘제중원’을 통해 이뤄졌다. 존슨 원장이 심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사과나무는 지금도 대구를 사과의 도시로 유명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널리 알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아름답게 전하기 위해 교회나 병원, 학교를 세웠고, 그를 통해 지역사회의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는데 동산의료원을 포함하여 제일교회, 신명학교가 해당된다. 동산의료원은 지역 처음으로 서양의술을 펼치며 근대화를 일으키고 오랜 세월 대구에 서양문화를 보급하는 중심지가 되었으며, 대구의 시온산, 또는 여호와이레라고 불렸다.

1911년 취임한 2대병원장 플레처(Archibald G. Fletcher) 의료선교사 때부터 제중원은 동산병원으로 불렸다. 일본 강점기,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동산병원은 전문 진료과를 갖춘 종합병원으로 성장했고, 인턴제도를 첫 출발시켰으며, 병리검사실과 X-선검사실을 만들어 진단의 과학화를 선도했다.

나병의 치유에도 전력을 기울였다. 오늘날 애락원으로 잘 알려진 나환자 요양소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곳이다. 또한 영아를 위한 복지사업과 함께 간호부 양성소도 설립했는데, 간호부 양성소는 훗날 간호대학으로 거듭나게 된다. 무엇보다 동산병원의 빛나는 업적은 의료선교사업이다. 모든 환자에게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전도회를 만들어 병원 전직원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에 147개의 교회를 개척하였고, 시골 구석구석까지 무의촌 진료와 그리스도 복음을 전파하였다. 전 직원이 급여의 1%를 내놓으며 시작된 이러한 사랑의 실천은 오늘도 (사)동산의료선교복지회란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백년의 세월에도 변치 않는 동산병원 정신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7대병원장 마펫(Howard F. Moffett) 의료선교사는 45년을 재직하며 병원 시설을 신축·확장하고 현대식 의료장비를 도입하는 등 동산병원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6.25전쟁 후 급격히 늘어난 환자 진료와 병원 발전을 위해 의사와 직원들은 미국에 유학하며 해외 선진의학과 경영을 배웠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한국 최초로 아동병원을 설립해 전쟁고아를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당시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들었던 약을 동산병원에서는 구할 수 있었으니 그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특히 마펫원장 부부는 해외 모금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예상을 초과하는 후원금을 모았고 초현대식 건물과 복지시설로 전국의 병원들이 부러워하는 선진병원으로 거듭났다.

1960, 70년대 동산병원의 의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국 최초의 심장소생이 이뤄졌으며, 방사성 옥소 치료, 척추마취, 나환자 손발 건 이식술 역시 한국 최초였다. 비수도권 최초로 방사선 암치료를 시작했고, 병리기술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각 부서별 전문 선교사를 초빙하여 외국에 가지 않더라도 선진기술과 기법을 전수받았다. 이 시기, 선교봉사활동 또한 더욱 활발해졌다. 6.25전쟁 당시의 피해 복구 사업이 진행됐고, 의료사각지대에 진료소가 개설되는 한편, 태국, 일본 등 해외에까지 의료선교의 손길이 미치기 시작했다.

동산병원은 1980년대 접어들며 새롭게 도약한다. 영남지역 대표적 기독교 사학기관인 계명대학교와의 병합으로 의과대학을 세우게 되면서,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진료와 선교를 넘어 교육과 연구까지 병행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기관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앞서가는 대학병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랑과 박애를 바탕으로 한 선교정신과 개척정신 때문이었다. 100여년전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동산의료원은 그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외 의료 봉사를 본격적으로 전개해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쉼 없이 국경 없는 인술을 펼치고 있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은 현재 의과대학, 간호대학, 대구동산병원, 경주동산병원을 산하에 두고, 한 세기를 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첨단 의료장비와 우수한 전문 의료진 등 2천2백여명의 교직원이 하나가 되어 국민건강과 그리스도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특히 환자 행복을 우선시하는 선진진료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우수한 보건의료인력의 교육과 연구 수행을 통해 연구중심병원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속의 의료원으로 그 명성을 떨칠 수 있도록 또 다른 인술의 백년을 계획하고 있다. 의과대학, 간호대학, 의과학연구동을 2009년 12월 완공한데 이어 2012년 새병원 기공식을 갖고 2016년 완공을 위해 공사를 한창 진행 중이다. 새 병원은 지하 5층, 지상 20층, 1033병상의 규모로 와룡산과 금호강 등 천혜의 자연환경과 첨단 의료시설이 어우러진 국내 최대시설로 건축되어 메디시티 대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우뚝 서게 된다.

국내 최초로 에너지 절약형에 친환경 건축물로 인증받는 LEED 인증을 비롯해 의료의 안정성과 질을 보장하는 JCI인증 획득을 목표로 설계되어 글로벌 병원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게 되며, 감염방지와 환자안전을 최대한 고려한 신개념 환자중심 시스템으로 한국의료역사에 또 한번 획을 긋게 된다.

동산의료원은 앞으로 전국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수준 높은 특성화 전문진료센터를 집중 강화하여 서울 대형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던 지역민뿐 아니라 전국에서 찾아오는 환자 중심병원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동산의료원이 병원을 찾는 환자들과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115년 역사를 함께 해 왔듯이 앞으로도 사랑의 동행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 동산의료원은 성서시대의 또 다른 역사를 꿈꾸며 새로운 출발선상에 있다. 동산의료원이 만들어갈 새로운 백년대계로 전 구성원이 설레는 마음이다. 대구 최초로 시작한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병원이 되기까지 동산의료원의 인술의 등불은 영원토록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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