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 노동자, 배달노동자, 이주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택배기사…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아무도 쓰지 않은 부고’에 눈길이 갔다. 전태일 열사 50주기의 꼭 하루 전인 11월 12일 〈서울신문〉은 올해 상반기 야간노동 중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부고로 1면을 빼곡히 채웠다. 1면을 둘러싼 검은 띠 안을 수놓은 무수한 ‘궂긴 소식’들은 슬프고도 가혹한 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에 홀로 분리수거를 하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경비원 이모씨는 일주일간 88시간을 일했다. 지게차에 깔려 숨진 콘크리트 생산 노동자 방모씨의 죽음은 어두운 작업환경과 보행자 전용 통로의 미확보, 현재 작업 지휘자 부재가 낳은 인재로 드러났다. 문득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말이 기만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죽음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죽음도 그러했다. 초거대 기업집단의 수장이었던 그도 최후의 순간엔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추모하는 방식과 그의 죽음이 갖는 무게는 평범한 이들과 동등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마치 국가적 손실인 것처럼, 역사적 위인의 죽음인 것처럼 떠받들어졌다. 언론은 그의 부고를 전국 방방곡곡에
예년과 같았다면 지금은 학생자치기구 선거 유세가 한창일 시기다. 우리학교 특유(?)의 유세 방식이라고 한다면 역시 ‘로봇 인사’와 ‘우렁찬 함성’ 소리다. 로봇 인사야 몇 번 겪어보면 그러려니 한다지만, 양복을 차려입은 무리가 대오를 맞춰 선거 구호를 외치는 행위는 “강의에 방해된다”는 유권자들의 항의를 받을 정도인지라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다. 그런데 매년 지겹도록 경험하는 이 독특한 선거운동이 올해엔 자취를 감췄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선거가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캠퍼스에서 선거운동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썰렁한 캠퍼스에서 지지를 호소하기가 그리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코로나19 팬더믹 이전에도 학생자치기구 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는 높지 않았다. 수년째 계속되는 취업난과 대학공동체의 붕괴에 말미암아 투표율은 50%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고 단독후보가 출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부 단위에서는 아예 후보자가 없어 보궐선거로 넘어가기 일쑤다. 하지만 과거에는 선거 열기가 꽤나 뜨거웠던 모양이다. ’91년 11월 12일자 〈계명대신문〉의 ‘각 후보자들 막바지 표모으기 작전 주력’ 기사를 보면 당시 총학생회 선거에 나
2071년 대구의 여름은 49℃까지 오른다. 49℃면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움에 바깥 활동은 불가능할 것이다. 야구는 실외에 있는 삼성 라이온즈 파크는 거대한 찜질방으로 변신할 것이다. 상상하기 힘든 이런 상황은 앞으로 닥칠 기후변화의 미래다. 최영은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기후변화학회 학술대회에서 “기후변화를 고려한 최고기온 극값을 전망해보니 온실가스 배출을 적극적으로 감축해도 20∼40년 뒤에는 43도에 이르고, 감축 정책을 펴지 않고 현재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최고기온이 49도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고 말했다. 최 교수 연구팀은 인류가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했을 때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등을 시나리오로 삼아 향후 우리나라 기후의 미래전망을 도출했다고 한다. 암울하고도 뜨거운 미래 전망을 바꿀 수는 없을까? 뜨거웠던 미국 대선이 끝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주목할 만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파리기후변화협정에 가입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국제 질서를 내팽겨친 것을 바로잡겠다는 첫 일성으로 기후협정 복귀를 이야기한 것이다. 파리기후협정은
소설은 떠남의 이야기요 방랑의 기록이다. 좀 더 근사하게 말하자면, 소설은 정신적 고향을 찾아 가는 길이다. 방황에 내맡겨진 젊은이들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요즘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실로, 이 시대에 ‘길’을 탐색하는 소설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 한 권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내 눈길이 자꾸만 옛날로 내려간 이유이다. 너무 옛날은 그렇고 20세기 초에 나온 소설 한 권을 소개할까 한다. <페터 카멘친트>. 헤세가 27살 때 쓴 청춘소설이다. 우리에게는 <향수>로 더 잘 알려진, 소위 성장소설이다. 젊은 페터가 보여주는, 힘겨우나 낭만의 아우라가 깃든 성장사는 누구나 한번쯤 겪는 모습일 것이다. 각박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페터의 청춘기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연·사랑·우정·여행·봉사로 요약할 수 있다. 스위스 산골에서 태어난 페터의 유년기는 완전히 자연에 감싸인 일상이다. 산과 호수가 친구이고 풀밭에 누워 바라보는 구름은 어떤 동화책도 주지 못하는 상상력의 원천이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공부보다 독서와 글 쓰는 데 보람을 느끼는
이제는 일상생활 속에서 마스크와 소독제가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매일 사람들과 대면하여 자유롭게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진 지 어느덧 9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그저 집밖에만 나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이 외출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 사회 전반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시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학교 강의실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코로나로 완전히 멈췄던 학교 강의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사용해 원격강의를 진행하거나, 대면 강의의 경우 한 좌석 비워두기를 실천하는 등의 여러 모습도 보인다. 학교 식당도 칸막이를 배치하거나 한 명씩 앉게 좌석을 배치하였다. 학기 초 동아리 모집과 축제로 시끌벅적하던 학교는 동아리 모집을 인터넷으로 하게 되었고 축제도 예약을 받아 좌석을 배정받은 후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참석하게 되어있다. 탁 트여있던 넓은 식당과 카페의 테이블은 칸막이로 채워져 비말을 직접적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문과 계산도 직원이 직접해주는 곳도 무인주문기(키오스크)와 셀프계산대가 설치된 곳도 많이 보인다. 기차 좌석도 한
‘영끌’ 주식투자가 대세가 된 시대 탐욕에 눈멀어 빚에 허덕이는 일 경계해야 SK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 빅히트엔터테인먼트. 30조 9천899억 원, 58조 5천543억 원, 58조4천236억 원. 최근 몇 달 사이 천문학적인 돈이 일반 공모주 청약에 몰렸다. 주식 광풍의 시대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내는 것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돈을 모아) ‘주린이’(주식 투자를 시작하는 어린이)의 모습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시작은 지난 3월이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덮치자, 주식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생산과 소비 등 경제활동이 멈출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 속에 코스피는 1400선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일반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1997년 외한 위기,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 등 두 차례의 위기 상황을 보며 경제는 다시 반등한다는 것을 학습했다. 경기가 안 좋으면 미래를 대비해 현금을 쓰지 않고 모아놓는 것과 반대로 주식을 사 모았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급하게 팔아 값이 떨어진 국내 주식을 수집했다. 코스피는 마침내 바닥을 찍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차벽이 다시 등장했다. 보수단체가 개천절 집회 강행을 선언하자 정부가 꺼내든 고육지책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차벽이 설치된 것은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로, 경찰은 서울 시내 진입로 곳곳에 총 90개소의 검문소를 설치하는 한편 광화문 일대를 지나는 전철을 모두 무정차 통과시키는 등 집회 차단에 열을 올렸다. 일각에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잉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경찰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방역의 불가피성이 집회의 자유를 앞서는 상황은 썩 유쾌하지 않다. 불과 4년 전 부패한 권력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광화문 광장에 공권력의 상징인 차벽이 줄지어 선 모습이 익숙하고도 불쾌한 기억을 되살린 탓이다. 차벽은 과격·폭력 집회를 방지하고 집회 현장의 질서유지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 2003년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당초의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도 차벽은 권력의 입맛에 따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2008년의 ‘명박산성’과 2015년의 ‘근혜장성’이 그러한 악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정부를 만
우리 전통음악장르 ‘가곡(歌曲)’을 아십니까?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불러보기도 한 것 같은데, 우리의 가곡은 이은상의 ‘가고파’,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이 있고, 서양의 가곡은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슈만의 ‘시인의 사랑’ 등이 있습니다. 헌데, ‘가곡’이라는 명칭을 우리 사회가 개화기를 거치면서 서양양식의 가곡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곡을 구분 짓기 위해 ‘전통’이라는 어두가 붙어 소개되곤 하지요. 제가 소개하려고 하는 ‘전통가곡’은 그 중 하나라고 꼭 집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음악이나 공연이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면서도 적절치 않은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 느낌은 그 어느 한 개념만으로는 제가 갖게 된 전통가곡의 독보적 정체성과 실체적 아름다움을 전하기가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딱히 작품도 아니며, 온전히 음악도 아니며, 더구나 공연무대에 올라 청중과 원활한 소통을 거둘 ‘무엇’이 아니라는 망설임 때문입니다. 전통가곡은 국악의 대표성을 띠는 장르가 아니라서 아주 간간히 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이를 경험할 기회도 없는 학생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다 기회가 생겨 무대에서 볼 수 있어도 신기해하거나 너무 낯설어 질색
코로나19는 대학가의 풍경마저 바꿔놓았다. 학생들에게 있어 가장 와닿은 변화는 축제가 아닐까 싶다. 올해엔 코로나19로 인해 축제를 진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총학생회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지만, 확진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는 상황에서 축제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사실상 무산된 축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제1177호 뉴스타임머신은 1985년으로 향한다. 많은 학우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사실이지만, 우리학교 축제의 정식명칭은 ‘비사대동제’다. 여기서 대동(大同)이란 ‘크게 하나됨’을 의미한다. 대학 축제에 대동제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80년대의 엄혹한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군부 독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다치거나 죽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축제를 즐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당시 대학가를 지배했던 민족주의적인 분위기가 이러한 흐름과 결합해 축제가 곧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적 의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또 1985년은 우리학교의 학도호국단(군사정권이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이 총학생회로 환원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학교 학생들은 그간의 억눌렸던 민주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의대로만 쏠리는 현실 사회적으로 적정한 배분인지 따져봐야 ※ 사회적 쟁점을 대학생의 눈높이에서 해설하는 '키워드로 보는 세상'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생사를 가를 중요한 진단을 받을 때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1번)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의사. 2번) 성적은 부족하지만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이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평균 잡아 전국 2천300여개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 또는 2등을 해야 정원이 3천58명인 의대에 입학할 수 있는데, 전교 1등만 의대를 가야 할까. 아니면 1등이 아니어도 들어갈 수 있게 의대 문을 좀 더 넓힐 필요가 있을까. 선택은 제각각이지만 한국 사회는 이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밝히자, 이에 반대하는 의대생들은 시험을 거부하고 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은 진료거부로 맞섰다. 정부와 여당은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선 의사를 더 공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은 평균 1천명당 3.4명의 의사가 있는데, 한국은 한의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