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기가 시작된지 며칠이 지났다. 아직까지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 책읽기에는 더없이 좋은 시기가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 4.0”은 세계적인 경제평론가 아나톨 칼레츠키가 자본주의의 발전궤적을 18세기 후반부터의 실증자료를 토대로 살펴본 책이다. 자본주의 4.0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
주말에 모처럼 본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삶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양계장에서 알을 낳는 것이 전부인 ‘잎새’라는 암탉이 마당에서 줄지어 다니는 오리와 다른 닭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마당에 나가 알을 품어보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
식상한 질문을 해본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고등학교에서나 대학교에서나 또 사회에 나가서도 변함없이 경쟁하고 공부해야 하는 갑갑한 현실을 살기도 바쁜데 한가한 질문이다 싶다. 그런데 자꾸 카이스트 학생들의 슬픈 소식을 접하면서 그들이 궁극에 던졌을 이 질문을 해본다. 나는 무엇으로 살…
소통을 강조하는 만큼 역설적으로 소통이 부재한 이 시대에 종종 말에 민감해질 때가 있다. 귀가 예민하게 발달한 것도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소리가 지닌 속성으로 인해 기분이 좌우된다. 쉐턱관 4층 연구실에서 듣는 학생들의 말소리는 언제나 기괴한 소음이다. 웬만하면 견딜 법도 한데, 참지 못할 때가 많다…
과거에 비해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만큼 행복해졌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온 후에는 좋은 학점을 받고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또한 취업을 하기 위해 잠시 한 눈을 팔 여유도 없다. 이러한 생존 경쟁 속에…
‘연극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피터 셰퍼(Peter Shaffer)의 <고곤의 선물, The Gift of the Gorgon>(1992)에 나오는 대사처럼 배우가 사라진 세상은 색을 잃은 물감처럼, 존재하지만 생명이 사라진 세계와 같을 것이다. 연기는 아름다운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성에만 의…
여기 왼쪽 집게손가락 하나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손가락을 잃어버렸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도자기 만드는 데 빠졌었지요, 녹로를 돌려야 하잖소, 그런데 이게 자꾸 거치적거리는 거요. 그래서 어느 날 손도끼를 들어……. 상상하기도 끔찍하지요. 이런 말을 할 만한 사람을 그려본다면,…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캠퍼스, 우리 학생들에게 일본의 한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히미코’의 방이라는 뜻의 이 영화 제목 ‘메종 드 히미코’는 늙은 게이들이 모여사는 양로원의 이름이다. 양로원의 주인인 ‘히미코’의 이름을 따서 만든 히미코의 방이라는 뜻의 영화 제목은 왠지 기분이 따스해진다.…
지난겨울, 유난이도 눈이 많이 내리고 추웠던 날씨가 한풀 꺾기고 봄이 찾아 왔다. 개학을 하면서 새로운 얼굴들과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이 봄이 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새로움을 알리는 봄. 나는 한해를 시작하는 계절에 새로운 창조적 시도를 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올…
학창시절 친하게 지냈던 여학우의 남편이 베를린 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 참에 친구 몇몇이 모여 얘기꽃을 피웠는데, 일본 애니메이션도 주요 얘깃거리였다. 지브리로 대표되는 일본 작품들이 지금의 수준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매년 수백 편의 작품들이 치열하게 경합하기 때…
올해 단풍은 유난히 고왔다. 특히 영암관 서편 언덕배기에 서 있는 당단풍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품이 넉넉한 그 나무가 시월 중순부터 발갛게 물들어가는 모습에 바쁜 발걸음을 붙잡힌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교정에서 이런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보름달이 뜬 초저녁 무렵,…
현대사를 테러와 경찰 활동을 중심으로 관찰하면 크게 9.11 사건 이전과 그 이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를 넘어서기까지 국가의 내적 질서와 인권의 팽팽한 긴장 관계 사이의 무게 중심이 지속적으로 인권의 방향으로 이동했고, 그 즈음 9.11 테러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그 중심축의…
이제 정말 가을이다. 교정을 걷고 있으면 바람 없는 순간에도 여름 내내 무성했던 잎들이 살포시 나선형의 곡선을 그리며 발밑에 떨어진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아니면 독서의 계절? 고독의 계절? 하지만 나에겐 가을은 재즈, 그중에서도 단연코 베이스의 계절이다. 여름엔 시원스런 빗줄기처럼 거칠 것 없…
한문학자로 전문적 연구와 대중적 소통 양 방면에 성가(聲價)를 올리고 있는 안대회 교수의 신간이 나왔다. 한국한문학은 학회가 창립되고 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지 40년이 다 되어간다. 연구 초기부터 조선후기 자료에 대한 발굴 및 연구 편중이 강하였음에도 여전히 발굴을 기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