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4.5℃
  • 맑음강릉 3.0℃
  • 서울 -2.7℃
  • 구름많음대전 -4.4℃
  • 맑음대구 -0.8℃
  • 맑음울산 0.6℃
  • 맑음광주 -1.5℃
  • 맑음부산 1.0℃
  • 구름많음고창 -1.6℃
  • 흐림제주 5.8℃
  • 흐림강화 -1.9℃
  • 구름조금보은 -7.3℃
  • 맑음금산 -6.4℃
  • 맑음강진군 1.7℃
  • 맑음경주시 0.8℃
  • 맑음거제 1.5℃
기상청 제공

[교수님 추천해주세요] 현대의 배우는 투명한 결정(結晶)이다.


‘연극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피터 셰퍼(Peter Shaffer)의 <고곤의 선물, The Gift of the Gorgon>(1992)에 나오는 대사처럼 배우가 사라진 세상은 색을 잃은 물감처럼, 존재하지만 생명이 사라진 세계와 같을 것이다.

연기는 아름다운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성에만 의존하는 사고의 예술을 넘어, 감정과 느낌을 표출과 절제의 양날의 칼로 재단하는 배우는 생각, 몸, 감정, 호흡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인간과 삶의 진실을 무대에서 구현하기 때문이다. 배우는 현실과 몸을 긍정함으로써 현대의 사상가들이 그토록 염원한 분리와 지배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극복하는 일원론적 세계관의 도래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예술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니, 연기는 단순히 예술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배우가 더욱 절실히 필요한 이유는 개인이 주체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이 세계의 구조, 권력, 허상에 대항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삶의 진실을 구현하고자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존재 그 자체가 분할과 우열의 세계가 가하는 억압과 오류,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계급이 생성되기 이전 고대인들은 병이나 재난의 원인을 성(聖) 혹은 완전성에서 분리된 결과라 보았고, 그들에게 구원이란 속(俗)에서 성(聖)으로, 분열에서 전체성을 회복하는 것을 뜻했다고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주장하였다.

진실의 가치를 매도하는 이 시대에 무대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정신과 육체로 삶의 진실을 구현하고자 하는 배우에게 보내는 대중의 박수는 아마도 불평등한 세상에 온 몸으로 부딪혀 이 세상을 둘이 아닌 하나로 회복하고자 하는 배우의 존재적 행위에 대한 격려일 것이다. 그와 같은 배우를 만날 수 있는 극장은 이제 우리 시대에 남은 마지막 성전(聖殿)임에 틀림없다.

마지막 성전에 설 배우는 자신의 연기와 인성을 위협하는 모든 억압의 요인들을 극복하고 다양한 대상에 의해 밀려난 본연의 자리, 극의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중심에 섰다고 해서 오만하게 주변의 세계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세계와 하나로 어우러질 것이다.

그의 연기는 억압과 장애가 제거되어 자연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다. 연기의 불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무대에서 사라지는 날, 배우 자신이 사라지고 배역도 사라져 연극적 상황에서 행동하는 주체, 자연의 흐름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무대 위에는 오직 투명한 ‘연기의 결정’(結晶)만이 남게 된다.

결정. 빛나는 결정. 투명한 자신으로 세계를 비추는 결정. 멀리서 보면 자신을 투과시켜 주위의 세계를 비추지만 가까이 보면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자신의 형(形)을 지녔다. 그러므로 투명한 결정은 나이자 세계인 것이다.

관련기사





[아름다운 문화유산] 대구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대구시 동구 둔산동에 위치한 옻골마을은 자연생태, 사회생태, 인문생태를 완벽하게 갖춘 곳이다. 경주최씨의 종가가 살고 있는 이곳의 마을숲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비보숲이다. 비보는 부족한 곳을 보완하는 신라 말 도선 풍수이자 중국과 다른 우리나라 풍수의 중요한 특징이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비어 있는 남쪽에 느티나무를 심어서 마을의 숲을 만든 것은 밖에서 들어오는 좋지 못한 기운과 홍수를 막기 위해서다. 3백 살의 느티나무가 모여 사는 마을숲은 아주 아름답다. 숲과 더불어 조성한 연못은 홍수를 막는 기능과 더불어 성리학자의 정신을 담고 있다. 성리학자들은 중국 북송시대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따라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은 연꽃을 닮기 연못에 심었다. 마을숲을 지나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는 두 그루의 회화나무는 성리학의 상징나무다. 회화나무는 학자수라 부른다. 중국 주나라 때 삼공이 천자를 만날 때 이 나무 아래에서 기다렸고, 선비의 무덤에 이 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옻골처럼 조선의 성리학자와 관련한 공간에는 거의 예외 없이 회화나무를 만날 수 있다. 회화나무를 지나 아름다운 토석담을 즐기면서 걷다보면 마을의 끝자락에 위치한 백불고택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