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0.2℃
  • 맑음강릉 5.6℃
  • 구름조금서울 3.4℃
  • 구름많음대전 1.2℃
  • 구름많음대구 5.1℃
  • 구름조금울산 7.5℃
  • 구름많음광주 5.9℃
  • 구름많음부산 9.5℃
  • 구름많음고창 1.5℃
  • 흐림제주 8.1℃
  • 맑음강화 3.1℃
  • 맑음보은 -0.7℃
  • 구름조금금산 -0.4℃
  • 구름많음강진군 5.3℃
  • 구름많음경주시 4.8℃
  • 구름많음거제 8.0℃
기상청 제공

[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영화: 판의 미로

URL복사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영화마저 재미없다면 우리는 어디서 값싼 위로를 얻을 것인가? 재미는 이 시대 영화가 갖추어야 한 기본 스펙 중 하나이다.

현실은 괴롭다. 우리에게도, 영화 속 주인공 오필리아에게도. 오필리아는 판타지를 쫓아가며 위로를 얻었고 우리는 그 과정을 보며 위로를 얻는다. 재미와 감동은 쉽게 같이 오지 않는다. 재미를 찾아 현실을 외면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으면 감동이 없는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모순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둘 중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는 괴물 같은 조합을 이루어 낸 작품이 <판의 미로>이다. (이 영화는 정말 괴물 같은 작품이다. 왜냐면 괴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 속에 게릴라들을 찾아 죽이는 파시스트 장교 양아버지, 배다른 동생을 임신한 아픈 엄마, 낯선 시골집과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오필리아. 안 좋은 경제상황 때문에 국제관계는 날이 서 있고, 기성세대는 서로 대립하고, 졸업 후 취업을 위해 그 전쟁터 같은 정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미생>의 주인공 같은 우리. 이 소란스런 상황이 공감이 될수록 영화는 더 재미있을 것이다.

스포를 피하기 위해 이 영화의 다른 미덕 두 가지만 얘기하도록 하자.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캐리한다는 점을 제외한 이 영화의 다른 미덕 중 하나는 이런 완벽한 작품을 만든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의 다른 영화들은 대부분 재미없어서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다른 종류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미덕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가끔 느껴지는 영어 스트레스가 없다. 왜냐면 영어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전쟁은 끝이 난다. 우리의 괴로움도, 오필리아의 괴로움에도 끝이 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 사는 것 같은 소란스런 현실에서도 우리는 옥수수처럼 자랄 수 있다. 대자본으로 밀어 붙이는 할리우드 영화들 속에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작가주의 작품으로 우뚝 솟아있는 이 영화처럼 우리 계명대인들도 자신의 스토리를 옥수수처럼 길러보는 것은 어떤가.

개봉될 때 배급사가 아동용판타지영화로 선전해서 애들이 보다가 울면서 뛰쳐나가게 만든 스토리는 우리나라의 웃기고도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혹시 당신이 그 때 그 아이라면 부디 다시 한 번 보시라. 나는 이런 영화를 또 본 적이 없다.

관련기사





[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살 떨리는 완벽주의로 만들어낸 늙은 부부의 순애보: 영화 ‘아무르’ 2012년 칸 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아무르’는 사랑하는 아내가 갑작스런 질병으로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신파적인 스토리다. 그러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이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 내러티브를 활용한 완벽에 가까운 형식미를 통해서 탁월한 드라마로 완성시켰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내러티브의 탁월함, 그 살 떨리는 완벽주의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하네케 감독은 영화 ‘아무르’의 도입부에서 외출 후 열려 있는 문, 도둑에 대한 잡담, 한밤에 깨어 있는 아내, 건네지지 않는 양념통, 흘러넘치는 커피 물을 통해서 사소한 일상에서 극적인 문제로 향해가는 이야기 전개를 천의무봉의 솜씨로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인다. 그리고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이용해서는 아내의 뇌질환 발병을 일단 부정한 후 다시 제시하는, 이야기가 직선적인 순서로 나아가는 단순한 방식을 배신하는 연출을 통해서 ‘눈 위로 걸어간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며 나아가듯이’ 이야기의 인위성을 가리면서 아내의 뇌 질환이 확인되는 극적인 순간을 스크린 위에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도래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