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 전경미(문예창작학·석사과정) 씨가 안동에서 개최된 ‘제40회 전국육사백일장’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동시에 시인의 꿈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전경미 씨의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제가 이번 백일장에 아이들과 함께 가서, 시를 짓는 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어요. 시간 내에 절반 정도만 쓰고 나머지 절반은 제출하는 곳 앞에서 채운 터라 큰 상은 바라지도 않고 작은 상 하나만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번 백일장은 대회 당일 오후 4시에 수상자 발표를 한다길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식사를 하러 가버렸어요. 스스로에게 화가 난 상태였는데 그때 마침 대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왔어요. 처음 수상 발표 전화가 왔을 때는 믿기지 않아서 제가 썼던 시를 다시 읽어보기도 했어요. 대상을 수상할 정도의 시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웃음) Q. 어떤 작품으로 수상하셨나요? 운문 부문에서 ‘안개’라는 작품으로 수상했어요. 백일장에서 주어진 여러 제목들 가운데 ‘안개’를 선택하여, 안개를 꿈이다 생각하고 시를 썼어요. 제가 예전에 교
지난 11월 9일에 열린 주부산 중국총영사관 주최 ‘대학생 중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우리학교 장화정(중국학·2) 씨가 3등을 차지했다. 많은 학생들은 중국어가 배울 양이 많고 어렵다고 생각해서 공부하기를 망설이는 반면, 장화정 씨는 배울 게 무궁무진한 것이 중국어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장화정 씨를 만나 대회준비 과정부터 중국어의 매력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대학생 중국어 말하기 대회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번 대학생 중국어 말하기 대회는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대회였습니다. ‘감지신중국(感知新中國)’이라는 주제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70주년의 발전 변화와 성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대회였는데, 저는 중국에서 유명한 앱인 ‘위챗’에 대해 발표하였습니다. 위챗은 우리나라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어플인데 모든 결제를 위챗페이와 같은 QR코드로 할 수 있어 사람들이 지갑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회 참가에 의의를 두며 경험 삼아 나간 대회였기에 3등이라는 상을 받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수상이 더욱 영광스럽게 느껴집니다. Q. 대회준비를 어떤 식으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특정한 환경적 조건에서 성장한다. 유복하지만 사랑이 결핍된 가정에서 성장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환경 속에서 세상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도 있고 무엇 하나 여유로울 것 없는 상황에서 세상을 원망할 수도 있다. 여하튼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왔고 서로 다른 조건 속에 서있다. 그럼에도 타인이 정한 잣대에 맞추어 세상을 보거나 자신의 경험만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화 공동체 간의 극단적인 대립은 이처럼 기존의 지식체계 혹은 특수한 경험만을 강조하여 문제를 판단하기 때문인 경우가 허다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듯 반영한다. 아마 이 소설을 읽진 않았더라도 총 12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의 제목이나 ‘난쏘공’이란 말을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전체 내용은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이란 판자촌에 사는 난쟁이 가족의 행복하지 못한 삶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경제 계층과 문화 공동체를 대변하는 젊은 인물들의 생각·경험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각 인물의 층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교차시킨 몽타주 효과
인생에는 ‘터닝 포인트’가 있다. 스승의 말 한마디가 잠재력을 깨우는 빛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극재(克哉) 정점식(1917~2009) 선생(이하 ‘극재’로 약칭)에게도 그런 스승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해방 무렵에 만난 쓰다 세이슈(律田正周, 1907~1955)가 바로 ‘삶을 바꾼 스승’이었다. 쓰다는 일본 문화학원의 교수로 우리나라 유학생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이중섭, 유영국, 송혜수 등이 그의 문하생이었다. 1941년 일본의 억압을 피해 간 하얼빈에서 쓰다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해방이 되고 나서 극재는 쓰다와 3개월간 함께 생활한다. 그때 극재의 스케치북을 몰래본 쓰다는, “극재는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있다.”며, “어쩌면 스페인적인 풍토나 문화적 배경 밑에서 나올 법한 그림”이라는 칭찬을 한다. 그것은 하얼빈의 이국적인 풍경을 그린 드로잉을 보고 한 말이었고, 그 드로잉에는 남들이 주목하지 않은 건물의 낡은 모습이나 흠집 등이 묘사되어 있었다. 쓰다는 극재가 무의식적으로 묘사한 요소들의 미적인 효과를 지적한 것이다. 이로써 극재는 자신의 그림에 나타난 자잘한 요소들을 인식하게 되고, 대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런 지적과 더불어 쓰
‘다시 보는 극재의 예술세계’가 행소박물관 특별전시실(동곡실)에서 이달 5일부터 내년 1월 25일까지 약 2개월 반 동안 열린다. 특별전에는 한국 추상미술계의 거목이자 우리학교 미술대학의 설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정점식 화백의 작품 30여 점과 유품 20여 점 등 모두 5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3시 행소박물관 1층 로비에서 열린 개막식은 신일희 총장의 인사말, 테이프 커팅, 특별전 관람 순으로 진행됐다. 신일희 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극재 정점식 선생님은 우리나라 추상화의 거장이시고, 그의 작품이 아직도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극재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정점식 화백은 1917년 성주에서 출생하여 1930년대 대구 근대 화단의 선배들을 통해 유화를 접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미술계를 경험했다. 이후 태평양 전쟁을 피해 하얼빈으로 갔다가 광복 후 대구로 돌아와서 1964년부터 1983년 은퇴할 때까지 우리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2004 올해의 작가’로 뽑히기도 한 정점식 화백은 왕성한 작품 활동
지난 11월 8일과 9일 양일간 경주 The-K호텔에서 우리학교를 비롯해 경일대, 대구가톨릭대, 대구한의대 등 4개 대학이 참여한 대학 연합 취업캠프가 열렸다. 우리학교 대학일자리센터가 주관한 이번 취업캠프는 각 대학별로 25명의 학생들이 참가하여 취업교육을 받고 실질적 직무 이해와 취업준비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행사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사전에 조사하고 캠프일정에 반영하여 취업준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취업마인드 고취를 위한 특강’, ‘직군별 입사지원서 작성 특강’, ‘직무역량별 입사지원서 작성 컨설팅’, ‘직무·기업체별 전문가 특강 및 모의면접’ 등의 프로그램들이 진행됐다. 이성용(경찰행정학·교수) 대학일자리센터장은 “지역의 4개 대학이 협력해 취업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상호 협력하는 좋은 자리가 됐다.”며 “학생들에게는 취업정보 교환의 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캠프에 참가한 진창우(독일어문학·3) 씨는 “최근 채용트렌드를 알 수 있었고 현직 인사담당자를 통해 접한 정보들이 도움이 되었다.”며 “타 대학 학생들과도 정보공유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대학 연합 취업캠프는 2017년 처음 개최되었으며
지난 9일, 경상북도청과 하회마을 등지에서 우리학교 외국인 교수 60여 명을 포함한 교직원 6백여 명이 참가한 ‘외국인 교수와 함께하는 교직원 등행대회’가 열렸다. 이번 등행 행사는 경상북도청 천년숲과 인근 검무산, 하회마을 등에서 진행됐으며, 우리학교 구성원 간 화합 및 지역사랑 실천을 위해 진행되었다. 등행대회에 참가한 60여 명의 외국인 교수는 전체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을 대표하여 캐리커쳐, 73개국 출신국가별 국기, 각국의 언어로 국가명을 직접 적어 만든 액자 등을 이철우 경상북도지사에게 전하기도 했다. 신일희 총장은 “경상북도는 안동 하회마을, 경주 등 한국의 문화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런 문화유산을 활용해 경상북도는 문화 확산 부분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되며, 우리학교도 이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에르뎀(국제관계학) 교수는 “우리학교 구성원으로 외국인 교수와 교직원들이 함께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며 “한국에서 생활한지 5년 정도 지났는데, 이제는 이곳이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대구·경북의 일원인만큼 지역사랑을 실천하는데 한 몫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장애인 학교를 누가 좋아하겠나?”, “집값 떨어진다.” 지난 9월 29일 충청북도교육청의 특수학교 설립 추진 중 일부 주민들이 낸 반발의 목소리다. 이러한 이기주의적 모습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7년 9월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간담회에서도 장애 아동 부모들이 지역민들의 거센 항의에 무릎을 꿇고 호소한 일이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특수학교는 전국 1백77곳으로 매우 부족한데, 그마저도 전체 장애 아동 8만 명 중 고작 30%만을 수용하는 수준이라 장애 아동 부모로서 특수학교 유치가 절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수학교는 일반학교에서 진행할 수 없는 장애아동들의 직업 교육과 사회화 교육으로 홀로서기를 돕는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실제로 2018년 김해 ‘제1회 희망나눔 페스티벌’에서 특수교육을 통해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장애 학생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학교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렇듯 성공사례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그 필요성과 커리큘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이러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이기주의가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특수학교를 꺼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 캐나다, 프랑스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진국들은 장애인들
단풍잎에 물이 다 들지도 않았는데 입동이 찾아왔다. 작년에도 이렇게 빨리 계절이 바뀌었나 생각하며 떠올려보니 알 턱이 없었다. 1년 전, 나는 수험 공부 때문에 교실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친구들은 감기에 걸릴까 두려워 창문을 꽁꽁 닫았고 햇빛이 공부에 방해된다며 커튼을 쳤다. 열 명도 되지 않는 학생들이 스스로 들어간 밀실에서 하루를 견뎠다. 4시가 지나면 전문대에 합격한 학생들이 먼저 집으로 갔다. 우리는 부러워하며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우리 반에는 유난히 정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반은 간호학과에 가고 싶어 했고, 나머지도 각자의 길이 있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성격도 관심사도 달랐지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저녁에는 다 같이 책상을 붙여 밥을 먹었다. 빨간 기름이 고인 불고기가 나온 날에는 학교 앞 편의점으로 갔다. 수능시험 전날에도 고사장 앞에서 종이로 포장된 초콜릿을 까먹었다.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었다. 그 후로부터 1년이 지났다. 나는 내가 가고 싶어 했던 학교, 학과에 입학했다. 함께 저녁과 토요일을 보냈던 친구 중에서 몇몇은 원하는 학교에 갔고, 아닌 친구도 있고, 재수를 준비하는 친구도 있다. 가끔 SNS에 올라오는 파푸아뉴
할 말이 있어서 너를 불렀던 밤이었다. 막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려던 찰나였다. 너는 짙은 갈색 재킷에 물 빠진 데님바지. 검은색 벨트. 왼손에 Emporioarmani 손목시계. 고르지 못한 숨. 제법 긴 의자. 내 옆에 네가 앉았다. 고개를 돌리고 속삭이던 내 입가에 너는 눈썹을 추켜세우고 가까이 귀를 댔다. 가로등 밑이었다. 자주 벌겋게 달아오르던 너의 귓불. 어두워도 보이던 너의 찰나들. 나는 내게서 네가 빠져나갔던 시간을 되뇌었다. 하려던 말들이 도망치고 나서야 당신이 왔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앞니는 갉아먹는데 익숙했고 봄은 사라지는데 익숙했다. 나는 나부끼는 이파리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위에 당신을 눕혔다. 말들은 공중에서 도망쳤고 길을 헤맸다. 애타게 너를 찾았던 그 시절 나처럼. 당신의 일렁이는 동공 위에는 한 겹의 계절이 남아 있었다. 다섯 번째 계절이었다. 속눈썹을 잠그고 했던 간곡한 부탁들. 느린 말투. 옅은 보조개. 이름 모를 향수. 이 센티미터 더 가까이 그 계절이 왔다. 겨울의 초입에서 차갑게 언 내 손은 생의 반대편으로 내던지고 싶었다. 얼굴이 없는 긴 목들이 왼쪽 손목에서 생에 가장 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