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 박사학위과정에 들어오려는 학생들을 면접할 때 겪은 일이다.
외국 선진국에는 음악학이 대학과 학계에 그 위치가 공고하고 세부영역으로 나뉘어 전문성있는 결과물들을 축적하고 있지만, 실기 중심의 한국에는 그 주춧돌도 단단히 놓이지 못했다. 그런데도 대학에 음악학 박사학위과정이 많이 생겼고, 확립된 교육목표나 교육과정 없이 부실하게 운영된다.
결국 입학하면 학생 자신이 방향모색을 하고 개별 훈련프로그램을 구상하여 추진해야 좋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커지므로, 면접때 학생에게 대학의 그러한 미비한 환경을 잘 알고 있는지, 자신이 연구할 분야를 생각해 보았는지, 과정을 끝내면서 지향할 목표는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면접자 대부분이 음악학에 문외한이어서 학부의 실기교육에서 미흡했던 기술을 더 연마하려 한다든지 서양음악사를 좀 더 깊이 배우려 한다고 말하는데, 한 학생이 나는 ‘문화 쪽’의 연구를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라 하자 그 때 나온 몇 문장 안 되는 표현에서 나는 ‘문화 쪽’ 대신에 ‘문화 파트’라는 단어를 다섯 번이나 듣고 말았다.
문화란 실기 중심의 교육을 받은 음악인들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고 하면서 문화를 연구할 당위성이나 필요성은 많이 강조되는데, 실상 그게 뭔지 잘 다가오지 않는다. 문화에 연결된 단어들로 문화수준, 문화향수 등의 포괄적인 개념들을 넘어서서 문화자원, 문화기반, 문화예술교육 등 세부적으로 접근하는 범주들이 주변에 나타났다. 이젠 문화에 경영, 산업, 상품, 시장 등 문화와는 상극으로 느꼈던 단어들까지 붙여 쓴다. 그리고 심지어는 전략이 등장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권력이라는 단어까지도 등장했다.
문화에 이런 낯선 단어들이 붙기 시작하면서 생긴 새로운 활동영역에 그 분야에 종사하는 인력의 교육체제와 인력양성의 문제가 당연히 대두될 것이지만, 소위 문화전문인을 육성하는 기관 내부에 들어앉은 우리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새롭고 활기차고 신명나는 세계를 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몇 십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교육목표와 교과과정과 교수진구성의 정체된 대학에 있기 때문일까. 그런데도 대구시립종합예술원이 서울에서(?) 심각하게 구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또 대구문화재단의 창립이라는 새로운 사건도 곧 터질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