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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문학이 ‘대세’라고?

요즘 시민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고 지원에 의한 것들도 있고, 지자체나 기업체에서 마련하는 것들도 있으며, 그러한 프로그램을 원하는 수요층도 유소년에서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다. TV나 라디오를 통해서도 종종 저명 강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팟캐스트나 유튜브 같은 매체들은 언제든지 듣고 싶은 강의를 불러내어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인문학이 대세다.”라는 말까지 들린다. 인문학의 대표 학문인 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러한 말은 당연히 듣기 좋을 것이고, 공장식으로 직능인들을 찍어내던 지난날의 방식을 반성하고 창의성과 도덕성을 갖춘 지성인을 원하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고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상정일 테다. 하지만, 저 말을 듣는 인문학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오히려 걱정, 절망, 좌절 따위라는 것이 불편하지만 더 객관적인 사실이다. 이 기묘한 역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첫 번째로는 인문학 시장 성장의 모양새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이기적이고 즉물적인 욕구 덩어리로 영락하지 않고자 인문학을 통해 스스로를 경계하고 조탁하려는 시민 대중의 수요는 물론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간절한 수요는 간교한 공급의 표적이 되기 쉽다. 시민들의 욕구는 순수하지만 동시에 순진할 수 있으며, 이 순진성은 지적 악화(惡貨)들에 대한 저항력과 면역력의 결여를 또한 의미한다. 게다가 그레샴의 법칙대로 그 악화들 때문에 훌륭한 양화(良貨)들이 종종 구축(驅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악화의 생산과 유통 주체들은 거대 자본에 재빠르게 편승해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권력화와 우상화에 성공한 강의꾼들이다. 인문학도 엄연히 학이고, 따라서 그것은 어떤 주장이나 신조를 지적 정당화를 통해 공인받아야 하는 매우 까다로운 영역이다. 그런데 저들은 나긋하거나 통쾌한 덕담을 팔아 순진한 수요층의 감성을 능수능란하게 위로하거나 자극하여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두 번째 요인이다. 왜곡된 시장 구조는 그나마 인문학의 외연을 물리적으로 확장한다는 최소한의 순기능은 발휘한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 문제는 정작 그 시장에 재화를 생산하여 공급할 공장, 즉 대학에서 인문학은 ‘대세’이기는커녕 최악의 위기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 당장 써먹을 직능을 배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학 전공자를 무용한 유휴인력으로 보는 사회의 태도까지 탓할 수는 없다. 사회는 어차피 속된 곳이니 말이다. 문제는 어떤 가치나 이념을 표방하는 대학들이 오히려 더 앞장서 인문학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머릿수가 좀 모자란다고, 재정에 손해를 끼친다는 등의 이유로 많은 대학에서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문을 닫았고 또 닫을 모양이다. 물리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고들 한다.

 

그러나 대학에서 인문학의 소멸은 건물로 치면 기둥이, 사람으로 치면 영혼이 없어지는 것이다. 약간의 금전적 손해가 있더라도 인문학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서 보호해야 한다. 대학이 대학답기 위해, 그리고 인문학이 ‘대세’라는 사회의 수요에 화답하는 양화를 꾸준히 공급하기 위해, 대학은 그 계량경제학적 지표의 등락과는 무관하게 인문학을 놓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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