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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9호 사설] 무례한 현대사회에 주는 공자의 충고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실게요”, “만원이십니다” 등 과도하게 공손한 표현을 자주 듣게 된다. 이처럼 국어의 잘못된 표현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잘못 사용하는 높임말임에도 불구하고 과장된 존칭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아닐까?

『논어』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공손하되 예(禮)가 없으면 수고롭고, 삼가되 예가 없으면 두렵고, 용맹스럽되 예가 없으면 혼란하고, 강직하되 예가 없으면 너무 급하다. 군자가 친척에게 후하게 하면 백성들이 인(仁)을 일으키고,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의 인심이 각박해지지 않는다.”

공자는 공손하고, 삼가며, 용맹스럽고, 강직한 삶의 덕목은 예를 실현함으로써 병통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공손하고 삼가며 용맹스럽고 강직한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공자가 더욱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공손하되 예에 맞고, 삼가되 예를 잊어서는 안되며, 용맹스럽되 예에 따라 절도를 지키고, 강직하되 예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예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공손하고 삼가며 용맹스럽고 강직한 삶을 살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예를 잃어버린 채 겉모습으로만 공손한 것을 공자는 노(勞)라고 했다. ‘노’란 고달프고 애쓰며 수고로운 것에 불과하다. 예가 없이 삼가는 삶은 삶을 두려워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일을 과감히 할 수 있는 용맹스러움에 예가 빠진다면 혼란을 야기하는 주범이 될 수 있다. 마음이 꼿꼿하고 굳어서 숨김이 없는 강직한 사람이 예를 잃으면 지나친 데로 빠질 수 있다.

공자는 예를 상실한 공손, 삼가, 용맹, 강직은 오히려 병폐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공자는 사람들에게 겉으로 공손한 척해서는 안 되고, 삶에 너무 조심하여 정성을 잃어서는 안 되며, 용기를 자랑하여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강직함에 치우쳐 인정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신과 상대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없는 공손, 삼가, 용맹, 강직함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이 구절에서 공자는 삶의 덕목을 실천하는 군자가 사랑을 베풀고 좋은 관계를 맺는 대상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까이 있는 친척과 친구라는 점을 강조한다. 멀리 있는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늘 가까이 있어서 삶의 면면을 깊이 알고 있는 친척에게 후하게 베푸는 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가까운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가깝기 때문에 예를 잃기 쉽고 서로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커져서 실망하기도 십상이다. 그래서 마음 상하기 쉽고 미워하기 쉬운 친구를 버리지 않는 군자의 삶을 본받아, 백성들은 훈훈한 인심을 잃지 않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 주인공이 겪는 인생 역경에는 쉽게 공감하여 아파하고 눈물 흘리면서도, 매일 만나는 가족의 삶에 펼쳐진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는 잘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친구의 소중함을 알고는 있지만 이해타산에 급급하지 않은가? 교정에서 만나는 교수와 학생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기는 왜 힘들까? 공자는 예를 잃어버려서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만약 진정으로 공손, 삼가, 용맹, 강직이 피어나는 삶을 원한다면, 방법은 있다. 바로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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