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SNS에서는 얼굴을 합성하는 어플이 인기를 얻고 있다. 흔히 ‘딥페이크(deep fake)’로 불리는 이 기술은 딥러닝과 속임수를 뜻하는 페이크의 합성어로 영상 속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얼굴로 합성해주는 인공지능을 뜻한다. 딥페이크를 활용할 경우 일반적인 CG로 100일이 걸리는 작업을 단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딥페이크를 이용해 자신의 친구 혹은 유명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여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혁신 기술로 각광받던 딥페이크는 어느덧 가짜 뉴스와 보이스피싱, 성착취물 제작 등 범죄의 도구로 전락했다. 네덜란드 보안 업체(Deeptrace)가 2019년에 만든 보고서에 따르면, 딥페이크 사용 목적의 96%가 포르노그래피인 것으로 나타났고, 교육 및 기타목적은 고작 4%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딥페이크는 신종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 이 기술로 제작되는 포르노의 가장 큰 문제점은 타인의 얼굴을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어느 SNS에 ‘합성’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이른바 ‘지인 합성’으로 불리는 딥페이크를 만들어주는 계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SNS에 게시한 사진이 도용되어,
막대한 이윤을 독점하는 특권층 ‘게임의 구조’는 누가 만드는가 “저는 너무나 치밀하게 설계된 오징어게임 속 ‘말’일 뿐입니다.” 화천대유 1호 사원이자 곽상도 의원의 아들 곽모 씨가 한 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 속에 성남시 대장지구 개발사업 시행사 ‘화천대유’에 빗댄 표현과 패러디가 넘쳐나고 있다.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수령한 이가 장기판 속 한낱 말이었다는데 공감할 수 있을까. ‘나는 왜 그 말이 되지 못하느냐’는 조소가 나온다. 자본금 50억 원으로 배당금 5천903억 원을 가져간 이들을 살펴보자. 화천대유 대주주는 전 머니투데이 기자 김만배였다. 고문으로 이름 올리고 자문료를 받은 법조인 명단은 화려하다.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검, 김수남 전 검찰총장, 원유철 전 국회의원이 있다. SK증권을 경유해 막대한 배당금을 받아 간 이들의 직업은 회계사, 변호사, 언론인 등이었다. 수사를 통해 이들이 막대한 배당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왜 이런 사업구조를 만들었는지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뇌물, 투자 정보 사전유출, 업무상 배임 등에 대해서는 따져봐야겠지만, 이들이 막대한 배당금을 받은 것만으로는
대학생 A씨는 눈을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수업 시작 1분 전 겨우 비대면 수업에 접속한 A씨는 그제야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단장하기 시작한다. 한편 자취방이 답답했던 B씨는 집 근처 카페에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대학가 풍경은 어느덧 학생들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불편도 뒤따른다. C씨는 동영상 수업을 듣기 위해 교수학습지원시스템에 접속했지만 로그인이 안 되는 오류로 수업을 듣지 못했다. 또 D씨는 교수가 몇 년 전 촬영된 강의 영상을 재활용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처럼 많은 학생이 강의의 질적 하락을 이유로 비대면 수업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전산 환경이 온전치 못했을 옛날엔 어땠을까. ‘96년 9월 23일자 <계명대신문>에 실린 ‘전산교육원, 학생 편의와 강의 질 개선 위한 노력 전개해야’라는 기사에서 캠퍼스 전산화 작업이 진행되던 당시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기사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편의와 강의 질 개선을 위한 전산화 개발과 실습실 증설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에서 실시했던 ‘96년 대학 정보화
외딴 섬에서 표류한 선원 이야기로 유명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 로빈슨은 29년을 섬에서 홀로 지냈다. 필자가 소개할 영화 ‘김씨표류기’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식인종만 간간히 방문하는 그런 외딴섬에서의 거창한 표류담은 아니다. 대신 대도시 서울 안에서 겪는 새로운 방식의 표류담이다. ‘김씨표류기’에는 2명의 표류자가 등장한다. 표류자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도시 한가운데 손바닥만 한 무인도에서, 그리고 한강뷰가 보이는 아파트 방안에서 표류하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구조조정, 빚, 재취업 실패로 한강에 투신한 남자 김씨가 실수로 한강 다리 아래 무인도 밤섬에 표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남자 김씨는 원래의 계획대로 죽으려고 시도하기도 하고, 반대로 살기 위해 도움을 청하기도 하다가 서서히 섬 생활에 익숙해진다. 처음 모래사장에 ‘HELP’를 썼던 그는 섬의 생존방식을 터득하고 버려진 오리배에 터전을 잡고 난 후 ‘HELLO’를 쓴다. 밤섬은 도시생활의 경쟁에서 떠밀린 그가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땅이 된 것이다. 남자 김씨의 표류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한강변 아파트에 사는 여자 김씨이다. 함께 사는 부모와
세대를 아우르는 말이 참 많다. 386세대, 신세대, 오렌지족, X세대, Y세대, Z세대 그리고 이젠 MZ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강의기술을 익히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젠 MZ세대의 사고를 알아야만 학생과 소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소위, 노땅 아니면 꼰대 취급을 당한다. 그런데 다시금 MZ세대를 생각해본다. 인간의 역사에서 항상 젊은이는 기성세대와 갈등을 빚었다. 진위를 떠나 그리스 신전에 당시 젊은이의 행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낙서가 있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19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개최된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우리 선수단은 단순한 경기 그 자체만이 아니라 경기에 임하는 태도를 통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MZ세대가 경기에 임하는 태도는 더 그랬다. 소위 ‘라떼’를 외치는 기성세대 시대에는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면 대통령 각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시됐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가 마치 전쟁에서 패한 병사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눈물과 함께 전하는 모습이
지난 7월 2일 우리나라가 이른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지위 변경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외교부는 이번 지위 변경을 “세계 10위 경제 규모와 P4G 정상회의 개최, G7 정상회의 참석 등 높아진 우리나라의 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특별공로자’ 약 380여 명을 우리나라로 데려오는 일명 미라클 작전으로 또다시 난민 수용 문제를 놓고 찬반양론이 불거졌다. 특별공로자는 우리 정부 활동을 도왔던 직원과 그 가족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명칭이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특별한 공을 세우지 못하면 한국행을 택할 수 없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그나마 난민들이 가까스로 한국 땅을 밟아도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1992년 UN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및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에 가입한 이후 2013년에는 ‘난민법’을 시행하여 난민 신청을 받고 있다.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올해 3월까지의 누적 난민 신청자 수는 총 7만1천
권력에 빠져 부정을 일삼는 한때의 청춘들 청년층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 생각해보길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서울대를 상징하는 문구로 알려진, 정희성 시인이 재학 시절 쓴 시의 한 구절이다. 관악 캠퍼스 기공식에 맞춰 썼다는 이 시에 대해 정희성 시인은 “학생들이 이 시에서 자기가 몸담은 대학에 대한 긍지를 느끼는 것은 좋지만 자만심에 빠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대학신문’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문구처럼 긍지를 갖고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며 불의에 저항하는 청년들이 많았을 터이다. 그러나 이 청년들도 권력의 중심부인 정·관계에 진출하고 나면 자만심에 빠진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24일 부산대학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인 조민 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취소 예정처분 결정을 했다. 결정 이후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SNS에 “아비로서 고통스럽습니다. 최종결정이 내려지기 전 예정된 청문절차에서 충실히 소명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청문절차는 조 전 장관이 아니라 서른을 넘긴 조민 씨가 진행해야 할 일이다. 또, 입학취소를 결정한 이유는 제출 서류의 기재사항이 사실과 다른 경우 불합격 처리를 한다는 입학요강 때문이다
2020년 8월 무더운 여름날, 나는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를 시작했다. 때마침 직장을 찾고 있었고 처음에는 그저 높은 일당과 집과 가깝다는 이유로 만만하게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자리가 8·15 광화문 집회부터 2, 3차 대유행, 추석, 크리스마스, 새해, 설날을 거쳐 4차 대유행의 중심인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을 시작한 처음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나를 찾아왔었다. 혹시 내가 감염될까, 민원인들의 기침과 재채기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여름에 바람이 안 통하는 방호복을 입고 있으면 속옷까지 젖을 정도로 땀이 나고 아득해질 정도로 숨이 찬다. 장갑을 벗을 때면 땀이 뚝뚝 떨어졌고, 겨울에는 손과 발이 얼어서 구부려지지도 않을 정도로 가벼운 동상을 달고 살았다. 당연히 마스크 속 콧물이 흘러도 닦을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더우나 추우나 항상 밖에서 일을 했다. 그저 서러웠다. 더군다나 터무니없는 항의들로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악성 민원인 응대라는 ‘감정 노동’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주변 지인들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때면 뿌듯하기도 했다. 또한 함께 일하는 직원분
학생 복지는 중요하다. ‘대학은 공부를 하는 곳인데 복지가 뭐가 중요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지와 공부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많은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 넓고 쾌적한 강의실, 높은 사양의 컴퓨터가 배치된 PC실, 저렴하고 질 좋은 음식을 판매하는 학생식당처럼 학생을 위한 편의시설이 고루 갖춰질수록 학습 능률도 덩달아 오르기 마련이다. ‘계명정신과 봉사’라는 교양필수 과목에서 언급했듯, 우리학교가 캠퍼스 미관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학생복지시설은 학생들의 요구와 시대적 변화에 힘입어 양적·질적인 개선을 거듭해왔다. 2000년대 초에는 신바우어관이 완공됐고, 2010년대 들어서는 백은관 맞은편에 아람관이 신축됐다. 둘 다 학생식당과 동아리실 등이 위치한 학생복지시설이다. 동산도서관 또한 수차례의 개보수와 공간 조정 끝에 VR 체험존과 현대화된 열람실 등을 갖추며 ‘스마트 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그렇다면 옛날엔 어땠을까. ‘98년 9월 14일자 <계명대신문>에 실린 ‘학교 복지시설 이용에 불편 많아’라는 기사는 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복지시설의 미비를 지적하고 있다. 기사는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느끼
오늘 추천드릴 책은 SF소설가 김초엽과 인권 변호사 김원영이 쓴 에세이집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 출판사, 2021)입니다. 책을 펴자마자 눈길을 끄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느 날 어떤 자리에 초대 받은 김초엽은 자신을 ‘청각 장애를 극복’한 사람으로 소개하는 사회자를 만납니다. 김초엽은 포스텍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연구자이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을 발표한 SF작가이고 또한 후천적 청각 장애인입니다. 실제로도 보청기를 착용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누군가를 이렇게 소개하는 것은 과연 적절한 것일까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안경을 착용하면서 ‘시각 장애를 극복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유독 특정한 가시적 장애에 주목하는 문화나 태도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장애인이 경험하는 불편이나 사회적 편견을 꼬집기보다는 오히려 장애인을 미래 사회적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그려냅니다. 장애인이야말로 갑작스런 재난이나 사고로 인해 첨단기술이나 의술을 가장 먼저 접하고, 휠체어, 안내견, 보청기, 의족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하이브리드 존재’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잡종적인 정체성을 가진 하나의 사이보그로서의 장애인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민주주의의 정체 또는 퇴행이라고 볼 수 있는 위기 가능성의 징후가 많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도, 정체성이 없는 정당정치 등은 한국 정치의 낮은 제도화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 토대를 위한 사회적 기반의 붕괴와 민주주의 절차의 핵심인 정당체제의 역할이 실종된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국민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한국정치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를 제시하기 위해 다수결주의와 합의주의 정치모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다수결주의는 말 그대로 다수의 뜻이 지배하는 정치원리를 의미한다. 이 원리는 다수를 점한 세력에게 정치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며, 일사분란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수결주의는 다수를 점하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에 야당은 다음 선거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침묵해야 한다. 다수결주의는 이러한 면에서 매우 배타적이고 경쟁적이고 적대적이다. 다수결주의가 작동되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합의주의는 다수가 지배하는 정치원리라는 면에서는 다수결주의와 다를 바 없으나, 다수에 의한 지배를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