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주식을 얼마나 사야 할까. 코로나19 시국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 쿠팡이기에 많은 이들이 상장을 기대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인력을 고용한 건실한 기업이기도 하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상장 신청서를 내던 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한국 유니콘 기업의 쾌거’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경북 칠곡 쿠팡 대구물류센터에서 1년 넘게 야간 알바를 해 온 고 장덕준(27) 씨는 숨진 지 4개월이 지나서야 쿠팡 뉴스룸을 통해 공식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이 장 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장 씨는 물류센터에서 지원 업무를 하는 이른바 ‘워터 스파이더’였다. 집품부터 포장-푸시-레일-박스-리빈-리배치로 이어지는 업무가 중단 없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수동 자키를 이용해 바구니 정리, 빈 카트 정리, 포장 부자재 보충, 층간 부자재 운반 등을 했다. 이 중 하나라도 실수하면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장 씨의 사망 전 일주일 동안 평균 근무시간은 62시간 10분, 사망 12주 전에는 58시간 38분이다. 그는 하루에 470kg 이상 물건을 운반했다. 지난
뉴스는 신선한 놀라움! 신문기자로 20여 년 일하면서 이 뉴스 격언은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칫 단순하게 되풀이되기 쉬운 일상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뉴스가 하기 때문이다. 온갖 대중매체(매스미디어)를 통해 뉴스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신선한 놀라움은 뉴스가 현실과 대결하는 에너지이다. 나는 뉴스를 <일상의 삶을 새롭게 만드는 태도와 노력>으로 정의한다. 국어사전은 일상(日常)을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고 풀이한다. 일상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뉴스마인드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풀이는 일상의 소중함을 맥빠지게 만든다. 일(日)은 태양의 움직임이다. 상(常)은 한결같이 떳떳함이다. 일상은 태양의 햇빛과 잠시도 떨어질 수 없다. 태양이 날마다 지구에 떳떳함을 준다면 우리는 일상의 새로움으로 태양을 마주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태양과 맺는 이 같은 관계를 ‘일상의 새로움을 위한 뉴스마인드’라고 규정한다. 태양의 움직임이 한결같이 떳떳하다면 나의 삶도 한결같이 떳떳해야 비로소 진정한 일상이 된다고 할 것이다. 일상의 단순 반복은 뉴스의 적(敵)이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태양을 마주하면서 현실과 대결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넘어서는(비욘드, bey
나의 스물한 살. 수험생 시절 그토록 고대했던 새내기 캠퍼스 생활을 뒤로하고 온 세상에 만연한 전염병과 싸우며 얼떨결에 맞은 나이. 나를 비롯한 올해의 스물한 살들은 교실의 책걸상에서만 벗어났을 뿐 여전히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서 주춤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어른이 되어가야 할 스무 살을 집에서 흘려보냈으니 우리는 일 년 유예됐을 뿐 여전히 ‘스무 살’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해 춘삼월,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무 경력도 없는 갓 스무 살이라 여러 번의 낙방은 각오했건만 운 좋게 처음으로 면접을 본 곳에서 나를 고용해주었다. 비록 아르바이트이지만 무언가 혼자 책임져야 할 위치가 되었다는 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붕 뜨게 했고 그만큼 부담감도 막중했다. 처음에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막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고등학교 동창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힘듦을 격려하고 위로하다 보니 어느새 경력이 일 년 가까이 쌓인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최근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친구들도 여럿 있다. 내 11년지기 친구는 일주일 전 음식점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하필 일을 배우러 간 첫 날에
올 2월 국내에서 시작된 코로나19 감염증의 유행으로 인해 1학기에 임시방편으로 시작된 대학의 원격수업이 결국 2학기까지 이어져 곧 종강을 앞두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들이 초연결사회의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이미 도래하였으나 미처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던 대학교육이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인해 온라인,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1학기 초기 원격수업의 기술적 시행착오가 많이 줄었고, 교수와 학생 모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수업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가면서 원격수업의 장점과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원격수업 간의 질적 편차와 학생들의 학습(환경)격차, 소통 부족의 문제, 원격수업 인프라의 부족 문제 등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와 같은 유사한 팬데믹 쇼크 상황이 재발될 가능성이 있음을 예측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언택트, 비대면 생활양식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될 것이다. 이미 학생들은 소위 인강세대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데 익숙하며, 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온라인으
‘대학언론의 위기’라는 말로 대학언론을 진단하는 건 부정확하다. 위기는 위험한 시기나 고비를 뜻하는데 대학언론은 그런 단계를 논할 시기를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대학언론 위기론은 대학가에서조차 족히 20년은 넘게 다뤄지고 있는 진부한 주제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대학언론의 역할을 다시 세우기 위한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뾰족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대학언론인을 하염없이 움츠러들게 만든다. 대학언론 위기론은 이미 위기론이 아닌 현실이다. 수습기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는 기자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가장 큰 고민거리다. 매년 줄어드는 인원을 유지하는 것마저 버거웠음은 물론이다. ‘이 이상의 후퇴는 없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펜을 붙잡고 악착같이 버텨야 했다. 그러나 답보 상태의 대학언론에서는 그러한 노력들조차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학언론이 독자들로부터 멀어진 탓이다. 미디어 환경은 지난 수년간 천지개벽 수준으로 변화했다. 대학 밖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구축하고 나섰다. 하지만 대학언론은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변화를 주도하지 못해 기자가 줄어들었고, 독자를 잃었으며, 이제는 매체의
90년대생 태반은 ‘호황’보다 ‘불황’이라는 말이 더욱 익숙하다. 80년대의 3저호황 시기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의 괄목할 성장률을 기록한 우리나라는 IMF 금융위기 사태를 기점으로 ‘경제 우등생’ 한국의 신화를 내려놓게 됐다. 바야흐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시대가 도래했고, 청년실업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간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은 5.0%에서 5.7%로 0.7포인트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고, 통계청은 지난달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을 8.3%로 발표했다. 그런데 세간에서 흔히 경제호황기로 인식되는 80년대에도 대졸자 취업난은 여전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89년 11월 28일자 〈계명대신문〉의 ‘취업가능성 희박하다’ 기사는 “매우 치열한 ‘취업전쟁’”을 우려하는 시선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기사는 90년 초 졸업예정자 16만 명과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이른바 ‘취업재수생’의 숫자가 10만 명에 달해 취업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더욱이 지방대 학생은 과거에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현상 속에서 “대학졸업 후의 곧바로 취업은 ‘횡재’, ‘행운’”으로 불
멀어져 가는 내 집 마련, 주거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고민해야 서울에 올라와 산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 내 집이 없다. 첫 문장을 써놓고 보니 그동안 뭐했나 싶기도 한데, 처음 서울역에 내렸을 때 수많은 건물들을 보며 생경했던 기억부터 난다. 그 건물들을 보며 ‘서울 하늘 아래 왜 내 집 하나 없지’ 하고 읊조렸는데 그 후로 오래 흐를지 몰랐다. 대학생 때는 하숙비가 높았고, 취직 뒤에도 월세가 높았다. 아무 궁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30대 초반에는 가진 돈이 없었고, 그 뒤로는 하늘 위로 날아가는 집값을 쳐다보다 쫓아갈 타이밍을 놓쳤다. 아마 지방에서 서울로 향한 청년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지 않을까. 청년주택은 그래서 중요한 정부 정책 가운데 하나다. 2030세대가 주거 걱정 없이 미래 자립 기반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일자리가 많은 수도권으로 많은 청년들이 몰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월급을 받더라도 많은 비용을 월세로 지불해야해 돈을 모아 전세로 갈아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국토교통부가 2018년 발표한 1인 가구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혼자 사는 20대의 66.5%, 30대의 49.8%가 월세로 사는 형편이다. 최
선풍기는 선플이 풍기는 향기를 말한다. 선플은 악플에 비해 생산성과 생산 속도가 떨어진다. 선플의 파급력과 영향력도 악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둘 다 익명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그럴까? 그것은 선플과 악플이 선과 악을 표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세상이라는 지붕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 하나는 선이라는 기둥이고 다른 하나는 악이라는 기둥이다. 두 개의 기둥이 같은 높이와 굵기로 함께 버텨야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제대로 돌아간다. 둘 중에 한 개를 뽑아버리면 세상은 무너진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선만 존재하거나 악만 판치는 법이 없다. 같은 이치로 인간의 내면에는 두 개의 얼굴이 도사리고 있다. 하나는 선한 얼굴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악한 얼굴을 내민다. 두 개의 얼굴, 즉 선과 악이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이 곧 인생이고, 평생 인간은 선으로 악을 제압하기 위해 애를 쓰면서 살아간다. 이런 맥락에서 선과 악의 공존은 불가피하다. 불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선풍기의 스위치를 올려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이 지점에서 선풍기를 회전해야 하는 당위가 생긴다. 악플은 자동으로 생성되고 삽시간에 눈덩이가 된
기록은 문자가 없던 시대에 ‘무언가’(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표현하고자 했던 선사인들의 욕망에서부터 출발하여 다양한 형태의 매체로 발전하였다. 이를테면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중국의 갑골문 등이 있고 현재에 와서는 수기뿐만 아니라 전자 형태의 기록이 널리 이용되는 추세다. 만약 기록이 없었다면 역사 또한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가 남겨둔 기록으로 우리는 과거의 일을 연구하고, 미래를 구상한다. 그러나 오늘 나는 기록이 인류가 아닌 나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이실직고하자면 나는 일기 쓰기를 귀찮아하는 초등학생 중 하나였다. 방학 숙제로 나온 그림일기는 개학을 하루 앞두고 몰아 쓰기 일쑤였고, 일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곧잘 불평하곤 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이 그랬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기록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고, 대학생이 된 후로는 줄곧 일기를 써왔다. 처음엔 단지 특정 사건, 중요한 약속, 기념일 등을 잊지 않기 위해 썼지만, 시간이 차츰 흐르고 어느새 나는 일기를 통해 하루를 복기함은 물론 ‘나’라는 존재와 친해지게 되었다. 나는 일기, 나아가 기록을 명
‘부캐’라는 말을 결혼식에서 신부가 드는 작은 꽃다발을 지칭하는 부케(bouquet)로 혼동했다면 트렌드에 둔감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 ‘부캐’는 요즘 방송가에서 소위 ‘뜨는’ 신조어로 부(附)캐릭터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캐릭터를 본(本)캐릭터라 부른다면, 부캐릭터는 원래 사용하던 것이 아닌 다른 부차적 캐릭터를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주로 하는 일인 본업과 가끔씩 하는 부업 정도로 ‘본캐’와 ‘부캐’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금의 코로나19 시대 방송계에서는 본업보다 부업이 더 각광받는다. 먼저 ‘부캐’하면 이 용어를 유행시킨 개그맨 유재석을 빼놓을 수 없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는 개그맨 유재석이 아닌 트로트 가수 ‘유산슬’, 혼성 댄스 그룹 ‘싹3’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다. 추대엽은 자신의 본업인 코미디언보다 지금의 ‘부캐’인 ‘카피추’로 유튜브에서 더 유명해졌다. 이런 인기는 부캐릭터 선발대회라는 별도의 예능 프로그램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이쯤 되면 부업이 본업이 된다. 이는 비단 연예인들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직장을 가진 일반인들이 퇴근 후 ‘부캐’로 변신하는 경우도 많다. 기획자인